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그간, 궁금했습니다] 김태정 전 법무부장관 “무죄 받았지만, 하나님 앞에 지금도 부끄럽습니다”

국민일보

[얼굴 그간, 궁금했습니다] 김태정 전 법무부장관 “무죄 받았지만, 하나님 앞에 지금도 부끄럽습니다”

입력 2013-09-06 17:18 수정 2013-09-06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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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쭈뼛쭈뼛했다. 아직도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것은 아닌지, 험담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마음 한 구석에 있다고 했다. 몇 차례 “준비가 안 됐다”며 인터뷰를 사양했고 인터뷰 후에는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다”며 일부 발언의 비보도를 요청했다. 인터뷰 시작 전에는 하나님의 인도를 바란다고 기도했다.

1999년 봄부터 겨울까지 김태정(72) 전 법무부 장관은 매일 TV 화면에 나왔다. 아내가 옷 로비를 받았다는 의혹으로. 연말에는 구속됐다. 2003년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지만 그에게 큰 의미는 없었다. 김 전 장관은 지난달 26일 국민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지금도 하나님 앞에 얼마나 부끄러운지…”라고 했다. 그의 얼굴은 고희를 넘긴 나이보다 주름이 많아 보였다. “하나님이 저를 수사기관 최고 수장으로 세우셨다가 무덤 같은 구치소로 보낸 뜻이 무엇인지 헤아려 봅니다.” 그저 하나님의 복권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는 97년 검찰총장 시절 고(故) 김대중(DJ) 전 대통령 비자금 수사 유보 이유를 처음 밝혔다.

교회 주변에서 옷 로비 의혹

그는 검찰총장 임기를 두 달 정도 남겨둔 99년 5월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됐다. 그런데 옷 로비 의혹 사건이 터졌다. 신동아그룹 최순영 회장의 부인 이형자씨가 그의 부인 연정희씨에게 고가의 옷을 로비 명목으로 제공했다는 것이었다. 최 회장은 외화 밀반출 혐의로 수사받고 있었다. 김 전 장관은 당시 검찰총장이었다.

-그때 어떤 심경이었는지요?

“나와 아내는 그런 일이 없기 때문에 말도 안 된다고 일축했습니다. 누군가 나를 낙마시키려고 모략한다고 여겼습니다. 아무리 바보 같은 총장이고, 총장 부인이라도 ‘범죄 혐의로 수사받고 있는 사람에게, 그것도 옷을 외상으로 갖다 놓고 옷값을 대신 지불하라고 했다?’ 삼척동자라도 웃을 일이라고 코웃음 쳤습니다. 그런데 그 소문이 처음에는 교회를 중심으로 퍼지다가 마침내 나라 전체를 미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사건 당시 최 전 회장 부부와 같은 교회 출석 중이었나요?

“그랬지요. 옷 로비 사건 등장인물은 모두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장로, 전도사, 권사, 집사 심지어 목사님도 등장합니다. 장소도 기도원, 교회, 봉사회였습니다. 그 일로 교회를 옮겼습니다. 일이 그렇게 된 것 자체가 하나님에게 부끄러운 일인 것 같습니다.”

그는 장관 임명 보름 만에 물러났다. 그 후 김 전 장관 부부는 7개월 동안 6곳에서 조사를 받았다. 청와대, 경찰, 서울중앙지검,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특별검사, 국회 청문회장. 옷 로비 의혹 사건 청문회에서 드러난 것은 거의 없었다. 연씨의 옷값이 2400만원이라는 의혹은 딸 혼수용으로 장만한 옷값 250만원이 부풀려진 것이었다.

연씨는 당시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온 앙드레 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선생님, 죄송합니다. 제가 선생님 사업에 도움이 되도록 옷을 여러 벌 맞추지도 못하면서, 옷 한 차례 산 것 때문에 이렇게 곤욕을 치르게 해 정말 죄송합니다.” 청문회에서 밝혀진 것은 앙드레 김의 본명이 김봉남이라는 사실뿐이라는 비아냥이 나왔다.

