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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자리에 예쁜 사복 입혀 여군 보내라' 명령에 피우진이 한 일

입력 2017-05-18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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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우진 국가보훈처장의 7년 전 중령 전역식 고별사는 '여군'으로 시작해 '여군'으로 끝난다. 30년 동안 여성이 아닌 군인으로 살고 싶었지만, 부당한 전역 처분을 받는 등 우여곡절을 겪은 피우진 보훈처장. 그는 30년 몸 바쳐 일했던 군을 떠나는 날에도 남성 중심 문화에서 여군이 더 씩씩하고 당당하자고 말했다.

피우진 보훈처장은 2009년 9월 29일 중령으로 전역했다. 당시 전역식 영상은 박영선 언론연대 대외협력국장이 촬영해 1인 미디어인 미디어몽구가 며칠 뒤 공개했다. 유튜브에 7년 전 올라온 영상에는 최근까지도 "정말 멋있다"는 댓글이 달렸다.

피우진 보훈처장은 고별사 내내 '여군'을 얘기했다. '여군' 선후배 덕에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고 했고 '여군을 지켜보고 계시는 여군 호국 영령들'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마지막으로 전투복을 입었다"면서 "군복 중 모든 군인에 통일된 복장으로 제가 희망했던 군인의 상징이었기에 이 군복을 입었다"고 했다.

이어 "30년 7개월 늘 군인으로 살고 싶었지만 여군이라는 한계의 짐을 지고 살았다"며 "여군 전우가 없었다면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또 "당장 내일 발표된 대령 진급에 다수의 여군이 있기를 , 최초의 여성 장군이 나오길 기대한다"고도 했다.

영상은 노래 '날 보러와요'의 몇 소절을 부른 뒤 "외로울 때 연락 할 수 있는 자랑스러운 군 선배로 거듭나려 한다. 여군이여 영원하라"는 말로 끝난다.

피우진 보훈처장은 남성 중심의 군 문화에 맞서 싸웠다.
현역 시절 UH-1H 헬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피우진 신임 국가보훈처장. 육군 제공


월간지 '신동아' 2006년 12월호에 '사령관이 술자리에 사복 입은 여군을 오라'는 명령에 자신만의 방법으로 대응한 일화가 소개됐다. 이 내용은 보훈처장 발표 이후 각종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를 통해 퍼지기도 했다.

1988년 피우진 중령이 대위였을 때, 한 사령관은 나이트클럽에서 술을 마시다가, 일직 사관에 전화를 걸어 여군을 보내라고 자주 명령했다고 한다. 여군 외출승인을 해야 하는 게 바로 피우진 대위였다.

피우진 보훈처장은 당시 신동아 인터뷰에서 "불러서는 옆에 앉히고 술 시중을 들게 하면서 같이 노래를 부르거나 블루스를 추게 한다고 했다. 접대부가 따로 없었다"고 했다.

여러 차례 외출 승인을 거부하자, 사령관은 피우진 당시 대위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욕을 해댔단다. 그는 '꼭 예쁜 사복을 입고 오라'고 사령관 요구에 '전투복'을 입혀 내보냈다. 그 여군은 바로 부대에 복귀했다. 피우진 대위는 보직해임을 당했다고 한다.

2006년 출간된 자서전 '여군은 초콜릿을 좋아하지 않는다'에서 여군과 남군이 똑같이 평가받을 수 있길 꿈꿨다.


"군은 과연 우리 여군들에게 무엇을 바라는가? 능력인가, 치마인가? 나는 우리 여군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이다. 실제로 많은 여군들이 남성 못지않은 능력을 다방면에서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지휘관은 우리 여군들에게 '능력'보다는 군이라는 남성 문화에 부드러운 역할을 해주는 '치마'로서의 여성을 원한다. 여군의 능력보다는 여성의 능력을 원하는 경우가 사실은 더 많았다.

스스로 치마폭과 눈물과 초콜릿에만 감싸여 있기를 원하는 여군은 별로 없다. 아니, 그런 여성은 처음부터 군에 지원하지 않는다. 우리 여군은 단지 여자라는 이유로 그 어떤 특권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군에 들어와 나라에 충성을 다하고 저마다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여 멋진 군인이 되고 싶을 뿐이다. 우리는 결코 '치마'를 내세우려고 들어온 것이 아니다. 그러나 현실은 우리 여군들에게 '치마'를 강요한다.
"
2008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나의 군인 정신은 나라를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나의 적은 북쪽 어디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주변의 남군이고 문서 쪼가리들이었다"고 말한 적도 있다.

피우진 보훈처장은 1979년 소위로 임관한 후, 특전사 중대장, 육군 205 항공대대 헬기 조종사 등을 거쳤다.

2002년 왼쪽 가슴에 유방암 선고를 받았고, 이로 인해 2006년 전역 처분을 받았다. 이후 오랜 소송 끝에 2008년 5월 복직했다.

조현옥 청와대 인사수석은 17일 피우진 예비역 중령을 국가보훈처장에 임명한다고 발표했다. 

"스스로의 힘으로 유리 천장을 뚫고 여성이 처음 가는 길을 개척해 왔다." 문재인 정부가 피우진 중령을 보훈처장에 발탁한 이유다.
피우진 보훈처장 임명자가 17일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인선 소감을 밝히고 있다. 사진=뉴시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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