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이강석①]“나는 최고의 500m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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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이강석①]“나는 최고의 500m 선수였다”

은퇴 ‘빙속왕’ 이강석 와이드 인터뷰

입력 2018-01-12 19:33 수정 2018-01-13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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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석(33)이 12일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전국동계체육대회 남자 일반부 500m 경기에서 힘차게 빙판을 질주하고 있다. 이강석은 이 경기를 끝으로 선수생활을 마쳤다. 최현규 기자

“내일 마지막 경기를 펼치는데 기분이 어떠냐”고 묻자 그는 오래도록 말이 없었다. 그는 “수백 번을 탔던 500m인데, 선수로서는 이제 영원히 마지막이다”고 겨우 입을 열었다. 그는 “스케이트 선수가 됐던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며 “다시 태어나도 세계신기록에 도전하겠다”고 했다.



스피드스케이팅 전 국가대표 이강석(33)이 12일 전국동계체육대회를 끝으로 빙판을 떠났다. 곡선주로를 빠져나가는 그에게 이강석의 부모는 “끝까지”라고 외쳤다. 경기를 마친 뒤 서울 태릉국제스케이트장에서 만난 그는 “후회 없이 달렸다”고 말했다. 그가 2007년 기록한 34초20은 아직까지도 한국 최고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와의 인터뷰는 지난 11일과 12일에 걸쳐 이뤄졌다.


-마지막 경기에서 36초47의 기록을 남겼다.
“훈련을 안 하고도 36초47이라면(웃음)… 100m 구간까지는 내가 제일 빨랐다.”

-어떤 생각으로 레이스에 임했나.
“스타트를 할 때 어떤 생각을 했냐면, ‘저 형은 이제 나이들고 못해서 은퇴한다’는 느낌을 주기가 싫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반 100m는 최선을 다해서 탔다. ‘그래도 저 선수가 500m는 대단하구나’ 하는 생각을 주고 싶었다.”

-어제는 왜 잠을 못 이뤘나.
“지금까지 내가 해온 큰 시합들이 계속 생각났다. 좋은 시합도 있고, 그렇지 않은 시합도 있었다. 내가 결승선을 통과한 뒤 모든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았던 적이 기억났다가, 갑자기 밴쿠버 동계올림픽 생각도 났다. 세계랭킹 1위로 참가해 4위를 했던… 도망치듯 혼자 입국해 폐인처럼 인터뷰를 한 기억도 떠올랐다. ‘왜 이렇게 인상이 안 좋냐’고 묻기에 ‘모르겠어요, 제가 못해서 그런 것 같아요’라고 대답했었다. 그것도 다 지난 일이고 이젠 모든 시합을 다 끝내고, 내 마지막 500m가 남았다고 달래며 잠을 청했다.”

-7살 때 YMCA 아기스포츠단에서 스케이트를 처음 탔다고 알려져 있다. 그때 스케이트를 신자마자 빙판에 섰다는데.
“나도 기억이 난다. 다른 아이들은 안짱다리가 되며 쓰러지는데 나는 딱 설 수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속도를 내지 못하는데 나는 달릴 수 있었다. 유치원생이었지만 ‘잘 한다’는 주변 소리가 듣기 좋았다.”

-국가대표의 꿈은 언제 시작됐나.
“어렸을 때에는 그저 칭찬받는 게 좋았다. 세계를 제패하고 싶다는 꿈은 1998년 IMF 때에 생겼다. 중학교 1학년 때 가정형편이 어려워졌는데, 나는 캐나다에서 운동을 하고 있었다. 누군가가 시켜서 하는 일이라면 비싼 전지훈련비와 레슨비를 허공에 날리는 것이니 정신을 똑바로 차리자고 생각했다. 안일하게 운동하면 집에 부담만 주는 것이니까, 어떻게든 국가대표가 되자고 생각했다.”
은퇴경기를 마친 이강석(33)이 꽃목걸이를 하고 트랙을 돌고 있다. 최현규 기자

-부모님의 지원을 어른스럽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IMF 때 집안에 ‘빨간 딱지’가 붙었다. 나는 그게 영화나 드라마에나 나오는 일인 줄 알았다. 컴퓨터 피아노 등에 다 그렇게 붙으니까… 내가 다른 아이들보다 더 정신을 차려야 한다고 생각했고, 국가대표가 되고 훌륭한 스피드스케이팅 선수가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때 초등학생 선수였던 동생에게도 ‘돈 아껴쓰고, 운동 잘 해야 한다’고 다그쳤다.”

-500m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를 것 같다.
“나는 500m에 대해 자부심이 있다. 후배들이 잘 타지만, 한국신기록(34초20)이 10년이 넘게 안 깨지고 있다. 500m 세계신기록을 세운 한국 남자 선수는 나뿐이다. 500m에서 우승도 가장 많이 했다. 다만 올림픽 금메달이 없을 뿐이다.”

-그래서인지, 평창 동계올림픽에 끝까지 참가하려 애썼다.
“올림픽 무대에서 은퇴경기를 하는 것은 모든 운동선수의 바람일 것이다. 특히 고국의 올림픽에서 선수로 출전해 은퇴한다는 것은 꿈 같고 영화 같은 일이다. 그렇게 해 보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다. 하지만 국내에서 가장 큰 전국체전에서 은퇴경기를 할 수 있어 감사하다.”

-단거리 최강자였지만, 유독 올림픽 금메달과 인연이 없었다.
“2006년 토리노 동계올림픽은 세계랭킹 2위로,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은 세계랭킹 1위로 참가했다. 2006년 토리노에서는 컨디션이 좋아 금메달이 충분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시합 당일 2시간 전에 스케이트 구두가 부서졌다. 감독님이 부리나케 구둣방에서 고쳐다 주셨는데, 발목의 감도가 좋지 못했다. 그래도 열정으로 타서 동메달을 따냈다. 귀국해서도 ‘왜 하필 구두가 부서졌을까’ 하는 생각을 오래도록 했다. 2010년 밴쿠버에서는 갑자기 정빙기가 고장나 리듬에 문제가 생겼다. 해외 언론에서도 500m는 이강석이 1위라고 했었다. 운동을 그만둘 생각까지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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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원 이상헌 기자 neosar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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