DJ 비자금 수사 ‘제2의 광주사태’ 우려

그가 장관으로 임명된 날 한 프로필 기사에는 이런 내용이 담겼다. ‘DJ 비자금 사건 수사 유보를 결정해 새 정부 탄생 계기를 제공했다.’

-실제 김영삼(YS) 대통령에게 수사 유보를 건의했나요?

“예, 그렇게 보고드렸습니다. 검사의 양심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오프 더 레코드(off the record·비보도)로 해주십시오. 비자금으로 말하면 DJ뿐만 아니라 이회창 후보도 거기에서 벗어날 수 없을 거라고 봤습니다. 이후 비자금 수사에서도 나타났듯 평생 야당 후보를 한 이의 비자금이 여당 후보 비자금보다 많을 리 있겠습니까. 야당 후보 비자금이 한 트렁크라면 여당 후보는 한 트럭이었겠지요. 때문에 DJ만 수사하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는다고 보고했습니다. 게다가 비자금 수사를 하려면 전국 금융기관 계좌를 다 뒤져야 하고 기업인을 줄줄이 소환해야 합니다. 가뜩이나 경제가 어려운데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지요. 무엇보다 그때 대선 후보 여론조사에서 DJ가 앞서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호남 사람들은 희망에 부풀어 있었지요. 만약 수사를 개시하면 무슨 끔찍한 일이 일어날지…. ‘제2의 광주사태’가 우려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YS의 반응은 어땠나요?

“YS 역시 ‘니(네) 말이 맞다. ○○○은 그래갖고 대통령 못 한다’고 맞장구치셨습니다. 당신의 오랜 정치 경험으로 보더라도 상대 후보를 비방하거나 수사기관의 힘을 빌려 선거를 한 사람은 다 낙선됐다고 강원도 누구, 어디 누구 몇 사례까지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여당에서는) 수사는 안 해도 좋으니 검찰이 수사한다는 발표만 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어요. 그 저의는 알만하지 않은가요. 나는 비겁하기 싫었습니다.”

-그때 YS가 비자금 수사를 지시했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그 점은 하나님만 아시겠지요. 다만 그때 왠지 김 대통령이 반대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 전에 DJ를 만난 적이 있나요?

“그 분은 야당 정치인이고 전 검사인데 만날 일이 있었겠습니까. 당선된 뒤 저를 보자고 해서 처음 대면했습니다. 여러 가지 국정 철학을 말씀하시다가 비자금 수사는 어떻게 된 것이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저는 사실대로 ‘당선자님을 도와드리기 위해 수사를 유보한 것이 아닙니다’라고 당돌하게 말했어요. 이유도 YS에게 보고했던 대로 말씀드렸습니다. 그게 사실이었으니까요.”

그는 정권이 교체된 뒤에도 검찰총장으로 유임됐다. DJ는 사석에서 그를 양심 있는 법조인이라고 칭찬했고 5월 법무장관으로 임명했다.

총장·장관에서 ‘수감자 3223’으로 추락

그런 그가 99년 12월 구치소에 들어갔다. 경찰이 작성한 옷 로비 내사 보고서를 외부로 유출한 혐의로 구속된 것이었다. 청사 앞 기자들이 사진을 찍으려고 아우성이었다.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서울구치소로 가는 중 검찰청 직원이 차를 한적한 곳에 세웠다. “총장님, 내리십시오. 제 손으로 도저히 총장님을 구치소로 못 모시겠습니다”라며 울먹였다. 그도 울었다. 구치소에서 수의를 받았다. ‘3223’이라는 수감자 번호가 붙어 있었다.

-그때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요?

“제가 검사로서 수사한 사람들을 보내는 곳이 구치소이고 제가 장관으로 관리하는 곳이 구치소입니다. 감방에 들어서는 순간 무덤 속에 들어간 기분이었습니다. 죽고 싶었습니다. 수치스럽다는 생각이 나를 짓눌렀습니다. 자식들에게, 아니 모든 사람에게. 잠을 이룰 수 없었어요. 그 수치심을 없앨 방법은 죽음뿐이라는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오전 2시쯤 무엇인지 모를 마음의 기쁨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이 성령님을 보내신 것 같았어요. 푹 잠이 들었지요.”

