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정진영] 제사와 추모예배

국민일보

[삶의 향기-정진영] 제사와 추모예배

입력 2012-09-28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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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안 설, 추석이면 대구의 큰댁은 북적거렸다.

엄친(嚴親)을 비롯해 큰아버지와 삼촌들, 사촌과 조카들 3대가 그리 넓지 않은 장손 집에 모였다. 방안에서는 집안 대소사를 얘기하는 어른들의 목소리가 오갔고, 부엌에서는 음식을 장만하는 숙모들의 손놀림이 분주했다. 세월이 흘러 큰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삼촌들은 연로했고, 젊은이들은 직장과 학업 때문에 이곳저곳으로 흩어져 요즘 큰댁 명절 분위기도 예전 같지 않고 단출하다.

명절만 되면 불거지는 갈등

수년간 명절만 되면 차례 방법을 둘러싸고 아버지와 큰아버지를 비롯한 삼촌들 사이에 신경전이 벌어졌다. 신실한 장로인 아버지는 제사 대신 추모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큰아버지와 삼촌들은 유교식 제사를 고집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차례상에 절을 하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행위라는 원칙적인 입장을 고수했고, 그분들은 제사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식이었다. 8남매의 차남이었던 아버지의 힘만으로는 ‘추모예배’를 관철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당신의 신앙고백은 결코 재배(再拜)를 올리는 제사를 허락할 수 없었다.

결국 절묘한, 아니 우스꽝스러운 양상이 벌어졌다. 두 번의 차례상이 차려졌다. 1차로 큰아버지와 삼촌들이 제사를 모셨다. 이어 아버지를 비롯해 우리 가족과 몇몇 조카들은 추모예배를 드렸다. 제사를 지내는 동안 아버지는 옆방에 계셨고, 예배 중에는 큰아버지와 삼촌들이 옆방으로 건너갔다.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절로 나는 것은 제사와 예배 모두 참가하는 어린 조카들도 있었다는 사실이다.

아버지는 몇 안 되는 성도들(?)을 위해 정성스럽게 예배를 준비했다. 언제 마련했는지 예배 순서지는 물론 찬송가 악보와 가사를 복사해 나눴다. 성경을 읽고 짧은 말씀을 전할 때나 자식과 손자, 조카들의 이름을 하나씩 부르며 절절한 기도를 할 때는 당신의 목소리가 떨렸다.

장로 아버지의 믿음 때문일까. 이제 큰댁에서 이중 제례는 없어졌다. 명절이면 모두 모여 찬송을 부르며 기도를 드리고 말씀을 묵상한다.

추석 당일 고향교회를 찾자

크리스천들과 제사 문제는 명절이면 늘 부딪치는 사안이다. 즐거워야 할 명절이 제례를 둘러싼 다툼으로 가족과 친지들 간에 불화가 쌓이고, 심지어 서로 얼굴을 붉히며 큰소리를 내는 일도 심심찮게 벌어진다. 명절에도 의절하며 지내는 사례도 주변에 적지 않다.

개신교단 중에는 요즘도 아주 원칙적인 입장을 견지, 차례상 자체를 허용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을 펴는 곳도 있다. 그러나 이제는 몇 몇 개신교단에서도 ‘조상을 추모하는 전통 양식의 하나’로 받아들인다. 차례상에 절을 하지 않는 대신 집에서는 추석 감사예배를, 산소에 가서는 추석 성묘예배 등의 형식을 통한 추모예배를 드리는 것이 보편화되고 있다. 이는 돌아가신 어르신을 그리움과 감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일 뿐 예배와 숭배의 대상으로 간주해 우상을 섬기는 것은 아니라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이번 추석은 마침 주일이다. 1700여만명의 귀성 인파들 중에는 오랜만에 고향 모(母)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이 많을 것이다.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수년 만에 고향을 찾는 이들이 고향 교회에서 타향살이의 부대낌을 훌훌 털어버릴 수 있는 포근함과 넉넉함, 그리고 추석 이후의 삶에 대한 자신감까지 담뿍 얻고 오기를 기도한다.

정진영 종교국 부국장 jyjung@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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