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아닌 현실 속 검사의 사생활… ‘검사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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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아닌 현실 속 검사의 사생활… ‘검사내전’

입력 2018-01-12 1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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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검사는 둘 중 하나다. 거악을 상대로 고군분투하면서 진실을 밝혀내는 정의의 사도, 혹은 권력과 결탁해 비리를 일삼는 적폐의 아이콘. 하지만 검찰을 저렇듯 일도양단(一刀兩斷) 해버리면 우린 영영 검사의 세계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검사도 상관의 엉터리 지시에 스트레스를 받는 평범한 직장인이고 한 가정의 생계를 걸머진 가장일 테니까. 신간 ‘검사내전’은 이토록 자명한 사실을 실감케 만드는 ‘금주의 책’이다.

‘검사내전’을 출간한 김웅 인천지검 공안부장. 그는 “사금을 캐는 사람처럼 수천 페이지의 기록들을 모아서 거르는 일을 반복하며 진실의 무게로 가라앉은 사실들을 찾아내는 것”이 자신의 삶이었다고 적었다. 부키 제공

저자인 김웅(48)은 인천지검 공안부장이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와 1997년 사법시험을 패스했고 2000년에 사법연수원을 수료했다. 인천지검에서 검사로 첫 발을 내디뎠고, 서울중앙지검 법무부 서울남부지검 등지에서 근무했다. ‘검사내전’은 그가 펴낸 첫 책이다.

미리 말하자면 무지하게 재밌다. 글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필명을 날리는 엔간한 작가들의 필력을 넘어선다. 저자는 말미에 “나도 백만 문청 중 하나였다”고 넌지시 말하는데, 책을 읽고 나면 저 말이 결코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검사가 안 됐다면 문단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면서 괜찮은 소설을 펴내는 작가가 됐을 듯하다.

책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전반부를 장식하는 건 저자가 마주한 범죄자와 피해자의 이야기다. 그는 검사 생활의 대부분을 형사부에서 보냈다. 형사부란 어떤 곳인가. 검사들이 선망하는 특수부 공안부 강력부 기획부 외사부가 아닌 ‘기타 부서’다. “고기로 따지면 갈비 등심 토시살 제비추리 등의 이름을 갖지 못한 그냥 고기”라고 할 수 있다.

이곳에서 저자가 상대한 사람은 애면글면 살아가는 평범한 시민, 그리고 이들을 농락한 비범한 범죄자들이었다. 특히 책에서 비중 있게 다뤄지는 사기 사건이다. 대단한 내공의 사기꾼들이 벌인 기상천외한 범죄 사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수백억원 규모의 어음 사기도 “귤 까먹듯 태연히 저지르는” 할머니, 전임 정권의 비자금 운운하면서 선량한 시민들을 등쳐 먹는 아저씨, 전세 사기를 당해 창졸간에 보금자리를 잃어버린 신혼 부부…. 독자들은 이들 사례를 통해 인간의 욕망이 비틀어놓는 세상의 풍경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챕터 하나하나가 입담 좋은 소설가의 엽편소설처럼 여겨질 만큼 가독성이 상당하다. 저자는 사기에 대한 이야기를 기다랗게 늘어놓은 뒤 이렇게 말한다. “논리와 이성의 천적은 부조리가 아니라 욕심이다. 아쉽게도 우리의 주성분은 욕심, 욕망, 욕정이다. 우리는 ‘욕심’이라는 거친 바다 위를 구멍 뚫린 ‘합리’라는 배를 타고 가는 불안한 존재들이다.”

곰살맞거나 익살스러운 문장이 간단없이 이어지니 키득거리며 책장을 넘기게 된다. 하지만 독자의 머릿속을 쿡 찌르는 뾰족한 대목도 곳곳에 등장한다. 검찰 조직의 분위기를 통해 ‘검사의 사생활’을 전하면서 법의 본질이 무엇인지 자문하게 만드는 후반부 내용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법이 궁극적으로 해결해주는 것은 없다”고 강조한다. “형사처벌 편의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공명심에 휘둘리는 검사들을 질타하는 내용도 실려 있다.

학교 폭력을 다룬 부분도 인상적이다. 저자는 가해자의 인권 보호를 앞세우면서 피해자에게 화해를 강요하는 한국사회의 분위기에 안타까움을 표시한다. 그는 “아이들의 세상을 텔레토비 동산으로 착각하나 실상은 ‘파리대왕’의 섬에 가깝다”고 강조한다.

“소년 전담 검사를 하면서 나는 늘 피해자들에게 너는 소중하고 무엇보다 존엄하다고 말해주곤 했다. 그리고 가해자들과 친구가 되려고 노력할 필요 없다고, 화해하거나 용서하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피해를 당한 아이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건 대개 두려움 때문이다. 그 두려움 때문에 자신의 존엄함과 권리를 포기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존엄한 것은 양보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다. 그러니 아이들에게 화해를 강요하지 말라.”


‘검사내전’은 검사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저작이지만 평범한 중년 남성의 자서전으로도 읽힌다. 저자는 들머리에 선배 검사와의 추억담을 전한 뒤 자신의 책을 이렇게 소개했다.

“가끔 집 소파에 앉아 야구를 보며 맥주 한 잔 마실 때가 있다. 야구가 끝나고 소파에 누워 꾸벅꾸벅 졸 때면 마술처럼 세상을 다 가진 듯 떠들썩하게 웃고 마시던 그 시절의 기억이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거악을 일소하지는 못하더라도 대한민국이라는 큰 배의 나사못 역할이나 제대로 해보자고 선의를 불태웠던, 항하사(恒河沙)처럼 넘쳐흐르던 거품 속에서의 다짐들도 아쉬움 속에 지나간다. 어쩌면 이 책은 그 아쉬움의 기록일지도 모르겠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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