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이성낙] 소박한 복지가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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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포럼-이성낙] 소박한 복지가 우선이다

입력 2012-09-10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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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가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큰 복지의 첫걸음이라는 사실 명심해야”

고품격 사회로 나아가는 데는 여러 가지 길이 있겠지만, 우리 사회에 작은 복지가 충만하다면 국가 재정에 부담을 주지 않고 품격 있는 밝은 사회가 되리라 믿는다. 그럼에도 요즘 정치권에서는 대형 복지정책을 경쟁적으로 쏟아내고 있다. 그 규모와 속도감에 어리둥절하여 현기증을 느낄 정도다.

복지 하면 가장 먼저 독일이 떠오른다. 독일인에게 독일 역사에서 가장 위대하고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그들은 망설임 없이 비스마르크(1815∼1898)라고 입을 모은다. 우리에게 철권 정치의 대명사로 알려진 비스마르크가 독일을 통일하고 독일 제국의 첫 총리를 지낸 인물이기에 그런가 하는 생각을 처음에는 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중에 그가 세계 최초로 복지(Wohlfahrt) 개념을 사회 제도로 정착시켰다는 사실을 가장 자랑스러운 역사로 여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필자가 수련의 시절에 소박한 복지를 체험한 적이 있다. 같은 병동에서 근무하는 간호사가 다음 날 진료를 받기 위해 출근을 못하니 다른 동료가 자기 업무를 대신할 것이라고 말했다. 필자는 진료 받을 부서를 알려주면 동기들이 각 부서에 있으니 도움을 줄 수 있겠다고 말하자, 고맙긴 하지만 자기는 주임교수의 특진진료시간(Privat-Sprechstunde)에 이미 예약해 놓았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제왕 같은’ 주임교수의 특진은 고급 가구로 차별화한 공간에서 이루어지며 예약한 VVIP 환자만 들락거리는데, 그 ‘말단 직원’이 당당히 진료를 받는다는 사실에 의아해하면서도 마음 한편이 따뜻해왔다.

알고 보니 병원에 근무하는 모든 종사자는 각자 받고 싶은 교수의 진찰을 선택할 권리가 있었다. 직장 구성원에 대한 세심한 배려 정신에서 비롯된 이 작은 복지권리가 조직의 ‘밑바닥’까지 스며 있다는 사실이 조용한 아름다움으로 다가왔고, 흐뭇하기 그지없었다.

나이 지긋한 어른들이 서로 반말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 또한 정겹기 그지없다. 그래서 예로부터 친구끼리 반말로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며 ‘욕 친구’라고 하는가 보다.

그러나 직장과 같은 사회조직에서의 반말 사용, 특히 상급자가 부하 직원에게 쓰는 반말 어투에 정감이 있다고는 할 수 없다. 국어사전에서는 존경어를 ‘듣는 사람이나 제삼자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하여 쓰는 말’로 정의한 반면 반말은 ‘함부로 낮추어 하는 말’이라고 하였다.

이는 경어에는 대화 중 상대방의 인격을 존중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는데 반말에는 상대방의 인격을 의식하지 아니한다는 뜻이다. 다분히 권위적 의식구조가 밑바탕에 깔려 있다. 직장이든, 군영(軍營)이든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지시사항을 반말로 해야 ‘명령이나 지시가 먹힌다’는 의식굴레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프랑스어나 독일어에는 당신을 뜻하는 ‘Vous’와 ‘Sie’가 있고, 너라는 ‘Tu’와 ‘Du’가 있다. 우리처럼 존경어와 반말이 있는데 프랑스나 독일 군대에서는 20세기 초에 군영에서 반말어투가 엄격히 금지되어 존칭만 사용한 지 이미 오래다.

이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조직사회의 언어로 존경어를 사용하는 것은 바로 남을 배려하려는 마음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소박한 복지의 기본개념이 그 바탕에 깔려 있다. 그 외에도 높임말에는 언어 순화 기능이 있다.

심심치 않게 여론에 비치는 다양한 군부대 내의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많은 경우 상급자의 폭언에서 비롯된다는 생각을 금할 수 없다. 군영 시설의 현대화 못지않게 상급자의 언어가 먼저 순화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직장과 같은 조직 생활 문화에서 폭언 행위를 근절할 수 있으려면 우리의 언어생활에서 경어 사용이 일상화되어야 한다. 이는 서로가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는 소박하지만 큰 복지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이성낙(가천대 명예총장·현대미술관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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