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토크] 기생충의 면역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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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토크] 기생충의 면역반응

입력 2013-10-04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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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사십년 전만 해도 학교에서 대변검사를 하면 회충에 감염된 학생들이 수두룩하게 나오곤 했다. 회충을 실험실에서 직접 해부해본 생물학도들은 그 과정에서 몇 번이나 놀란다고 한다.

먼저 하얀 전깃줄 같은 회충이 20∼30㎝에 달하는 엄청난 길이에다 새끼 손가락만한 굵기를 가진 모습을 보면 질겁한다. 더 엽기적인 건 배를 갈랐을 때 겉으로 드러나는 회충의 내장기관들이다.

입에서부터 항문까지 한 줄로 이어진 소화기관 외엔 온통 꼬불꼬불한 실 같은 조직뿐이기 때문이다. 그 실 같은 조직은 바로 알을 낳기 위한 생식기관이다. 숙주에 얹혀사는 기생충의 입장에선 소화를 잘 시키고 알만 부지런히 낳으면 되니 다른 복잡한 조직은 아예 필요 없을 게다.

하지만 이처럼 끔찍하게 단순한 기생충도 인간이 상상하는 것 이상의 복잡한 일을 척척 해내곤 한다. 대표적인 것이 거의 모든 온혈동물에 기생하는 ‘톡소포자충’이다. 이 기생충은 쥐에 감염돼 알이 성숙하고 자라는 동안만 기생한 뒤, 고양이의 장내에서 알을 낳아 번식한다. 즉, 고양이를 종숙주로 삼으면서 중간숙주로 쥐를 선택한 것이다.

쥐에 기생하던 톡소포자충의 유충들이 고양이의 몸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기가 막히다. 쥐의 뇌를 조절해 고양이 냄새를 감지하는 능력을 잃게 하는 것. 즉, 고양이에게 쥐들이 잘 잡혀 먹히게 만들어 고양이 몸 안으로 들어간다. 신기한 것은 톡소포자충에 의해 고양이 냄새를 감지하는 능력을 잃은 쥐들은 그들이 없어진 후에도 계속 그 능력을 회복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단세포 기생충이 인간보다 뇌의 메커니즘을 더 잘 이해하고 있는 셈이다. 전 세계 인구의 약 절반도 이 톡소포자충에 감염되어 있다. 그러나 면역체계가 정상인 사람은 감염되더라도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다. 이는 이 기생충이 그만큼 숙주의 면역체계를 조작하는 데 능숙하다는 증거다. 미 코넬대 연구팀의 연구에 의하면 톡소포자충은 염증 반응을 억제하는 특별한 단백질을 생성해 면역세포를 속이는 것으로 드러났다. 회충 역시 그 크고 끔찍한 형상으로 인간의 몸속에 기생하기 위해선 인체의 면역 시스템이 자기들을 공격하는 것을 완화시키는 단백질을 생성해야 한다.

최근 브라질 연구팀은 어린이들의 대변에서 추출한 회충에서 단백질을 분리해내 백혈구에 노출시킨 결과, 인체의 면역반응에 대한 억제 작용을 확인했다고 한다. 기생충의 단백질이 알레르기 비염 같은 자가면역질환을 치료할 수 있는 강력한 후보물질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성규(과학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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