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이기웅] 백범일지를 殮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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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이기웅] 백범일지를 殮하다

입력 2014-04-23 0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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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는 ‘백범일지(白凡逸志)’가 책으로 처음 출간된 지 육십칠 년째 되는 해다. 백범의 연세 쉰셋 되시던 1928년 봄 무렵 상해 임시정부 청사에서 집필하기 시작해 이듬해 5월 3일 완료한 ‘상권’과 예순일곱 되시던 1942년 중경 임시정부 청사에서 쓴 ‘하권’, 해방 후 귀국 과정과 귀국 후의 활동에 관해 구술한 ‘계속’분, 여기에 ‘나의 소원’을 덧붙여 1947년 국사원(國士院)에서 출간한 것이 ‘백범일지’의 효시이다.

이 기록은 세월을 거듭하면서 다양한 판본으로 출간되어 널리 읽혔으며, 어느새 우리 국민들에게 정신적 버팀목이 되는 상징적 존재가 되었고, 그 원본은 현재 보물로 지정되어 우리의 소중한 기록문화유산으로 남아 있다.

원본성 크게 훼손시킨 첫 출간

그러나 안타깝게도 ‘백범일지’의 출간은 처음부터 단추가 잘못 꿰어졌다. 원본성(原本性)이 크게 훼손된 것이다. 첫 출간 당시 원고의 교열을 본 이는 춘원 이광수로 알려져 있는데, 그로 인해 백범의 냄새가 거의 모두 지워져 버렸다. 백범 특유의 투박한 듯한 문체가 너무나 말끔하게 윤색되었을 뿐 아니라 인명, 지명의 착오, 내용의 뒤바뀐 서술, 심지어는 원문이 대폭 생략되기도 하는 등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1994년 백범 선생의 차남 김신 장군이 원본을 공개하면서 영인본이 출간될 때까지 우리 일반 모두는 그런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더 큰 문제는, 이후 이십 년이 흘렀으나 원본에 준하는 ‘백범일지’의 정본 텍스트는 아직도 출간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내가 책임을 맡고 있는 열화당(悅話堂)에서 이 책의 복간을 결정하고, 이미 그 첫발을 내딛고 있다.

‘백범일지’의 복간은 원본성 문제에서 출발한 것만은 아니었다. 우리의 올바른 ‘말뿌리’와 ‘글뿌리’를 찾고자 하는 열화당의 출판정신이 그 배경에 깊숙이 깔려 있다. ‘백범일지’ 원본의 수많은 한자, 한문투의 문장들은 한자와 한글이 함께해온 우리말, 우리 문자의 역사적 운명 속에서 이뤄진 소산이다. 한글과 한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떼어서는 아니 되는 언어적 숙명관계에 있다. 우리 어문(語文)을 향한 백범의 생각과 글쓰기 또한 중요할 것이다. 이런 언어 전통을 알고, 이를 기반으로 한글과 한문을 조화롭게 구사하는 글쓰기 작업에 매진했던 선구적인 문인과 학자, 그리고 다양한 분야의 선각자들에 의해 오늘의 글쓰기에 이르는 놀라운 글길(文道)이 이뤄져 온 것이다.

‘백범일지’ 출간에서 힘을 빌릴 최고의 솜씨는 오로지 백범뿐이다. 아무도 이를 대신할 수 없다. 우리는 이러한 생각을 원칙으로 삼고 철두철미 원본에 근거한 ‘백범일지’를 복간할 계획이다. 일반인들도 접할 수 있는, 오늘의 언어로 조심스럽게 바꾸고 주석을 단 새로운 우리말본도 함께 선보일 것이다.

이러한 계획을 추진하면서 자문을 구한 어느 학자는, 지금까지 출간된 ‘백범일지’가 팔십여 종이나 되는데 또 무엇 하러 책을 내려 하는가, 그거 장사 안 될 텐데 하고 걱정한다. 참담할 따름이었다. 출판이 저잣거리의 장사행위로만 인식되는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을 넘어, 학문도 장사를 위해 존재하는지 묻고 싶었다.

白凡 체취 살아있는 책 낼 것

오는 6월 26일이면 백범 선생이 서울 경교장(京橋莊)에서 돌아가신 지 65년이 된다. ‘백범일지’의 간행 역사를 보면서, 우리는 환경과 여건에 따라 그 본의가 잘못 전달되고 있음을 목격했고, 이것이 역사의 기록으로 그대로 전해질 것을 두려워하면서, 이제라도 백범의 체취가 살아 있는 육필 원고와 파란만장했던 일생의 자취를 정성껏 염(殮)하는 심정으로 이 책을 복간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는 정녕 백범을 위한 일일 뿐 아니라 우리 민족의 자존이 걸린 일이 아닐까 한다.

이기웅 열화당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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