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오대원 (2) 대학 선교동호회서 아내 엘렌 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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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경의 열매] 오대원 (2) 대학 선교동호회서 아내 엘렌 만나

입력 2010-07-05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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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선교사의 소명을 갖게 된 것은 오래전 일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1953년 여름, 청소년수련회에 참석해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났다. 그때 ‘다른 민족을 위해 살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열방에 나가 예수님을 전하고 싶은 뜨거운 소망이 일어났다. 또 그리스도의 구원이 나 자신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열방의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임을 깨닫고 선교사로 살기로 결심했다. 선교사가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고 선교사를 한 번도 만나본 적도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런 마음이 들게 하셨는지 지금 생각해도 신비롭다.



미국 테네시 주 킹대학에 다닐 때 ‘선교동호회(Missionary Society)’에 가입했다. 선교에 관심을 둔 사람들이 선교지에 대해 연구하고 중보기도하는 모임이었다. 이곳에서 평생의 반려자를 만났다. 엘렌 역시 선교사로 소명을 받은 후 모임에 참여했다. 엘렌의 부친은 목사이자 성서학을 가르치는 대학교수였다. 독실한 기독교가정에서 자란 그녀는 따뜻했고 활발한 성격이었다. 난 어린시절 부친이 돌아가신 후 내향적인 아이가 됐다. 어머니는 바느질로 자녀들을 꿋꿋하게 양육하셨고 늘 내 편이 돼주셨다. 내가 선교사로 결단했을 때 말리지 않으시고 하나님께 순종하라고 하셨다.

엘렌과 난 가정환경과 성격이 달랐지만 선교에 대한 동일한 관심으로 쉽게 친구가 될 수 있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치된 마음을 갖고 선교의 비전을 공유하며 사랑을 키워나갔다. 졸업 후 함께 버지니아 주에 있는 유니온신학교에 진학해 한 학기 다닌 후 1957년 한 가정을 이루었다.

신학교로 진학하면서 대학선교에 마음을 두게 된 우린 선교지로 대학선교를 함께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말씀을 사모하고 기도하며 흔들림 없이 선교사로서의 길을 준비했다. 그러자 한국인 선교사들을 만나는 기회가 주어졌다. UBF 배사라(사라 베리), 대전지역의 농촌 선교사로 헌신했던 R K 로빈슨 목사와의 만남이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한국 교환학생들도 만나게 되면서 한국을 관심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한국과 관련된 여러 사람을 만나고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면서 선교지를 한국으로 결정했다.

우리 부부는 신학대학원을 졸업한 후 윌리엄 앤 메리 대학교에서 1년간 캠퍼스 사역을 하였다. 곧 바로 한국으로 떠나고 싶었지만 총회에서는 1년간의 선교사 준비기간을 요구했기에 60∼61년 교회와 대학 캠퍼스에서 사역했다. 윌리엄 앤 메리 대학은 배움과 열정이 있는 열려있는 학교였다. 그곳에서 성경을 가르치고 수양회를 열어 말씀을 전했다. 한 장로교회에서 부목사로 섬기기도 하였지만, 주로 대학교 선교에 힘썼다.

한국 선교사로 파송되기 전, 일부러 한국어는 미리 배우지 않았다. 사투리의 영향을 받지 않은 순수한 억양을 배우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한국 연세대학교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를 처음 배웠다. 한국어를 빨리 익히기 위해 종로 거리를 누비며 대화를 시도했다. 빵집과 다방에서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를 나누며 생활 한국어를 익혔다. 엘렌과 난 한국어를 빨리 배우기 위해 둘이 있을 때도 한국어로 대화했다.

사람들은 종종 내게 “한국말을 잘하게 된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하나님께 사랑을 받으면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며 사랑을 나누고 싶듯이, 한국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으니까 그들과 마음껏 이야기하고 싶었다. 한국인을 사랑하게 되니 한국어도 빨리 배울 수 있었다.

정리=이지현 기자 jeeh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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