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신창호] 독일과 일본 전범기업의 차이

국민일보

[뉴스룸에서-신창호] 독일과 일본 전범기업의 차이

입력 2012-11-01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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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나치정권의 악명은 유대인 학살만이 아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수행을 위해 각종 무기를 생산했던 전범기업들에게 프랑스 폴란드 체코 등 주변 국가들로부터 강제 동원한 160만명을 노동자로 제공했다.

2000년 독일 정부는 이들 기업과 함께 무려 100억 마르크(약 8조원)를 출연, ‘기억, 책임 그리고 미래’ 재단을 설립했다. 강제동원 노동자들을 보상하기 위해서였다. 물론 이들의 임금과 개별 기업의 손해배상은 별도였다. 지금까지 이들 기업이 강제동원 외국인을 위해 투입한 돈은 620억 유로(88조6000억원)가 넘는다고 한다.

벤츠 BMW 폴크스바겐 포르쉐 지멘스 같은 글로벌 기업들은 스스로 나치 독일의 전범기업이었음을 숨기지 않는다. 벤츠는 전차, 폴크스바겐은 장갑차, 포르쉐는 군용지프, BMW는 군사용 오토바이와 전투기, 지멘스는 쌍안경을 나치군에 납품했다. 이 사실은 이들 기업의 기업역사 홍보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다. 자신감 넘치는 이들의 태도는 전쟁 피해자들을 스스로 찾아내 그 후손들 교육비까지 제공한다는 책임감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치 독일이 유럽을 황폐화시키던 같은 시기 일본은 아시아 전체를 군홧발로 짓밟았다. 수많은 아시아인들을 위안부와 징용 노무자로 강제 동원해 전쟁의 한가운데로 몰아넣었다. 일본 군국주의의 물질적 토대를 제공했던 일본 3대 재벌인 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 이들이 피해자 보상을 위해 무슨 재단을 만들었다는 소식을 들어본 적이 없다. 아니 당시 강제 동원된 외국인 노무자들에게 밀린 임금을 줬다는 말조차 들어볼 수가 없다.

1939년 일제 징용령에 따라 강제 동원된 한국인만 해도 무려 102만명으로 추산되며 대부분 정당한 급여조차 받지 못했다. 가혹한 작업 환경 속에 던져져 노동력을 착취당하기만 하다가 숨져간 사람이 태반이고, 빈손으로 고국으로 돌아온 이들은 아직도 그때 그 기억을 지우지 못하고 있다.

1945년 2차 대전 종전 이후 일본 전범기업들이 행한 만행의 전모가 제대로 밝혀진 적이 없었다. 일본 정부가 뻔뻔스럽게 과거사를 외면하자 이들 기업까지 지난 역사를 송두리째 감추고 있어서다. 2006년 일본 정부가 우리 정부에 전달한 ‘조선인 노무자 공탁기록’만 봐도 이들이 얼마나 비양심적인지 알 수 있다. 강제동원 노무자 숫자를 대폭 축소하고 임금 규모도 턱없이 줄였다. 패전 이후 들어선 미군정이 이를 찾아내려 하자 노무자들의 임금 자산을 닥치는 대로 감추기에 급급했다.

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는 끔찍한 전쟁범죄를 장막 뒤에 숨긴 채 지금도 번창하고 있다. 카메라에서부터 TV, 냉장고, 자동차, 중장비, 정밀기계까지 온갖 상품을 전 세계에 수출하면서 글로벌기업 행세를 한다. 피비린내 나는 역사에 대해 반성과 피해 보상은커녕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정당한 임금마저 지불하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세련된 도시인들에게 BMW나 벤츠 자동차는 한번쯤 꼭 갖고 싶은 ‘명품차’로 여겨진다. 이런 우리에게 두 회사에 얽힌 나치 독일 이야기가 알려진다고 해서 이 소망이 바뀌지 않을 것이다. 일본산 자동차는 어떨까. 행여 미쓰비시 승용차가 군국주의 일본에 탱크와 대포를 제공했던 전범기업 제품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진다면 어떤 한국인이 그 차를 타고 싶어 하겠는가. 일본산 자동차가 독일산에 밀려 2류 취급을 당하는 것은 단지 제품의 질 때문은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신창호 정치부 차장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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