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 기억 잃은 아빠가 잊지 않은 단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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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살만한 세상] 기억 잃은 아빠가 잊지 않은 단 하나

입력 2018-06-17 1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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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하루 아침에 어린 아이가 됐습니다. 혼자서는 걷지도, 하물며 서지도 못했습니다. 불편한 몸은 어떻게든 돌볼 수 있었지만, 딸은 순간 순간 기억을 잃는 아빠를 마주하는 것이 더 아팠습니다. 늘 버팀목이 되어 주던 아빠는 더 이상 그럴 수 없게 됐습니다. 찰나의 사고는 가장(家長)을 앗아갔습니다. 온몸이 망가지는 비극을 겪고도 아빠가 결코 잊지 않은 한가지가 있었습니다. 바로 ‘자식’입니다.

7일 미국 현지 언론은 미국 텍사스주에 사는 맏딸 모건 포터필드와 아빠 짐 포터필드의 사연을 전했습니다. 이야기는 198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딸 모건에게 아빠 짐이 위독하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음주운전차에 정면으로 치였다고 했습니다. 아빠는 의식불명인 채로 병원으로 옮겨졌고 그 자리에서 수술을 9차례나 받았답니다. 그걸로도 모자라 이후 4차례나 더 수술대에 올라야만 했습니다.

생명을 보존한다고 해도 이미 뇌 손상이 커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할 거라고 했습니다. 그런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모건은 그저 아빠와 이대로 작별하지 않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습니다.


지옥 같았던 6주가 흘렀고, 아빠는 마침내 눈을 떴습니다. 상황은 녹록지 않았습니다.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장애인이 된 아빠’를 마주한 모건은 그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이전같은 생활은 불가능했습니다. 아빠는 손과 발을 쓸 수 없었고 정신도 오락가락했습니다. 심지어 가끔 발작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아빠의 쾌유를 바랐던 직장에서도 해고장이 날아들었습니다.

아빠는 재활훈련을 마치자마자 돈을 벌겠다며 집을 나섰습니다. 머리를 다쳐 ‘제 정신’은 아니었지만 자신이 ‘네 아이의 아빠’라는 사실은 본능적으로 아는 듯 했습니다. 아빠는 그렇게 성치 않은 몸으로 기관의 도움을 받아 소일거리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30년이 훌쩍 지난 이달 2일, 트위터에 어딘가 엉성하게 찢긴 종이 쪼가리 한 장과 동전이 조금 든 플라스틱 통 하나가 올라왔습니다.

모건이 올린 사진이었습니다. 총 11달러 19센트(약 1만 2000원)로 큰 돈은 아니었지만 그녀는 ‘세상에 둘도 없는 값진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아빠는 소일거리를 하며 틈날 때마다 동전을 모아왔다고 했습니다. 모건도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선물의 주인이 자신이라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고 했습니다. 아빠는 자신의 빈자리를 채워준 사람이 맏딸 모건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듯 했습니다.


아빠는 딸이 좋아하는 맛있는 커피 한잔을 사주고 싶었을 겁니다. 물론 더 값지고 빛나는 선물이 눈에 밟혔겠지만, 아빠는 확신했을테지요. 딸 모건이 이 ‘작은’ 선물을 얼마나 가치 있게 손에 쥘지를, 또 얼마나 행복해할지를요.

모건은 아빠의 선물을 트위터에 공유하면서 “아버지가 얼마나 나를 미소짓게 하는지 공유하고 싶다”고 적었습니다. 현재 한 크라우드펀딩 사이트에는 이들을 위한 모금 페이지가 개설됐다고 합니다. 펀딩 시작 한 주 만에 1000명이 넘는 사람들에게서 1만 5800달러(약 1700만 원)가 넘는 기부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아빠의 기억 속에서 유일하게 지워지지 않았던 자식 넷, 그 중에서 가장 아픈 손가락이었을 맏딸. 이제 어엿한 어른이 된 모건은 온전하지 않은 정신으로 동전을 한 푼 두 푼 모았을 아빠의 그 마음을 모두 알 것만 같습니다. 서로만 생각하면 ‘미안함’이 가장 컸을 짐과 모건. 이 부녀의 앞날에 이제는 ‘행복’만이 가득하기를 바랍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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