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 3314번 버스가 퍼뜨리는 ‘출근길 행복 바이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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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살만한 세상] 3314번 버스가 퍼뜨리는 ‘출근길 행복 바이러스’

입력 2017-11-10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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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요청에 쑥쓰러워하며 운전석에 자리를 잡은 한영훈 기사님. 아직은 따스한 초겨울의 일몰이 기사님의 얼굴을 비춰주었습니다.

졸린 눈을 비비고 깨어나 급하게 나갈 채비를 한 후,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수많은 인파 속에 나 자신을 내려놓아야 하는 출근길. 이 길이 즐겁기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여기, ‘그 어려운 걸 해내는’ 분이 있습니다.

서울 송파상운 3314번 버스의 한영훈 기사입니다. 비가 내리던 지난 3일 아침 출근길, 집 앞에서 탄 버스에서 한 기사를 만났습니다. 이번이 첫 만남은 아니었고, 한 3번째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한영훈 기사는 타는 손님 한 명 한 명에게 일일이 “안녕하세요” 인사를 건네고, 내리는 승객들에게도 “감사합니다”라는 인사를 잊지 않았습니다.

여기까지였다면 아마 친절한 기사님이라고만 생각하고 이내 잊어버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 분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비가 오는 날에는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하세요”라는 말을, 좌회전·우회전 시에는 “조심하세요” “위험하니 손잡이 꽉 잡으세요” 같은 당부를 잊지 않았습니다. 마치 ‘DJ’처럼 세심하게 안전 멘트를 해줍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활기찬 기사의 말을 한동안 듣고 나면 피곤하다가도 힘이 났습니다. 

이른 아침, 만원 버스를 운전해야 하는 본인도 힘들 텐데 승객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 깊었습니다. 꼭 인터뷰를 요청하고 싶었고, 버스에서 내리기 직전 얼른 뒷문 상단에 붙어 있는 기사 정보 카드를 보고 이름을 기억해놓았습니다. 그리고 며칠 뒤, 회사를 통해 연락이 닿았고 인터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감사하게도, 세 번 정도 자신의 버스에 탔던 저를 어렴풋이 알아봐주셨습니다.

올해 쉰이 된 그가 버스 운전을 시작한 건 20여년 전이었습니다. 중간에 다른 일을 하다 송파상운에 입사한 지는 5년째라고 합니다. 주로 3314번을 많이 운행하지만 특정 노선만 하지 않고 여러 구간 버스를 몹니다. 새벽 4시40분 첫차, 또는 5시30분쯤 출발하는 차로 시작해 오후 1시 정도까지 운전이 계속됩니다.

승객들에게 남달리 친절히 대하게 된 계기를 묻자 잠깐 생각에 잠긴 그는 이내 “할머니 한 분이 계기가 됐다”고 입을 뗐습니다. “진화운수에 근무하면서 33-1번 버스를 운행할 때였어요. 송파와 여의도를 오가는 버스였는데, 삼전사거리 쪽에서 기다리던 할머니 한 분이 몸이 굉장히 불편해서 짐을 든 채 차에 오르지 못하시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업어서 태워드렸죠. 그 이후부터 더 승객 분들께 신경을 쓰게 된 것 같습니다.” 이 일로 한 기사는 회사에서 상도 받았다고 합니다.

그가 인사할 때 승객들은 얼마나 화답해줄까요. “처음 송파상운에 왔을 때에는 승객 10명 중 3명 정도만 인사를 받아주셨어요. 이 회사에 몸담으면서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나니 어느 노선에 가도 알아보시는 분들이 많이 생기더라고요. 요즘에는 10명 중 8명 이상은 인사를 받아주시고, 여유가 있을 때는 말씀도 나눠주십니다.”

친절하기로 소문난 기사인 만큼 승객들로부터 선물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젊은 사람들은 커피와 과일을, 어르신들께서는 지니고 있던 사탕을 자주 건넨답니다.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만한 선물을 꼽아 달라는 요청에 돌아온 답은 ‘2달러짜리 지폐’였습니다. 젊은 승객이 준 것이었는데 ‘행운’을 의미하는 만큼 언제나 지갑에 지니고 있답니다. 그리고 물건이 아닌 정성 담긴 편지도 역시 소중하다고요.

승객에게 선물로 받은 '행운의 2달러' 지폐.

그런데 기사도 사람인 만큼, 친절을 유지하기 힘든 날이 있을 것 같았습니다. 누구나 개인적으로 슬픈 일, 또는 힘든 일이 있으니까요. 이에 그는 ‘두 개의 인격’을 가진 것처럼 생활한다고 말했습니다. “일단 차에 타고 일을 시작할 때는 그런 생각을 잊어버립니다. 손님과 대화하다 잊기도 하고요.” 일에만 집중할 수 있는 남다른 정신력이 비결이었습니다. 

“나 혼자만 타고 있는 승용차나 화물차를 운전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이런 저런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손님을 모시는, 손님의 안전을 책임지는 버스기사이기에 잡생각을 떨치는 것이 기본적인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승객들에게 바라는 점이 있는지 물었더니 “안전하게 버스를 타셨으면 좋겠다”는 말을 정말 진심을 담아 하시더군요. “버스가 승강장에 완전히 들어서기 전에 내리려고 서두르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러다 뒤에 오던 버스와 부딪힐 수도 있어요. 그래서 승·하차 할 때 조심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휴대전화 사용 자제도 언급했습니다. “간혹 핸드폰을 보다 버스가 온 것을 모르고 뒤늦게 뛰어오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가 버스를 세울 수 없는 경우가 몇 가지 있어 이런 때에는 태워드릴 수 없습니다.” 버스 안에 서 있는 승객들이 있어서 급정거 시 다칠 위험이 있을 때, 그리고 전용차선을 달리고 있어 뒤 버스와 충돌 사고 위험이 있을 때에는 정차가 불가능하다고 합니다.

실제로 정류장에서 휴대전화를 보다 타야 할 버스를 놓치고는 버스가 정차하지 않았다며 서울시에 민원을 제기하는 사례가 많다고 합니다. 다행히 버스에 설치된 CCTV 영상을 증거로 경위서를 제출해 이상이 없다고 판단되면 징계를 받지는 않지만,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해달라는 부탁에 한 기사는 “횡단보도를 건너다 빨간불이 들어와도 지나치게 서두르다 다치지 않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횡단보도에서는 보행자가 우선이기 때문에 신호가 바뀌었더라도 차들이 기다리는 것이 맞다고요. 마지막까지 승객의 안전이 최우선이었습니다. 

그리고 “저희에게 칭찬할 부분이 있으면 칭찬을 많이 해주셨으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버스 뒷문 근처에는 ‘친절 엽서’가 비치되어 있습니다. 불만 사항을 쓸 때도 사용되지만 친절한 기사에 대한 응원 엽서로도 사용이 가능하죠. “엽서를 써서 우체통에 넣어주시면 서울시로 가서 회사로 전달됩니다. 이런 엽서들은 기사들에게 큰 힘이 되기 때문에 많이 써서 보내주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하다는 인사말에도 기분이 좋지만, ‘친절엽서’가 와서 보면 더 힘이 나거든요.”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글·사진=이소연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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