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박병권] 한국에서 대통령 되는 법

국민일보

[여의춘추-박병권] 한국에서 대통령 되는 법

입력 2014-04-02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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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을 획득하고 싶으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냉철해야 한다는 것이다 ”

자유민주주의가 활짝 꽃핀 미국은 일찍이 토크빌이 예언했듯이 세계 최강국으로 자리잡았다. 초창기 청교도 이주민들의 근면과 신앙이 공동체의 문화로 깊게 뿌리내려 다민족 국가이면서도 세계를 쥐락펴락한다. 다른 나라보다 현저하게 늦게 근대국가를 형성했지만 최정상으로 발돋움하는 데 그리 오랜 세월이 걸리지 않았다.

이미 20세기 초에 요즘에도 생소한 대통령학을 대학에서 가르쳤다. 대통령제 국가 가운데 성공한 거의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에 남다른 연구도 많았다. 우리나라의 미국 유학파 가운데서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를 배웠다. 그러나 학문으로서의 대통령학은 우리나라에 착근하지는 못한 것 같다. 대통령 되는 기술쯤으로 치부돼 본격적인 담론을 이끌어 내지 못했다.

사실 미국이 대통령학을 가르쳐서 그렇지 실질적인 최초의 대통령학 교과서는 다름 아닌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아닐까 싶다. 동양의 제왕학 고전으로 불리는 ‘정관정요’나 청 옹정제의 용인술을 다룬 ‘치국’에 비할 바 아니다. 흔히 권모술수형 정치인을 ‘마키아벨리스트’로 부르고, 그를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한다는 명제를 만든 결과주의자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체를 잘 모르고 하는 이야기일 뿐이다.

군주론과 함께 ‘정략론’ ‘전략론’ 등의 명저를 남긴 그의 저작 어디에도 도덕을 무시하라거나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준다는 등의 주장은 없다. 그는 1521년에 간행된 ‘전략론’을 통해 시민군제도의 필요성을 역설한 애국적인 인물이다. 그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친구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 한탄한 대목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최근 여야 정치인들이 국회에서 ‘군주론 집필 500주년’을 기념한 국제심포지엄을 열고 정치현실주의자인 그를 재조명하는 작업에 착수한 것은 주목된다. 마키아벨리에 관한 책도 여러 권 나왔다. 대부분 긍정적으로 기술된 것이다. 공공의 적이 돼버린 국가정보원 옛 구호처럼 마키아벨리가 마치 음지에서 양지로 나온 듯하다.

그에 대해 긍정적인 시각이 태동한 것은 아마도 ‘로마인 이야기’로 우리나라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시오노 나나미의 책 ‘나의 친구 마키아벨리’ 때문일 것이다. 정치학자가 아닌 사학자로서 철저한 고증과 친근한 소설식 기법으로, 어찌 보면 미시사(微視史)를 연상케 하는 방식을 선호하는 시오노 여사의 한국 팬은 많다.

마키아벨리의 변호를 자처한 영국 철학자 버트란드 러셀이 간파한 군주론과 정략론의 요점은 간단하지만 심오하다. 즉 마키아벨리의 탐구 분야는 선악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너머에 있으며 인간을 근본적으로 나쁜 존재로 보지 않았다는 것이다. 러셀은 이렇게 결론을 낸다. 권력을 획득하고 싶으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냉철’해야 한다. 이것이 마키아벨리즘의 본질이라고.

거대 단일 야당의 출현으로 한국 정치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 이념이 혼재돼 색깔이 분명하지는 않지만 칼라를 문제 삼을 국민들은 별로 없다. 정치의 목적을 달성하면 그만이지 친노니 반노니 비노니 하는 등등의 언술은 수사에 불과하다.

모습만 지방선거이지 대통령선거 버금가는 열기를 뿜고 있는 여권의 서울시장 후보경선도 볼 만하다. 경선 룰 문제로 유력후보 한 명이 잠시 잠적하는 코미디 같은 일이 있었지만 원상회복됐다. 법조인 출신이라 그런지 원칙 문제에 집착하는 듯 보이기도 한다. 분명한 것은 정치와 법은 비슷해 보여도 천양지차라는 사실이다. 경선을 치러 보면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도대체 정치세계에 원칙이 어디에 있나. 특히 한국 정치판에.

여야 정치인들이 정파를 떠나 마키아벨리를 재조명한다고 하니 성과가 기대된다. 그를 철저히 연구해 꺼져 가는 조국 피렌체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 그의 애국심을 배우기 바란다. 아울러 정치의 본질은 공존이며 ‘사자의 용기와 여우의 지혜’는 조국을 수호해야 할 때 갖춰야 할 덕목이란 점을 알았으면 좋겠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