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글 띄어쓰기 첫 도입은 로스 선교사”… “세종대왕의 거룩한 뜻 기독교가 실현”

국민일보

“한글 띄어쓰기 첫 도입은 로스 선교사”… “세종대왕의 거룩한 뜻 기독교가 실현”

입력 2013-10-08 17:28 수정 2013-10-08 2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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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대중화 이끈 기독교 역할 재조명

“무엇보다도 놀라운 섭리는 이런 문자(한글)가 400년 동안 긴 잠을 자다가 자명종 소리에 깨어나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역을 전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울 연동교회 초대 담임목사를 지낸 제임스 스카스 게일(1863∼1937) 선교사가 1909년 영문 선교잡지에 기고한 내용 중 일부다. 이듬해 6월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열린 세계선교사대회에서의 보고서 내용도 흥미롭다. “아마 한국어 이외의 어떤 언어도 그렇게 짧은 기간에 기독교적 사상과 용어를 쉽게 옮겨 전할 수 있었던 언어는 없었을 것이다.”

567돌 한글날을 맞아 한글 보급·전파에 구심점이 됐던 국내 기독교계의 역할이 재조명되고 있다. 8일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이달 초 펴낸 ‘기독교, 한국에 살다’ 등 문헌에 따르면 한국의 외국인 선교사들이 한글을 ‘선교 언어(mission language)’로 채택한 게 한글 전파의 중요한 견인차가 됐다.

1893년 1월 미북장로회 선교부는 “모든 문서는 한문을 섞지 않고 순전히 한글로 인쇄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앞서 1888년 아펜젤러 선교사가 속한 미북감리회 선교부는 배재학당 안에 한글 자모를 구비한 활판소를 설립, 성서와 찬송가를 비롯해 ‘텬로력뎡(천로역정)’ 등 각종 한글문서를 출판했다.

특히 1911년 신·구약 성경 전체가 한글로 번역돼 총 2174쪽 94만여자를 수록한 ‘셩경젼셔(성경전서)’가 출간된 건 역사적인 사건이다. 한글 창제 이후 이 정도 수준의 풍부한 어휘와 활자로 한글의 존재를 표현한 적은 없었을 것이라는 것이 기독 역사학계의 평가다. 당시 한글의 보급·전파, 교육·연구 등의 일등공신은 외국인 선교사들과 국내의 기독인 학자들이었다.

한글 출판물 가운데 처음으로 띄어쓰기가 도입된 문헌은 스코틀랜드 출신의 존 로스(1841∼1915) 선교사가 쓴 한국어 교재 ‘조선어 첫걸음(Corean Primer)’이다. 그는 세례를 받은 한국인들과 함께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면서 한글의 매력에 푹 빠졌다.

“한글 자모는 아름다운 음성문자로 너무나 간단해서 모든 남녀노소가 읽을 수 있습니다. 소리글자이므로 한글로 인쇄된 어떤 책이든 자모만 배우면 읽을 수 있습니다.”(조선어 첫걸음)

한국어 실력이 뛰어났던 언더우드와 게일 선교사 등은 한국어를 제대로 익히기 위해 한글 어휘를 수집·정리해 사전을 출판하는가 하면 한글 문법서를 손수 만들기도 했다. “해방 직전까지 한글을 ‘공공 용어(대중어·public language)’로 사용한 곳은 교회뿐이었다”는 주장(한국기독교문화운동사·이만열 저)도 있다. 조선총독부는 1940년 이후 교회에서도 일본어로 설교하도록 지시했지만 교인들은 계속 한글 성경과 찬송가를 사용해 예배를 드렸다는 것이다.

한글날을 제정한 한글학회를 비롯해 이 단체 전신인 ‘국어연구학회’ 인사 대부분도 기독인 학자들이었다. ‘한글운동의 선구자’이자 감리교인이었던 주시경 선생의 한글 사랑은 배재학당과 상동교회에서의 신앙생활이 밑거름이 됐다. 그의 제자이면서 한글학회 핵심 멤버였던 최현배 장로는 평소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의 거룩한 뜻이 기독교에서 실현된 것”이라고 말했다.

임희국 장로회신학대 교수는 “겨레의 언어(한글)를 민족의 문화 속으로 뿌리내리게 만든 건 한국의 기독교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면서 “한글 성경의 발간과 보급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박재찬 김경택 기자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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