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희철] 宋의 진회와 越南의 쭝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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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김희철] 宋의 진회와 越南의 쭝딘주

입력 2012-08-08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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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000년 전 중국 송나라는 슈퍼 부국(富國)이었다. 사료에 따르면 당시 송나라는 고려를 비롯해 남태평양, 유럽, 아프리카 등 전 세계 50여 개국과 통상무역을 하고 있었다. 동시에 농업기술의 발달로 인구는 1억명에 달했다. 종이, 화약, 나침반, 인쇄술 등 중국의 4대 발명 가운데 세 가지가 송대의 것이었다.

그러나 이 같이 문치(文治)가 화려하게 발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지탱할 무비(武備)의 기초는 허약했다. ‘호남부당병(好男不當兵·좋은 남자는 군인이 되지 않는다)’이라는 속담이 유행할 정도로 군대기피 현상이 팽배했다. 더욱이 100만명의 상비군은 외형만 갖췄을 뿐 내면의 상무적 기풍은 쇠약한 상태였다. 심지어 적군의 간첩이 재상에 오를 정도로 국가의 안보의식은 균열되어 있었다.

1140년 금나라 군대가 쳐들어오자, 왕이었던 고종과 귀족들은 싸울 생각은 포기한 채 화친에만 몰두했다. 심지어 간첩인 재상 진회(秦檜)의 간계에 속아 전투 중인 충신 악비(岳飛) 장군을 소환해 ‘화친에 방해되는 인물’이라며 죽이는 잘못까지 범했다. 결국 송나라는 인구와 경제 측면에서 100분의 1도 안 되는 금나라와 굴욕적인 화친을 맺고 비겁한 평화를 구걸하는 신세로 전전긍긍하다 멸망당했다.

1975년 패망한 월남도 마찬가지였다. 미국을 비롯한 우방국들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세계 5위권의 군사력을 보유한 월남이 패전할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열세인 쪽은 월맹이었으며, 공산주의자는 전 국민의 0.25%인 5만명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월남은 월맹에 패망했다.

미 육군의 해리 서머스(Harry G Summers) 대령은 저서 ‘미국의 베트남전쟁전략’을 통해 “우리는 전투에서 계속 승리했는데 결과적으로 비참한 패자가 됐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물으면서, ‘사상전의 패배’를 결정적인 이유로 지적했다.

월남의 쭝딘주는 1967년 대통령선거에서 낙선했지만 두번째로 많은 표를 얻은 월맹의 간첩이었다. 그는 선거에 나서 유세를 하며 “동족상잔의 전쟁에서 시체가 산을 이루고 있다. 이처럼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들끼리 피를 흘리는 모습을 우리 조상들이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얼마나 슬퍼하겠는가”라고 강조했다. 그는 연설을 통해 민족감정과 반미의식을 조장한 것이다.

사이비 종교인들도 여기에 가세해 전쟁 중인 월남의 군인들에게 동족인 월맹군을 향해 총을 쏘지 말고, 미군을 향해 총을 쏘라고 선동했다. 그 결과 공군 전투기 조종사가 작전을 하던 중 기수를 돌려 대통령궁을 폭격하는 일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결국 소수에 불과했지만 쭝딘주 같은 영향력 있는 인물들이 국민들을 현혹해 대다수 국민들이 사상적으로 오염됐다. 그 결과 월남인들은 전의(戰意)를 상실함으로써 패망을 자초하게 된 것이다.

대한제국의 멸망 원인도 내부 간첩들의 이적행위에서 찾을 수 있다. 1905년 을사늑약을 통해 조선의 외교권을 넘겨준 이완용과 박제순 등 을사5적은 1907년 8월 1일엔 국가의 근간인 군대마저도 해산시키는데 동조한 간첩들이었다. 이런 내부의 간첩들이 득세하니 국운은 기울 수밖에 없었다.

오늘날에도 우리 내부에 기생하는 간첩, 종북세력들은 규모 면에선 크지 않다. 그러나 이들의 ‘대한민국 폄훼 공작’은 도를 넘었다. 이들은 송나라와 월남을 망국으로 몰고 간 진회와 쭝딘주와 진배없다고 보아야 한다.

김희철 육군본부 정책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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