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 창원 110번 버스에는 '의인들'이 타고 있었다

국민일보

한밤 창원 110번 버스에는 '의인들'이 타고 있었다

입력 2017-08-11 14:07
취재대행소왱

9일 오후 10시35분께 경남 창원 시내버스 110번에서 '쿵'하며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승객 20여명을 태우고 창원시 마산회원구 보문주유소를 지나 창원 교도소 지점을 향해 버스를 몰던 운전기사 임채규(43)씨는 소리에 놀라 백미러를 쳐다봤다.

거울을 통해 보니 한 20대 남자 승객이 발작을 일으키며 들고 있던 가방을 떨어뜨린 채 의자 뒤로 고개를 젖혀 의식을 잃고 있었다. 놀란 임씨는 버스를 창원교도소 정거장 인근에 세운 뒤 쓰러진 승객을 향해 달려갔다. 다른 승객들도 남성의 상태를 확인했다. 의식을 잃은 이 남성은 다행히 호흡에는 이상이 없었다.



즉시 119에 신고한 임 씨는 응급차가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려 했으나 몇몇 승객들은 "응급차가 언제 도착할지 모르니 차라리 우리가 이 남성을 데리고 병원으로 가자"고 했다. 의식을 잃고 있는 승객을 두고 구급차만을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한 임씨는 현 위치에서 가장 가까운 병원까지 5~10분이면 도착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구급차가 환자를 이송해 병원에 도착하는 것보다 2배 넘게 시간을 단축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임씨는 승객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의 부탁에 반대하는 승객은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오히려 2~3명의 승객들은 버스가 노선을 이탈해 병원으로 가는 동안 바닥에 쓰러진 20대 환자를 붙잡고 심폐소생술을 했다. 약 10분 뒤 응급실에 도착했고 승객들의 응급처치 때문인지 환자는 의식이 어느 정도 돌아왔다. 119 응급차가 호출 현장인 창원교도소에 도착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환자를 병원으로 이송한 임씨는 정거장을 놓친 승객들에게 모두 데려다주겠다고 제안했으나 승객들은 "환승해서 가면 되니 신경 쓰지 말라"며 병원에서 흩어졌다. 가는 방향이 맞는 일부 승객만을 태운 임씨는 종점인 인계초등학교에 도착한 뒤 퇴근했다.

이날 임씨가 이송한 20대 환자는 무사히 치료를 받고 퇴원했다. 임씨는 "승객들이 내 일처럼 적극적으로 나서며 불편함을 감수해 좋은 결과가 있었지 내가 한 것은 운전밖에 없다"며 "당시 버스에 남녀노소 다양한 연령층이 있었는데 모두 좋은 사람들이었던 게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한 일은 버스 기사로서 당연한 책임이자 의무이지 선행이라 할 수 없다"며 "그런 상황을 대비한 매뉴얼도 없고 경험도 없어 당황한 나를 도와주고 협력해준 승객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라고 덧붙였다.

박세원 기자 sewon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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