[고규홍의 식물이야기] 겨울꽃 향기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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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규홍의 식물이야기] 겨울꽃 향기의 이유

입력 2009-12-28 1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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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기 채비로 고요해진 겨울 정원에서도 생명 활동은 계속된다. 이 즈음에 꽃을 피우는 식물이 적지 않다. 살을 에는 바람, 사나운 눈보라와 같이 꽃 피우기에 불리한 조건을 감수해야 하는 까닭에 겨울에 피는 꽃은 두드러진 특징을 가진다.

겨울에 가녀린 꽃잎을 열면 얼어죽을 위험도 있다. 게다가 꽃의 혼인을 도와줄 곤충이 없는 계절이니 번식도 쉽지 않으니 남다른 생존 전략을 가질 수밖에. 화려한 색깔을 띤 큼지막한 꽃송이라든가, 한꺼번에 많은 꽃송이를 여는 것도 그래서다. 유난스레 강한 향기를 띠는 것도 생존 전략 중 하나다.

해마다 이 즈음에 겨울 정원에서 노란 색 꽃을 송글송글 피워내는 납매(臘梅) 역시 겨울 꽃만의 생존 전략을 가졌다. 납매는 중국에서 들어온 까닭에 당매(唐梅)라고도 불리는데 ‘납’은 섣달을, ‘매’는 매화를 뜻하는 글자이니 ‘섣달에 피는 매화’라고 보면 된다. 그러나 받침꽃과에 속하는 납매는 겨울 끝에 피어나는 장미과의 매화와는 다른 식물이다.

가지 위에 조롱조롱 피어나는 납매의 꽃은 지름 2㎝쯤이다. 그나마 입을 활짝 열지도 않고 다소곳이 고개를 숙인 채 피어나서 생김새만으로는 그리 빼어나다 할 수 없다. 다만 초록빛을 잃은 겨울 정원의 무채색에 대비되는 노란 색 꽃잎이 눈에 띄는 정도다.

납매의 개화(開花)를 알아채게 하는 것은 놀라울 정도로 강한 향기다. 12월부터 2월까지 계속 피어나는 납매 꽃의 감미로운 향기는 천리 만리를 퍼져나간다. 눈으로 확인하지 않아도 납매의 개화는 금세 알아챌 수 있다. 아무리 넓은 정원이라 해도 납매 한 그루면 겨우내 아름다운 향기로 채울 수 있다.

강한 향기는 겨울을 개화기로 선택한 납매의 생존 전략이다. 꽃의 존재 이유인 번식을 위해 납매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혼사를 이뤄야 한다. 그래서 납매는 강한 향기를 택한 것이다. 곤충이든 바람이든 불러들이기 위해 납매는 추위가 강해질수록 짙은 향기를 내뿜는다. 모양이나 색깔이 아니라 향기로 강인함을 과시하고 번식을 이루기 위해 안간힘 쓰는 것이다. 소박한 겉모습 안에 갖춘, 눈에 띄지 않는 강인함이 신비롭게 느껴진다. 불리한 조건에 부닥칠수록 더 강한 생명력을 갖추는 건 식물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천리포수목원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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