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김상기] 상기형아의 소망

국민일보

[창-김상기] 상기형아의 소망

입력 2013-10-18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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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네티즌님들. 쿠키뉴스 김상기 기자입니다. 인터넷에서는 흔히 ‘상기형아’로 통하는데, 저, 다들 아시죠? 인터넷 클릭 좀 해보신 분들이라면 ‘불펌기자’라며 제 욕 한 번 안 했을 리 없을 테니까요. 인터넷에 나도는 사진이나 글, 동영상 등을 허락 없이 마구 퍼가서 기사화한다고 말이죠. 이제 생각나셨죠? 제가 바로 그 악명 높은 ‘기레기’(쓰레기+기자)의 원조 상기형아입니다. 그동안 네티즌 집단 공격을 피하려고 숨어 살았는데, 여기서 이렇게 만나게 되네요.

제가 얼마나 욕을 많이 먹는지는 포털 사이트 뉴스페이지에 걸린 제 기사의 댓글을 보면 됩니다. 추천이 많은 베스트 댓글 3개 중에는 ‘국민일보는 상기한테 월급 주지 마라’거나 ‘제목만 보고 불펌쟁이 김상기인 줄 알았다’는 문구가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돌 정도니까요. 2000년대 초 인터넷용 기사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별의별 욕을 다 들었어요. 어떤 기사를 쓰더라도 네티즌들의 비난을 피하기는 어려웠습니다.

‘개똥녀’ 사건을 볼까요. 2005년 6월이었습니다. ‘상기형아∼ 빨리 출동해줘’란 이메일 제보가 여러 통 들어왔더군요. 안고 있던 개가 지하철 바닥에 물똥을 쌌는데 바닥은 닦지 않고 개 항문만 닦다가 다른 승객들과 언쟁을 벌인 여자를 고발한 내용이었습니다. 사진을 붙여 기사를 올리니 ‘역시, 상기형아! 가려운 데 긁어줘서 고마워’라는 칭찬 댓글이 달리더군요. 인터넷에서 ‘개똥녀’가 핫이슈로 떠올랐습니다. 룰루랄라∼ 이튿날 기분 좋게 출근했는데, 헐! 제가 글쎄 천하에 둘도 없는 못된 기자놈이 돼 있더군요. ‘상기가 마녀사냥 부추겼다’는 댓글에서부터 ‘개똥녀가 잘못되면 상기 책임이지’라는 글까지 오르내렸습니다.

나름 좋은 기사를 썼다고 생각해도 네티즌들의 욕설은 피해갈 수 없었습니다. 지난 5월에는 우리 사회 갑을관계 뇌관을 터뜨린 ‘남양유업 폭언 음성파일’을 기사로 썼는데, 역시 비난을 받았습니다. ‘너 때문에 우리 아빠 직장 잃을지도 몰라. 밤길 조심해라.’ ‘이런, 또 김상기잖아. 발로 안 뛰고 인터넷 서핑으로 날로 먹는 불펌기자. 나도 기자나 해볼까?’

사실 이런 비난에 익숙해진 지 오랩니다. 10여년간 수없이 뭇매를 맞으면서 맷집이 생겼나 봅니다. 제 기사와 의견이 다른 사람이 비난하면 ‘국민 개그맨 유재석도 안티가 있는데 뭘. 그까짓 쯤이야 하하’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발품을 팔지 않고 인터넷만 기웃댄다는 지적에는 ‘온 국민이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데 흥, 인터넷이야말로 진짜 출입처 아닌가?’라며 위로하곤 했고요.

이처럼 인터넷에서 가루가 되도록 밟혀도 헤헤거리며 버틴 제가 딱 하나 견디지 못하는 게 있습니다. 바로 거짓 정보에 낚여서 엉터리 기사를 쓴 걸 들켰을 때입니다. 2006년 2월 온 국민에게 감동을 선사했던 ‘지하철 결혼식’을 기억하시나요? 달리는 서울지하철 5호선에서 결혼식을 올린 젊은이들을 촬영한 영상인데, 알고 보니 연극과 대학생들이 벌인 게릴라 실험극이었죠. 학생들의 연기가 지나치게 일품이었습니다. ‘쓸데없이 고(高) 퀄리티’라는 요즘 유행어랑 딱 맞네요. 게다가 지하철 승객들조차 진짜인줄 알고 감동의 눈물을 쏟았습니다. 낚이지 않을 재간이 없었어요. 영상을 보고 눈물이 핑 돌면서 감이 팍 오더군요. ‘아∼ 오늘은 이거다.’ 후다닥 기사를 썼습니다. 시민들의 성원이 쇄도했고요. 그날 한 지상파 8시뉴스 첫 꼭지로 ‘눈물의 지하철 결혼식’이 소개됐고, 노무현 당시 대통령에게 결혼식 주례를 요구하는 인터넷 청원까지 생겨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연극이었죠. 네티즌 비난이 그때처럼 무서운 적이 없었습니다.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죠. “날로 먹는 불펌기자”라는 비난에는 생각이 다른 사람의 지적이라며 웃어넘길 수 있지만 “사실 확인도 안 하고, 당신 기자 맞아?”라는 지적에는 할 말이 없으니까요.

그날 이후로 제가 인터넷에서 낚이지 않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르실 거예요. 궁예가 관심법 하듯 인터넷을 꿰뚫어 보려고 했다니까요. 익명이거나 출처가 불분명한 사진은 의심부터 하고, 아이피나 이미지 검색을 생활화하는 식으로 말이죠. 어느 정도 노하우가 쌓이니 자신감이 붙었습니다. ‘인터넷에서 낚이지 않는 법’으로 책도 내고, 강연도 나가 볼까?라며 혼자 피식거릴 정도로 말이죠.

근데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이 터졌습니다. 아직 서른이 안 된 여직원이 인터넷에 남긴 글도 보았고요. 그리고 저는 지금 ‘멘붕’(멘탈붕괴) 중입니다. 몇 년간 낚이지 않는 법을 연마했으나 인터넷 강호에는 범접하기 힘든 낚시 고수들이 즐비하다는 사실을 통감했기 때문입니다. 종북 좌파 선동에 맞대응하고 젊은 세대가 올바른 국가관과 애국심을 갖게 하기 위한 작업이었다는데, 부디 저 같은 순진한 ‘찌질이’들이 마음 편히 놀 수 있는 깨끗한 인터넷이 하루빨리 돌아오길 바랍니다.

김상기 디지털뉴스센터 기자 kitting@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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