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주의 작은 천국] 좀비는 그네를 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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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주의 작은 천국] 좀비는 그네를 타지 않는다

입력 2017-11-10 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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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네는 지상과 천상을 왕래하는 문학적 상징물이다.


좀비는 그네를 타지 않는다

서정주 시인은 그의 시 ‘추천사’에서 현실을 넘어 초월의 세계를 향하는, 인간의 구원을 향한 갈망을 그네라는 놀이기구를 통해 형상화합니다. 시의 제목 추천사(鞦韆詞)에서 추천(鞦韆)은 그네의 한자말입니다. 하지만 높이 솟구쳤던 그네는 이상세계에 다다르지 못하고 지상으로 되돌아오기를 반복합니다. 그래서 시의 화자 춘향이는 “향단아, 그네를 밀어 올려 다오”라고 반복적으로 주문합니다.

인간의 ‘대지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구’는 존재의 유한성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시작됩니다. 플라톤이 이데아(Idea)를 본질의 세계, 이상향으로 설정하기 이전부터 인간은 자기 존재의 근원에 대해 향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영원을 향한 갈망과 감수성은 오직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존재의 특성입니다.

인간만이 유전자에 기록된 영원한 시간의 흔적을 발견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 여정을 신앙이라고 합니다. 신앙은 영원에 대한 감수성이 키워낸 열매입니다. 존재의 근원이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 불완전한 존재가 완전하신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고 싶어 하는 갈망, 그것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의 내세관은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존재, 특별히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이 궁극으로 귀의해야 할 하나님나라에 정초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탐욕으로 죄를 짓는 것은 우리가 돌아가야 할 궁극의 세계, 그 세계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을수록 이 땅에 속한 것들에 대한 의존성이 높아지게 됩니다. 내세에 소망이 없는 자들은 현세에서 자기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최대의 에너지를 소비합니다. 그가 에너지를 소비하며 힘을 방사할수록 그의 주변은 뜨거워지고 급기야 불태워집니다.

모든 좀비영화의 프레임은 하나입니다. 영혼이 없는 인간과 영혼이 있는 인간으로 세계가 나뉘고 그 두 세계가 투쟁합니다. 영혼은 스스로 생각하고 자각하는 인간의 정신입니다. 그래서 영혼 없이 신체적 감각만 남아 있는 좀비는 자기 이익에만 민감하게 반응하는 속물적인 근대인을 조롱할 때도 쓰입니다. 좀비는 영혼이 없기 때문에 지상의 부와 권력을 초월하려는 거룩한 의지가 없습니다. 그래서 좀비는 그네를 타지 않습니다.

신앙인은 지상 세계와 하나님나라 사이에서 그네를 타는 것처럼 욕망과 탈(脫)욕망, 현실과 초월, 타락과 구원, 좀비와 정상인 사이를 왕래합니다. 사력을 다해 좀비가 되지 않은 자들만이 그네의 역학(力學)에서 벗어나 구원의 문에 들어가게 됩니다. 최후 승리는 좀비가 아니라 영혼을 가진 사람들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식에게 하나님나라가 아니라 이 땅의 왕국을 물려주고 싶어 하는 교회 지도자가 있다면 그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나 알고 있어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지상의 왕국에 권력을 유전시키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영혼도 없고 내세의 소망도 없는 것이지요. <영동 물한계곡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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