在佛 역사학자 박병선 박사 타계… 약탈 문화재 찾아 ‘문화 독립운동’ 30년

국민일보

在佛 역사학자 박병선 박사 타계… 약탈 문화재 찾아 ‘문화 독립운동’ 30년

입력 2011-11-23 19:01

기사사진


프랑스가 약탈해간 외규장각 도서 297권의 고국 귀환에 결정적인 공을 세웠고, 기록으로만 전해오던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직지)’의 존재를 확인하고 세계적 공인까지 받아낸 서지학자. 여성 유학1호로 프랑스로 건너간 뒤 문화재 연구에 평생을 바친 ‘직지 대모(代母)’ 박병선 박사가 22일(현지시간) 프랑스에서 타계했다. 향년 88세.

암으로 투병 중이던 박 박사는 파리 시내 한 병원에서 요양하다 이날 밤 10시40분(한국시간 23일 오전 6시40분) 별세했다. 박 박사는 결혼을 하지 않아 직계가족이 없다. 조카 등 유족에게는 집필해오던 ‘병인년, 프랑스가 조선을 침노하다’ 후속편을 마무리 지어 달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겼다. 올해 성사된 외규장각 도서 영구대여에 기여한 공로로 지난 9월 수여된 국민훈장 모란장은 타계 한 달 전 병원에서 전달받았다. 의식이 희미했던 박 박사는 병상에서 눈물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 박사는 지난해 1월 경기도 수원 성빈센트병원에서 직장암 수술을 받았다. 10개월 만에 파리 자택으로 돌아간 뒤에는 마지막 저술에 몰두했다. 지난 6월에는 외규장각 귀환 환영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방문할 만큼 몸을 추슬렀으나 지난 19일부터 혼수상태에 빠졌다.

박 박사는 지난 4∼5월 145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 대표적인 해외 유출 문화재인 외규장각 의궤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직지의 존재를 처음 찾아낸 주인공이다. 그는 진명여고와 서울대 사범대 역사교육과를 졸업한 뒤 1955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났다. 여성유학비자 발급 1호였다. 프랑스 소르본대학과 프랑스고등교육원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은 뒤 1967년 프랑스국립도서관(BNF) 직원이 된 그는 1972년 동료 사서가 말한 ‘아주 오래된 동양책’을 발견했다. 상권은 사라지고 하권도 첫 장이 찢겨나간 파지 상태의 직지였다.

이후 박 박사는 직지의 가치를 증명하는 데 매진한다. 책에 찍힌 ‘주조(鑄造)’라는 글자를 통해 이 책이 1455년판 ‘구텐베르크 성서’보다 78년 앞선 1377년 금속활자본 직지라는 걸 확신한 그는 목판과 금속활자의 차이를 실증하기 위해 프랑스 내 대장간을 돌고 활자 실험을 거듭했다. 책만 파는 서지학자가 활자 모형을 오븐에 굽다가 3차례나 화재를 겪기도 했다.

1975년에는 도서관 별관 파손 창고에서 기록으로만 존재하던 외규장각 의궤를 찾아냈다. 박 박사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수백 년이 지난 책에서 그윽한 묵향이 밀려왔고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다”고 이 순간을 회고했다. 1980년 도서관을 그만둔 뒤에는 10여년간 도서관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하며 외규장각 도서의 목차와 내용을 정리해냈다. 의궤 반환운동의 길을 닦은 것이다.

그의 고집스런 연구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는 23일 “누구의 도움도 없이 30여년간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며 의궤를 추적하는 과정은 21세기의 문화 독립운동”이라고 평가하고 고인을 국립묘지에 안장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유족에게 조전을 보내 “대한민국 국민은 우리 역사와 문화유산에 대한 박 박사의 깊은 애정과 숭고한 업적을 영원히 잊지 않을 것”이라고 추모했다.

박 박사 빈소와 분향소는 파리 소재 한국문화원과 서울 국립중앙박물관, 직지의 고향인 충북 청주시 고인쇄박물관 등에 마련됐다.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

많이 본 기사

포토

아직 살만한 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