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란의 파독 광부·간호사 애환이야기] <1>남차희 선교사

국민일보

[박경란의 파독 광부·간호사 애환이야기] <1>남차희 선교사

‘파독 간호사→한의사→선교사’ 예비하신 주님

입력 2018-01-05 14:43
  • 국민일보 카카오플러스 친구등록하기
파독 간호사 출신 남차희 선교사가 몸이 아픈 터키 여성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무슬림인 이 여성은 하나님의 치유를 받고 두 자녀와 함께 주님을 영접했다. 남차희 선교사 제공

파독 광부와 간호사는 1960~70년대 2만명 가까이 파송됐다. 이들이 송금한 외화는 우리나라 발전에 기여했다. 그리고 적지 않은 이들이 이역만리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열정적으로 일하다 퇴직했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인지라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반세기가 지난 세월은 이들을 이방인으로 남게 했다. 국민일보는 신년기획으로 이들의 파란만장한 인생과 크리스천으로서의 삶을 매주 연재한다.

독일의 겨울은 햇빛 한 줌 없이 칙칙하다. 누군가는 1618년의 30년 전쟁, 1·2차 세계대전의 피 흘림 때문이라 에둘러 말했었다. 전쟁의 영욕을 간직한 어둠이 수도 베를린을 잠식한다. 작은 이스탄불이라 불리는 크로이츠베르크(Kreuzberg)엔 영적인 어둠이 가득하다. 크로이츠베르크는 단어 그대로 해석하면 ‘십자가산(골고다언덕)’이다. 그 십자가산이 무슬림으로 가득 차 있다.

터키인들은 우리 파독 근로자들처럼 1960년대 ‘손님 노동자(Gastarbeiter)’로 독일에 이주했다. 350만명의 베를린 인구 중 50만명을 차지하며 강력한 무슬림 게토를 형성하고 있다. 지금까지 터키인들이 반세기가량 거주했음에도 교회는 이들을 간과했다.

몇몇 그리스도인은 터키인 공동체에 복음을 전할 기회를 달라고 기도했고, 개인적인 친분과 교제를 통해 성경과 기독교 서적을 나눠줬다. 현재 베를린 거주 터키인 중 기독교인은 100명도 안 되는 정도다. 생명을 던져 전하려는 전도자도, 참된 복음을 찾으려는 터키인도 소수인 탓이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그들에게 환상을 통해 직접적인 계시를 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나님이 그들에게 직접 나타나 보여주시기에 주님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지요.”

전통적 무슬림인 그들을 하나님은 강권적으로 이끄셨다. 그리스도인을 흩어 복음을 전하게 했다. 4년 전부터 무슬림 선교현장에 나선 남차희(66) 선교사. 그녀는 한의사라는 직업을 통해 터키인들과 처음 만났다.

사진은 1973년 독일 간호사들과 함께한 남 선교사(가운데). 남차희 선교사 제공

부산대병원 간호사였던 그는 1972년 파독 간호사로 독일에 왔다. 이국땅에서의 삶은 고단했다. 모태신앙이던 그는 독일에 와서야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 하루하루의 삶이 너무 힘들어 하나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당시 영적으로 뜨거웠던 베를린순복음교회에 출석했다. 병원 근무와 함께 교회에서 운영하는 신학교를 병행해 다니며 삶이 예배임을 실감했다. 남 선교사도 주님께 헌신하면서 목회자와 결혼해 사모가 됐다.

남편 구효남 목사와 함께 베를린영락교회(현 베를린소망교회)와 갈보리교회에서 30여년간 한인교회를 섬겼다. 목회를 조력하던 중 하나님의 특별하신 인도로 한의학과 대체의학에 관심을 갖고 새로운 삶을 도전하게 됐다.

터키인이 세운 종합병원에서 한의사로 근무하던 때였다. 환자 가운데는 무슬림 여성이 많았다. 독일에서 양의학은 보험 처리가 되지만, 대체의학은 별도로 보험에 가입해야 하기에 치료비가 자기부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당시 30년 이상 폐병을 앓으며 시한부판정을 받은 터키 중년여성이 있었다. 그녀의 남편은 다른 여성과 살고 있었다. 가정문제로 그 여성은 심한 울분과 상처를 안고 있었다. 심지어 아들과 딸도 우울증으로 식사를 못 했고 일도 못했다. 진료하는 내내 하염없이 우는 그녀를 보고 남 선교사는 ‘우는 자와 함께 울라’는 성경 말씀을 기억했다.

그녀를 위해 침을 놓고 한 시간 이상을 간절히 기도하며 방언찬양을 했다. 결국 하나님은 터키 여성을 치료하셨고, 그녀는 두 자녀와 함께 주님을 영접했다. 나중에 안 사실은 치료를 받으러 오기 전 터키 여성이 밤에 꿈을 꾸었다고 한다. 누가 이마에 대고 기도를 해줬는데 나았다고 한다. 이후 남 선교사는 무슬림 구원을 마음에 품게 됐다. 내면에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터키 여성들의 억울함을 하나님의 마음으로 어루만졌다.

그녀는 남편 구 목사와 함께 ‘지경을 넓히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고자 2014년 이웃교회(현 비젼교회)와 합하고 베를린 이슬람권, 특히 터키인을 위한 사역을 시작했다. 곧바로 크로이츠베르크의 후미진 뒷골목으로 들어갔다. 대체의학을 통한 육신의 치료와 기도를 통해 굳게 닫힌 무슬림의 마음을 열고 있다. 하지만 가끔 생명의 위협을 받을 때도 있다.

“크리스천으로 개종한 터키 여성의 아들이 칼을 들고 달려든 적도 있어요. 하지만 주님의 지상명령이라 순종할 수밖에 없어요.”
남 선교사는 무슬림 선교가 어렵다고 해도 온 세상에 시작된 구원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온전하게 마치실 것을 믿는다. 그가 늘 마음에 새기고 있는 성경구절은 하박국 2장 14절 말씀이다.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온 세상에 가득하리라.”

그는 오늘도 묵묵히 크로이츠베르크에 십자가를 심는다.

박경란 재독 칼럼니스트 kyou723@naver.com



박경란 칼럼리스트
한국에서 잡지사 기자로 일하다 2007년 가족과 독일로 이주했다. 파독 1세대 어르신들에 대한 마음을 품고 이민자 단체에서 일하며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독일맥주보다 한국 사람이 좋다’, ‘베를린 오마주’, ‘나는 파독 간호사입니다’ 등을 집필했고, 파독 간호사로 구성된 연극단 ‘빨간구두’에서 총 6회의 독일공연 기획과 대본을 맡았다.
2016년 한국 초대공연인 파독 간호사 50주년을 기념한 연극 ‘베를린에서 온 편지’ 연출과 희곡을 담당했다. 현재 베를린소망교회 집사다.

많이 본 기사

포토

반려인 연구소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