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종원] 위험사회에 안전그물 펼칠 때

국민일보

[기고-박종원] 위험사회에 안전그물 펼칠 때

입력 2013-11-25 17:49

기사사진


독일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사회 전반에 팽배한 불안감과 위기의식을 관찰하고 현대사회를 ‘위험사회’로 정의했다. 벡은 현대인의 삶을 두고 “문명이라는 화산(火山) 위에서 살아가기”라고 표현했는데, 과학기술 문명이 발달할수록 그 부작용과 파괴적 위력도 더 커져가는 ‘위험의 확장’ 현상을 간결하고 명쾌하게 집약한 말이다.

위험의 확장 현상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영역이 바로 환경 분야이다. 공장의 화학물질, 중국발(發) 스모그, 지하철 석면, 바다의 유류오염, 방사능 공포에 이르기까지 환경오염은 문명으로부터 비롯한다. 가깝게는 지난해 9월 발생한 구미 불산 누출사건으로부터 멀게는 1970년대 온산 사건에 이르기까지 문명은 우리에게 편리와 위험을 동시에 가져다주었다.

환경오염은 잠재위험이 현실화되었을 때 너 나 할 것 없이 무차별적 폐해가 미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고 위협적이다.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입장에서도 이는 끔찍한 일이지만 수많은 사람들의 피해를 책임져야 하는 산업계 종사자 입장에서도 두렵기는 마찬가지다. 하지만 위험 때문에 프로메테우스의 불을 거부할 수는 없다. 문명을 발전시킬 역량이 있다면 그로 인한 위험을 안전하게 관리할 역량도 동시에 키울 수 있다.

환경오염 사고 예방을 위해 더욱 발전된 형태의 리스크 관리가 요청되는 한편 피해를 충실하게 구제하기 위한 법질서의 정비 또한 필요하다. 우리나라 환경법에서 환경오염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은 일정 수준 관찰되지만, 이미 발생한 환경오염으로 인한 피해를 충실하게 구제하기 위한 노력은 그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환경오염의 피해에 대한 무과실책임을 규정하고 있는 ‘환경정책기본법’ 제44조가 있기는 하나, 이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같은 법 제43조는 국가로 하여금 환경오염으로 인한 피해를 원활하게 구제하기 위해 필요한 시책을 마련할 것을 명하고 있다. 이제는 환경오염 피해의 원활한 구제를 위한 법질서를 정비할 때다.

다행히도 지난 7월 말 국회에서 발의된 ‘환경오염피해 구제에 관한 법률안’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일정한 요소를 구비하고 있다. 법률안은 환경정책기본법이 천명하는 위험책임 법리를 재확인하고 있고, 인과관계의 추정 등 그간 법원 판례를 중심으로 점증적 발전을 거듭해온 환경법 이론을 발전적으로 담고 있다. 또한 손해배상책임의 이행을 확보하기 위해 환경책임보험제도도 도입하고 있다. 이는 환경오염피해의 충실한 구제를 현실화할 수 있는 손과 발을 달아주는 것이다.

특히 환경책임보험제도의 도입은 보험회사의 보험가입자 관리를 통한 사전적 리스크 경감에도 기여할 수 있고, 환경오염 사고가 발생한 경우 분쟁의 합리적 해결과 실효적인 피해구제 등에 있어서도 효과적 기제로 작동할 수 있다. 법률안은 추후 입법과정에서 일정 부분 수정·보완이 필요한 미완의 상태로 평가된다.

하지만 일부 산업계의 요구처럼 법률 제정을 거부하기에는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위험의 규모가 너무나 크고 광범위하다. 문명의 발전은 한 개인, 한 기업의 실수가 사회 전반에 막대한 파급력을 발휘할 수 있는 지렛대를 만들었다. 환경오염 위험은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는 보편적 문제이자 현대의 당면 과제이므로, 개별 기업의 리스크 관리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사회의 공동대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박종원 부경대 교수·법학과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