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폰 10년… '혁신의 역사' 결정적 장면 10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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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폰 10년… '혁신의 역사' 결정적 장면 10가지

입력 2017-09-1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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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플이 12일(현지시간) 아이폰 10주년을 기념하는 새 아이폰을 공개했다. 로마자로 숫자 10을 뜻하는 X를 모델명에 붙여 '아이폰X'라고 이름지었다.

아이폰의 역사는 단순히 스마트폰의 진화를 넘어 ‘혁신의 역사’가 됐다. 영국 BBC는 12일(현지시간) 아이폰 10주년을 기념해 아이폰 역사의 10가지 결정적 순간을 정리했다.

Ⅰ. 2004년 : '프로젝트 퍼플'의 탄생



애플은 아이맥과 아이팟의 성공 이후 차세대 혁신 제품으로 태블릿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스캇 포스톨 전 애플 수석디렉터는 올해초 한 행사에서 2004년에 스티브 잡스와 나눴던 이야기에 대해 언급했다. 당시 그들은 점심을 먹고 있었고, 주변을 살폈을 때 모두가 휴대전화를 가지고 있었다. 포스톨은 “모두가 그 기계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다들 왠지 맘에 들어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했다.

당시 애플 최고경영자(CEO)였던 잡스는 포스톨에게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크기에 멀티터치도 가능한 태블릿을 우리가 만들어낼 수 있을까?”라고 물었다. 이 말한마디에서 아이폰이 시작됐다. 애플 디자이너들은 잡스의 주문을 실현시킬 태블릿을 만들어내기 위해 프로젝트 '퍼플'을 시작했다. 포스톨은 "잡스가 프로젝트 '퍼플'의 두번째 시연을 봤을 때 '바로 이 것'이라고 느꼈을 것"이라며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앞으로 휴대전화가 존재해야 할 방식 그 자체였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훗날 한 특허분쟁에서 애플 디자이너들은 "2005년 8월에서 시작된 코드네임 '퍼플'이라는 프로젝트에서 아이폰의 기본 컨셉과 형태가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Ⅱ. 2008년 7월 : iOS 앱스토어가 열리다

현재 iOS 운영체제에는 200만개가 넘는 기본 애플리케이션(앱)이 있다. 아이폰 사용자들은 배경화면을 몇 페이지나 채울 정도로 많은 앱들을 이용한다. 그러나 처음 아이폰이 출시됐을 때에는 배경화면 한 페이지를 채우기도 어려울 만큼 앱이 적었다. 애플이 자사 개발자가 아닌 제 3개발자를 믿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애플은 제 3개발자가 앱을 만들어 앱스토어에 올리는 일을 제한했다. 잡스는 앱스토어를 통제하는 정책이 점점 더 복잡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애플은 앱스토어 개장 1년만에 정책을 바꿔 앱스토어의 문을 제 3개발자에게도 개방했다. 이 같은 인식의 전환은 애플과 제 3개발자들 모두에게 골드 러시가 됐다. 수많은 개발자가 앱스토어에 독창적인 앱을 선보였다. 앱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아이폰의 영향력도 그만큼 커졌다.

앱스토어는 그 자체로 플랫폼 혁명이었다. 당시를 경험했던 미국 덴버 지역 출신의 한 개발자는 "앱스토어는 '혁명'이었다"며 "독립적인 개발자들이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한 크기의 커뮤니티에 자신들이 만들어낸 앱을 올리면서 비즈니스를 창출하고, 돈을 버는 방식을 완전히 바꿔놓았다"고 밝혔다.

Ⅲ. 2008년 9월 : HTC의 스마트폰 '드림(Dream)' 출시

HTC의 구글 안드로이드 스마트폰 '드림'


지금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한때 구글의 최고경영자(CEO)는 애플 이사회의 일원이었다. 구글과 애플은 견고한 동맹관계였다. 그러나 이 두 회사의 동맹은 2008년 9월 대만의 스마트폰 제조업체 HTC가 최초의 구글 안드로이드폰 '드림'을 출시하면서 깨졌다. 이로써 아이폰과 안드로이드 폰 사이의 전쟁도 막이 올랐다.

구글 모회사인 '알파벳'의 회장 에릭 슈미트는 2009년까지 애플 이사회에서 사임하지 않았지만 최초의 구글 안드로이드 폰이 출시되자마자 애플에서 그의 사임은 기정사실화 됐다. HTC 드림은 여전히 아이폰이 결점을 드러내고 있는 복사·붙여넣기, 스트리트뷰, 멀티미디어 메시지 등에서 아이폰에 비해 더 나은 기능을 제공한다. 

아이폰과 안드로이드폰 사이의 전쟁에 관한 일화는 많다. 드림은 화면에 접촉하고 있는 손가락이 몇 개인지 인식할 수 있는 기술을 갖추고 있기에 이론적으로는 멀티터치 기능을 지원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기능을 사용할 수는 없다. 애플이 해당 기술에 대해 특허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0년 HTC가 이 기능을 후속 휴대전화에 넣자 잡스는 격노했다. 잡스는 그의 전기작가 월터 아이작슨에게 "안드로이드를 박살낼 것"이라며 "그것이 훔친 기술로 만든 제품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Ⅳ. 2010년 2월 : 음성인식 앱 '시리' 탄생

애플은 '시리'와 '더락' 드와인 존슨를 공동 출연시켜 만든 광고에 수백만달러를 쏟아붓는다. 그러나 시리가 처음 세상에 출시됐을 때만 해도 그다지 인기가 좋은 앱은 아니었다.   

