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오래달리기의 비밀

국민일보

[사이언스 토크] 오래달리기의 비밀

입력 2013-03-22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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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가장 빠른 동물인 치타는 평지에서 시속 110㎞로 달려 시속 80㎞의 톰슨가젤을 먹잇감으로 삼는다. 그런데 우사인 볼트의 속도는 그의 세계 신기록인 9초58을 시속으로 환산하면 37.5㎞에 불과하다. 이런 형편없는 속도로도 인간은 과연 사냥이 가능할까.

그런데 순전히 달리기 실력만으로 사냥하는 종족이 지금도 존재한다. 멕시코의 오지 코퍼 캐니언 깊숙이 터를 잡고 사는 타라우마라족이 바로 그 주인공. 스스로를 ‘라라무리(달리는 사람들)’라고 부르는 그들의 사냥 비결은 치타처럼 순식간의 속도로 사냥감을 덮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체만을 목표로 삼아 계속 추격하는 추격사냥이다.

그들은 며칠이고 사슴을 쫓아 달려가 사슴의 발굽이 너덜너덜할 정도로 탈진했을 때 맨손으로 잡는다. 지금도 48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달리는 달리기 축제를 열며, 어떤 이는 한번에 700㎞를 달렸다는 기록도 있다.

알고 보면 인간처럼 오래달리기를 할 수 있는 포유류는 거의 없다. 먹잇감을 끝까지 쫓기로 유명한 늑대와 하이에나도 수 시간 동안 20∼30㎞를 이동할 뿐이다. 말은 초속 14m를 달릴 수 있지만 10∼15분 이상 달리면 속도가 절반 가까이 떨어진다.

이런 사실은 우리 선조들도 잘 알고 있었다. 조선 선조 때 군사 및 행정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 설치한 파발제를 보면 기발은 20∼25리마다, 보발은 30리마다 1개의 역참을 두었던 것. 즉, 말로 달리는 기발보다 사람이 직접 뛰는 보발의 역참 거리가 더 길었다.

실제로 경주대회에서 사람이 말을 제치고 우승한 적도 있다. 영국 웨일즈의 작은 마을 슬란티드 웰즈에서는 기수를 태운 말 40마리와 전문 육상선수가 아닌 일반 참가자 500명이 22마일(약 35㎞)을 달리는 마라톤 대회를 매년 개최한다. 예상대로 매년 우승자는 말이었지만, 지난 2004년과 2007년 대회에선 사람이 말을 제치고 우승했다.

동물들이 오래달리기에 약한 이유는 달릴 때 체온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인간은 체온을 효율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땀샘이 있으며, 동물처럼 온몸을 뒤덮은 털도 없다. 또한 머리 뒤통수와 연결된 강력한 인대와 길고 가는 다리, 상체 균형을 잡기 쉬운 짧은 팔, 엉덩이의 대둔근 등 오래달리기에 적합한 신체구조를 지니고 있다.

성공의 비결이 순발력보다는 지구력에 있듯이, 인간의 진정한 능력도 이 같은 끈기에 숨어 있는 게 아닐까.

이성규 (과학 칼럼니스트)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