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조용래] 종이쇼핑백을 든 군인

국민일보

[한마당-조용래] 종이쇼핑백을 든 군인

입력 2013-01-08 18:33

둘째는 해군 상병이다. 2011년 12월 초 입대했으니 10개월을 더 복무해야 한다. 제대한 지 30년 만에 2세를 군에 보내면서 분단이라는 이 땅의 시대적 아픔 같은 것이 울컥 올라왔었는데 시간은 참 빠르게 흐른다. 본인들이 들으면 섭섭하겠지만.

통일이 이뤄졌다 해도 국방은 중요할 테고 더불어 징병제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기분이 묘했다. 한반도가 격랑의 현대사 속에 박제된 채 불변의 오늘을 이어가고 있음이 새삼 실감날 뿐이었다.

그로부터 이상한 버릇이 생겼다. 길에서 마주쳐 지날 때마다 젊은 군인들을 눈여겨보게 된 것이다. 거참 훤칠하게 잘도 생겼다, 새까맣게 그을린 얼굴에 여드름은 왜 그리 많은지, 행여 애로는 없는지, 외출일까 휴가일까, 누가 가장 보고 싶을까…, 녀석도 잘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한다.

일부러 보려 해서 그런지 도처가 군인들이었다. 그러던 중 그들의 행장에는 종이쇼핑백이 거의 빠지지 않고 있음을 발견하게 됐다. 까만 비닐봉지를 손에 쥔 군인도 있었다. 대한민국 병사들이 쇼핑중독에 걸린 것도 아닐 텐데 손에 손에 종이쇼핑백을 들고 있으니 기묘하게 비칠 수밖에 없었다.

2011년부터 새로 보급한 디지털무늬 신형 군복에 멋진 베레모를 쓴 군인이 백화점 종이쇼핑백을 들고 있거나 비닐봉지를 길게 늘어뜨리면서 걷고 있는 모습은 우스꽝스럽기까지 했다. 지난 주말 외박을 나왔던 아들의 손에도 어김없이 백화점 종이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그 안에 담긴 것은 책과 사전, 며칠 외박에 대비한 속옷가지며 칫솔, 치약 등 자질구레한 개인용품 등이었다.

두 밤을 자고 귀대하는 날에도 역시 종이쇼핑백이 함께했다. 이번엔 재질이 조금 튼튼하고 큰 것으로 바뀌어 있을 뿐이었다. 부대에서 빨래할 때 쓴다며 산 섬유유연제, 습기 제거 용품 등을 담은 까닭이다. 가지고 온 사전은 들어갈 데가 없어 두고 간다고 했다. 종이가방을 든 손이 짠했다.

대체 왜 그런가. 외출용으로 보급된 가방이 없는 탓이다. 언젠가 녀석은 ‘대한민국 해군’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원통모양의 소형 더플백(duffle bag, 군대에서는 발음이 와전돼 ‘더블백’으로 부른다)을 들고 왔지만 공식 보급품이 아니기 때문에 소지해서는 안 된다고 해 지금은 안 쓴다고 했다.

우리의 멋진 용사들에게는 그에 걸맞은 가방이 필요하다. 20% 월급 인상도 좋지만 보스턴백 하나씩 지급하는 게 더 시급하겠다. 패션에 죽고 사는 게 바로 그 젊은이들이 아닌가.

조용래 논설위원 choy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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