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영 기자의 안녕? 나사로] 장애인의 땀에 박수를…

국민일보

[최기영 기자의 안녕? 나사로] 장애인의 땀에 박수를…

입력 2017-09-08 15:08
취재대행소왱
미국 오페라의 심장인 뉴욕 ‘메트로폴리탄 극장’에서 데뷔, 이탈리아 클래식음악계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프랑코 아비아티상 수상, 영국 체임버오케스트라 수석지휘자….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지휘자 제프리 테이트(Jeffrey Tate·1943~2017)가 걸어온 길이다.


업적들만 보면 우아한 연미복을 입은 채 공연장의 포디엄(Podium·지휘자가 올라서는 단)에 서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모습이 그려질지 모른다. 하지만 사람들은 테이트를 대표하는 수식어를 듣곤 깜짝 놀란다. 바로 ‘휠체어 위의 마에스트로’다.

그는 척추갈림증(Spina bifida)과 척추후만증(kyphosis)을 동시에 갖고 태어난 지체장애인이다. 왼쪽 다리가 오른쪽 다리보다 짧아 지팡이의 힘을 빌리지 않고는 걸음조차 힘들다. 힘겹게 걸을 때면 왼쪽 바짓단이 볼품없이 펄럭였고 유년시절엔 ‘꼽추’라는 놀림을 받아야 했다.

안정적인 직장을 갖기 위해 각고의 노력 끝에 영국 케임브리지대 의대를 졸업하고 런던 토마스병원에 들어갔다. 하지만 그는 인턴생활을 하면서도 어렸을 적 성가대에서 찬양하고 피아노 반주를 하며 느꼈던 행복을 잊지 못해 병원합창단을 만들어 활동했다. 결국 음악을 향한 사랑은 그를 수술실에서 공연장으로 돌려놨다. 런던 코벤트가든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 ‘레페티퇴르(repetiteur·성악 연습코치)’를 뽑는다는 소식을 접한 테이트는 꿈을 위해 의사가운을 벗었다.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지휘자’로서의 첫 걸음을 내디뎠다.

지난 24일 강원도 속초시문화회관에선 장애인과 비장애인 예술인 100여명의 하모니가 무대 위를 수놓았다. 부채춤 공연이 펼쳐질 땐 둥글게 이어져야 할 원에 모가 났고, 하모니카와 합주를 이룬 탬버린 연주는 연신 박자가 어긋났다. 보통의 음악제였다면 ‘제대로 준비되지 않은 무대’라며 손가락질 받을 상황이었다. 그러나 실수가 나올수록 박수가 더 커졌다. 틀릴수록 더 찬사를 받는 공연이었다.

무대를 지켜보던 한 지체장애인은 “공연을 준비하기 위해 흘렸을 땀과 노력의 크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누군가에겐 잘 할까 못 할까 마음 졸이는 순간일지 모르지만 장애인들에겐 무대에 오르는 순간 자체가 감동이고 기적”이라고 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무대에서 내려온 발달장애인은 “연습한 만큼 보여주지 못해 아쉽지만 무대를 준비한 순간순간 행복했다”며 “사람들은 몰라주더라도 하나님께선 마음속에 가득 찬 기쁨을 알아주실 것”이라고 했다.

장애가 덮쳤지만 굴복하지 않았고 꿈을 놓칠 수 없어 도전을 멈추지 않았던 제프리 테이트는 지난 4월 음악에 대한 열정과 공로를 인정받아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Knight) 작위를 받았다. 두 달 뒤 이탈리아에서 콘서트 리허설 도중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타계한 그의 묘비엔 ‘제프리 테이트 경(Sir)’이란 호칭이 새겨졌다.

음악제 무대에 오른 장애인 예술인들은 손목이 꺾이고, 안면근육이 떨려 수시로 얼굴을 찡그린다. 하지만 그들을 바라보며 박수를 보내는 이들의 눈엔 육체적 장애 대신 마음속의 열정만 보이는 듯 했다.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삼상 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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