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 옛 그림] (30) 한 집안의 가장이 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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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 옛 그림] (30) 한 집안의 가장이 되려면

입력 2010-07-26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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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家長)은 존엄하다. ‘장’은 어른이자 맏이다. 노련한 기량, 관후한 성정, 웅숭깊은 배려가 어른의 자질이다. 그 덕목에서 가장의 권위가 나온다. 아버지, 아들, 손자가 함께 등장하는 옛 그림은 드문데, 김득신의 풍속화를 보면 가장의 본색이 드러난다.

얼기설기 엮은 시골집 바자울에 박꽃이 피었다. 더위에 혀를 빼문 검둥개 옆에 삿자리를 깔고 앉은 아들이 짚신을 삼는다. 아들의 몸꼴은 사내답다. 장년의 기세가 뼈와 살에서 꿈틀거린다. 허리에 새끼를 두르고 꼬아놓은 끈을 발에 걸친 채 힘껏 잡아당긴다. 우악한 손아귀와 허벅다리의 실한 살, 장딴지의 빳빳한 힘줄은 오로지 노동으로 가사를 일군 자의 이력을 알려준다.

노인은 아들을 미더운 눈으로 지켜본다. 그는 골골하지 않다. 머리가 벗겨지고 몸통이 깡말랐지만 병치레할 신세는 아니다. 손자의 응석을 받고 쌈지에서 동전 한 닢을 꺼내줄 자애로움이 그에게는 있다. 저 뒤편 벼가 자라는 논농사도 옛날에는 노인의 몫이었다. 장성한 아들이 김매고 추수할 때, 그는 노년의 경험을 보탰을 터. 이 집안 가장은 엄연히 그다.

힘꼴깨나 쓰고 자식 있다고 가장인가. 곳간이 허술해도 식구들 끼니를 거르지 않고 비단옷 아니라도 철 따라 입을 옷을 마련하며 고단한 몸 누일 삼간초가나마 장만하면서 모진 애를 다 삼켜야 가장이 된다. 장성한 아들의 살림살이를 감독하는 노인의 마음은 든든하다. 불고 쓴 듯 가난하지만 육친에 대한 가없는 믿음이 있어 가족은 화목하다.

손철주(미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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