음식점이나 이벤트 업체 등에서 예약 요금을 청구하는 용도에나 사용될 예정이었던 시리의 운명은 애플이 시리를 사기로 결정하면서 180도 달라졌다. 애플은 시리에 쓰인 기술을 사기 위해 2억달러(한화 약 2250억원)를 이상을 썼다. 업그레이드 된 시리는 2011년 10월 5일 출시된 아이폰4S의 기본 기능으로 자리잡았다.

Ⅴ. 2010년 6월 : 애플의 첫 셀카 아이폰 출시


아이폰4가 처음 출시됐을 때 각종 리뷰는 셀카보다는 영상 통화에 더 집중됐다. 당시에도 셀카라는 단어는 존재했지만 아직 대중적인 용어는 아니었다. 아이폰4에 셀카 기능이 실리면서 비로소 셀카 문화는 대중적인 지위를 확보할 수 있었다. 

아이폰4가 휴대전화 양면 모두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최초의 폰은 아니었다. 소니가 이미 2003년에 휴대전화 양면에 카메라가 있는 제품을 만들었다. 그러나 소니는 아이폰만큼의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 '디지털 전쟁'의 저자 찰스 아서는 "아이폰4는 매우 사용하기가 쉽고, 수많은 10대가 사용하고 있었고, 폭발적으로 증가한 모바일 앱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기기였다"며 "의도치 않은 결과의 전형적 사례"라고 설명했다.  

Ⅵ. 2011년 10월 : 스티브 잡스의 죽음 


팀 쿡이 2011년 8월4일 스티브 잡스를 대신해 아이폰4S를 공개했을 때 대중은 열렬히 비난했다. BBC는 심지어 그가 둔해보인다고 비난했다. 

쿡이 당시 멘토이자 친구였던 잡스가 곧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잡스는 아이폰4S 공개 다음날 죽음을 맞았다. 아마도 애플은 잡스가 1997년 회사로 돌아오지 않았다면 애초에 붕괴됐을지 모른다. 아이폰도 세상에 존재하지 못했을 것이다. 

애플은 잡스의 죽음 이후 아이폰이 성취해낸 만큼의 혁신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Ⅶ. 2012년 4월 : 페이스북의 인스타그램 인수



아이폰의 경제적 파급효과에 대한 대표적 사례다.  

페이스북은 인스타그램이 출시된지 18개월밖에 안됐고, 직원수는 13명에 불과했을 때 이 앱을 10억 달러(한화 약 1조1300억)에 인수했다. 많은 이들이 페이스북이 지나치게 많은 돈을 썼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 인스타그램은 그 비용보다 많은 돈을 광고비로만 벌어들이고 있다. 현 상황을 고려하면 인스타그램 인수는 '염가'나 다름없었다.

수많은 유명 앱들이 아이폰을 통해 데뷔했다. 우버, 에어비엔비, 딜리버루가 대표적이다. 앱들은 다양한 방향에서 기성 산업을 뒤흔들고 있다. 전 세계 '앱 경제'의 총 가치는 지난해 기준 총 1조3000억 달러(한화 약 1470조)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Ⅷ. 2012년 7월: 애플의 오센텍 인수


애플은 2012년 7월 3억5600만달러(한화 약 4017억)라는 천문학적 비용을 지불하며 지문인식 칩 제조업체 오센텍을 인수했다. 이로써 스마트폰 세계에도 본격적으로 생체인식 기술이 도입되기 시작했다. 

경쟁업체인 삼성이 이미 오센텍의 기술을 자사 노트북 제품에 사용하고 있었고, 안드로이드폰에도 보안 기능을 추가하겠다고 밝힌 상태였지만 기술 경쟁의 세계는 냉정했다. 이 기술로 애플은 2013년 출시된 아이폰5S에 '터치ID' 기능을 탑재할 수 있었다. 

이전에 휴대전화에 지문인식 기능을 탑재하는 시도는 신뢰할 수 없고, 시스템 결함을 초래한다고까지 여겨졌지만 아이폰의 새 기술은 결함없이 거의 완벽하게 작동했다. 초기에 이 기능은 휴대전화를 잠그고, 애플에서 디지털 구매를 하기 위해서만 사용됐다. 그러나 이후 애플은 이 기술을 '애플페이'에 도입했다. 일일이 비밀번호를 입력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사라지고 있다.

Ⅸ. 2013년 8월 : 스티브 발머, MS CEO 사임

스티브 발머 전 마이크로소프트 CEO는 아이폰이 처음 출시됐을 때 제품을 비웃었다. 그는 2007년 "아이폰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전화기에 불과하다"며 "키보드가 없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을 것"이라고 혹평했다. 

6년후 그는 핀란드 회사 노키아의 휴대전화 파트를 인수하는 등 스마트폰 시장의 후발주자로 나섰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2013년 8월 쓸쓸히 최고경영자 직에서 내려와야했다. CCS인사이트 컨설턴트사의 벤 우드는 "발머는 수많은 다른 이들처럼 아이폰이 가져올 여파를 과소평가했다"며 "그의 오만한 판단착오가 그에게 악재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Ⅹ. 2016년 7월 : 증강현실 게임 '포켓몬고' 출시 


인기 만화 캐릭터인 포켓몬스터를 활용한 증강현실(AR) 게임 포켓몬고가 출시되자마자 전세계적인 열풍을 일으켰다. 애플은 새로 출시된 아이폰X에 AR기능을 포함시켰다. 아이폰의 AR앱이 실제 세계와 섞였을 때 사용자들에게 얼마나 '현실'같은 느낌을 줄 수 있을지 증명하는 것이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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