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황주리] 공중전화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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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사랑하며-황주리] 공중전화 앞에서

입력 2010-10-19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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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휴대전화에 수신된 문자들이 암호처럼 느껴진다. “구라 없는 바다, 돌발상어, 고래작렬, 실 머니 2만 문의, 0700000000.” 대체 이 문자 메시지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마치 외계인이 보낸 메시지 같다. 돈을 빌려준다는 말일까? 이렇게 가끔 해독이 안 되는 문자들을 받을 때는,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상을 따라잡지 못하는 옛날 사람이 된 기분이다. 몇 년 전 신용카드가 다른 사람에게 사용되었다는 전화를 받고 허둥지둥 은행에 달려가 현금지급기로 돈을 송금한 적이 있다. 마침 일요일이라 은행문도 닫혀 있었다. 알고 보니 중국에서 걸려온 사기 전화였다. 요즘 휴대전화는 ‘우체국입니다’ 하는 사기 전화가 걸려오자마자 화면에 ‘국제전화’라는 글자가 뜬다. 사기의 기술과 함께 그 방어 기제의 기술도 나날이 발전하는 것이다.

어느 날 나는 문득 오래도록 잊고 있던 길가의 공중전화에 눈길이 갔다. 전화 부스 위에는 ‘공중전화는 전화비가 싸고 전자파가 없다’고 씌어 있었다. 아무리 그렇다지만 요즘 누가 공중전화를 사용할 것인가? 전화비를 못 내서 휴대전화도 집 전화도 끊긴 사람, 아무런 흔적도 남기면 안 되는 쫓기는 사람, 휴대전화 배터리가 떨어져 할 수 없이 공중전화를 사용하는 사람 외에는 없을 것 같다. 요즘은 외국에 가서도 공중전화를 이용할 기회가 거의 없다. 저절로 로밍이 되어 내 전화로 그 아무데나 통화를 할 수 있는 것이다.

많이 없어지긴 했지만, 세상의 거리에 눈사람처럼 외롭게 서 있는 공중전화 박스의 의미는 비를 피하라고 있는 걸까? 그냥 골동 장식품으로 서 있는 걸까? 없애려 해도 돈이 많이 들어 그냥 놔두는 건지, 공중전화를 이용하는 극소수의 사람들을 위한 배려인지, 공중전화는 오늘도 세계 곳곳의 외로운 거리를 조용히 지키고 서 있다.

하지만 저 외롭게 서있는 공중전화 부스야말로 눈 코 뜰 새 없는 우리들의 분주한 삶에 쉼표를 찍어주는, 숨통 트이는 여백은 아닐까? 꿈속에서 공중전화 부스에 들어가 어딘가로 전화를 건다. 거짓말처럼 공중전화는 저 멀리 북한까지 연결이 된다. 누군가 전화를 받아 “안녕하십니까? 거저 우리는 문제없습니다. 우리 식대로 행복하게 살아나갑니다” 라고 답한다. “위대한 김일성 장군과 김정일 지도자 동지의 보호 아래 우리는 매일매일 행복합니다.” 극빈층이나 이런 저런 사연으로 탈북을 시도하는 극소수 인민들을 제외한 보통의 조선민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민들은 모두 행복한 얼굴 표정을 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종교인들이 늘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 것처럼. 가진 것도 없고 여행의 자유도 누리지 못하는 그들은 오히려 초등학생도 자살을 하는 남조선이야말로 생지옥이라 생각할지 모른다.

어쩌면 목숨마저 제 맘대로 할 수 있는 자유란 참 외로운 거라는 생각이 든다. 쓸쓸한 가을날에 비를 맞고 서있는 저 버려진 공중전화부스처럼. 하지만 대한민국의 모든 자유로운 영혼들이여, 까짓 높은 곳에서 뛰어내리면 그만일 그 대단한 용기로 이 좋은 세상을 다시 살아보는 거다. 파이팅!

황주리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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