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임도경] 대중이 원하는 ‘공개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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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임도경] 대중이 원하는 ‘공개경쟁’

입력 2011-04-04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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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이 힘만 믿고 대중의 의식을 외면하면 존재의 터전을 잃고 만다”

역사를 보는 관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이데올로기(ideology)와 망탈리테(mantalite)이다.

이데올로기 관점은 그 시대를 지배한 대의명분이나 이념, 가치관 등을 통해 들여다보는 방법으로, 소수 지배층의 관점에서 역사를 보는 시각이다. 반면 망탈리테 관점은 대중의 집단의식으로 그 시대를 읽는 ‘풀뿌리 역사 읽기’ 방법이다. 이 두 가지 방법으로 한 시대를 들여다보아야 전사적(全史的) 조망이 가능하다.

이데올로기와 망탈리테의 차이를 현실 정치상황에 빗대어 보면, 손쉽게 이해할 수 있다. 선거 때마다 유권자들 사이에서 작용하는 ‘표심’이란 무엇인가. 이 표심에는 각 당에서 내세운 정치적 신념이 아니라 지역감정이 앞서고, 집단적 이해관계가 더 작용한다. 그래서 정치현상이라도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망탈리테적 관점으로 보는 것이 맞다.

사실상 역사의 형성은 이데올로기보다는 대중이 겪는 크고 작은 ‘사건’에서 파생된 망탈리테의 영향을 더 많이 받는다는 걸 알 수 있다. 특히 정보 공유의 범주를 확장시킨 대중매체의 발달은 망탈리테의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더군다나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정보통신(IT)산업의 급속한 신장은 쌍방향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네티즌’이라고 하는 변화무쌍한 집단의식 공유그룹까지 만들어 놓았다.

현재 한국 사회에 형성된 망탈리테는 무엇일까? 최근 한 방송사에서 문제가 됐던 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의 사건 전후 전개과정을 통해 한 가지 실체를 본 것 같다. 치열한 경쟁사회인 한국에서 대중은 ‘공개경쟁’과 ‘기회의 공평성’에 목말라 있다.

그것이 이 시점에 형성된 망탈리테의 일면이다. 이 원칙을 훼손한 프로그램에 대해 대중이 한목소리로 그렇게 분개한 것은 이런 집단정서를 건드렸기 때문이다.

각 방송국에서 분야별로 공개경쟁 오디션 프로그램을 경쟁적으로 만들고 있는 것도 이런 집단정서에 편승한 모습으로 보인다. 하지만 한국의 지상파 방송사들은 대중이 원하는 공개경쟁을 이끌 만한 도덕적 순수성을 갖추지 못한 것 같다.

당장 각 방송사의 간판급 쇼 프로그램은 어떤가. 몇몇 연예권력과 결탁해 특정 아이돌 가수들에게만 무대를 열어주고 있다. 특히 타 방송사에서 공개경쟁을 통해 선발된 실력 있는 가수들은 외면하고 있다. 방송사의 배타성으로 인해 치열한 경쟁을 통과해도 설 무대가 제한적이라면 공개경쟁은 의미가 없다.

얼마 전 한 음악 전문 유선방송의 오디션 프로그램인 슈퍼스타K를 통해 배출된 가수인 서인국이 “저는 음주운전을 하거나 마약을 하지도 않았는데 왜 가요 프로그램에 마음껏 서지 못하는 걸까요?”라고 트위터에 올린 하소연에 대해 네티즌이 큰 관심을 보인 것도 이 때문이다.

미국 오디션 무대인 ‘아메리칸 아이돌’에서 실력을 인정받은 슈퍼스타K 출신 가수인 존 박 역시 지상파 예능프로그램인 ‘강심장’에 한 번 얼굴을 드러냈을 뿐 노래를 부를 수 있는 무대에 서지 못했다. 특히 존 박처럼 요즘 아이돌 코드와는 무관하게 자신만의 음악세계를 갖고 있는 가수는 설 무대가 더 좁다. 이런 그가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했을 당시 세운 최고의 시청률(19.5%)의 의미를 방송사는 외면하는 것 같다.

고려 말과 조선 초기에 성리학자였던 길재(吉再)의 시조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국가도 쇠망하고 권력을 다투던 정치인도 어느 날 사라졌지만, 민중은 산천과 함께 남아 이 땅을 지키며 역사를 이어온 존재들이다.

대중매체는 말 그대로 역사의 중심인물인 대중의 바람직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서 제 기능을 수행해야 한다. 매체의 힘을 믿고 스스로 권력 이데올로기에 빠져서 대중의 의식을 외면한다면, 결국 존재의 터전을 잃게 될 것이다. 망탈리테의 생산자인 대중은 생각보다 역동적인 실체이다.

임도경 한국영상자료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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