그는 구치소에서 폭탄주를 마시고 귀가하던 숱한 날들을 회개했다. 세 딸의 얼굴을 한달 넘게 못 본 적도 많지 않았던가. 신앙조차 출세의 방편으로 삼지 않았는지. 검찰총장 되게 해달라며 새벽기도 다니던 것을 후회했다. 구치소에서 처음으로 성경을 통독했다. 큰형이 병을 얻은 1990년부터 교회에 나왔지만 성경을 제대로 읽은 적이 없었다. 35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났다. 바로 인터넷 법률사무소 로시컴과 로시컴법률구조재단을 설립했다. 인터넷으로 상담하고 변호사를 선임하는 회사다. 로시컴법률구조재단(www.lawsaver.org)은 6일까지 무료 인터넷 상담 5만5208건, 무료 소송 3331건을 처리했다.

-로시컴을 설립한 이유는 무언가요?

“당시 제가 있던 구치소 3500여명 수감자 중 변호사를 선임한 사람은 10%도 되지 않았어요. 누구나 값싸고 쉽게 변호사를 선임하도록 돕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모든 분쟁은 법과 제도로는 해결할 수 없어요. 법원의 판결에서도 한쪽이 이기면 지는 쪽이 생깁니다. 종국적인 해결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와 그분의 의(義) 안에서만 우리는 분쟁과 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 같아요.”

신앙 속 화해, 역사적 복권 기도

-옷 로비 의혹 사건 후 1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아직도 사람들 앞에 서는 게 힘드신가요?

“사실은 지금도 왠지 쭈뼛쭈뼛해집니다. 구치소에서 나온 뒤에도 끊임없이 나를 사로잡은 생각은 ‘왜 하나님께서 나를 검사 최고의 자리까지 올리셨다가 무덤 속 같은 구치소까지, 말할 수 없는 치욕의 밑바닥까지 떨어뜨리셨냐?’는 것이었습니다. 구치소에서 나온 이후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구속은 제게 너무 크고 깊은 상처를 주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나에게 손가락질하는 것 같았습니다. 나에게 사인해 달라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그 사람들이 나를 비웃는 것만 같아 두문불출했습니다.”

검찰과 법원은 각각 옷 로비 의혹 사건에 대해 실패했다, 실체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이 사건이 하나님의 집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일어났다는 것만으로도 죄 지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 걸 사죄하고 하나님 안에서의 화해를 위해 기도한다. 그는 당시 김장환 수원중앙침례교회 원로목사의 주선으로 최 전 회장을 면회하고 그의 병실로 화분을 보냈다. ‘하나님은 사랑(요일 4:16)’이라는 글과 함께.

-화해와 회개의 의식이 필요하다고 느끼시나요?

“글쎄요. 아직도 뭔가 해결되지 않은 게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우리 두 사람이 교인들 앞에서 끌어안고 화평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나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하나님 앞에서 그 일에 대해 사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인도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김 전 장관은 옷 로비 의혹 사건이 불거진 후 서울 서초동 산정현교회로 옮겼다. 2008년 10월 김관선 목사의 권유로 처음 교인들 앞에서 간증을 했다. 현재 안수집사다. 아내는 권사로 봉사하고 있다.

DJ 비자금 수사 유보를 둘러싼 논란도 여전하다. 최근 그의 트위터(twitter.com/kimtaejoung)에 욕설에 가까운 글이 올라왔다. 수사 유보로 DJ가 당선됐고, 좌파가 난립하게 됐다는 취지였다.

-그 논란에 대해 설명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봤나요?

“언론에 저와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면 모두 찬성과 반대, 우호와 비난이 반반씩 나옵니다. 제가 정치적 판단으로 유보한 게 아닌데 15년이 지난 지금도 찬반 논쟁입니다. 이것이 나의 숙명인지 착잡합니다. 하지만 그때 이야기를 지금 밝히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찬반 양론이 들끓을 일이 걱정스럽습니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본지의 재고 요청을 숙고한 뒤 DJ 비자금 수사 유보 당시의 판단을 공개하기로 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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