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 자폐증 딸의 고백 “당신은 최고의 아버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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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살만한 세상] 자폐증 딸의 고백 “당신은 최고의 아버지입니다”

입력 2018-07-03 13:58 수정 2018-07-03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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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의 가족. 왼쪽부터 2번째가 소피. 사진=데일리 메일

돌이켜 보면 단 한 번도 아빠에게 ‘당신은 최고의 아버지’라는 말을 해본 적이 없습니다. 쑥스럽기도 했고, 굳이 입 밖으로 내지 않더라도 아빠라면 다 알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문득 ‘너는 가장 멋진 딸’이라는 고백을 듣는다면 벅찬 감동이 밀려올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호주 태즈메이니아에 사는 9살 소녀 소피의 사연처럼 말입니다.

소피는 만 3살 때 자폐증 진단을 받았습니다. 일반 학교에 입학해 또래 아이들과 같은 수업을 받는 소피에게 학업 진도를 따라가는 것은 꽤 힘든 일이었습니다. 개인지도를 주 3회씩 받는데도 쉽지가 않았지요. 아니나 다를까 학교에서 받아 든 성적표에는 2년 연속 ‘D’가 적혀있었습니다. 마음이 상한 소피는 집에 돌아와 눈물을 쏟아냈다고 합니다.

아빠는 그런 소피가 안쓰러웠습니다. “모두를 실망시켰어요.” 딸의 한 마디가 그를 아프게 했습니다. 아빠는 고민 끝에 새 성적표를 만들기로 했습니다. 공책 위에 검은색 볼펜으로 삐뚤빼뚤 적은 성적표의 항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유머 감각
△반려견을 사랑하는 마음
△남자아이와 맞서는 용기
△그림 실력과 로봇 만드는 재능
△상상력, 그리고 ‘최고의 딸’

소피의 아빠가 쓴 성적표. 이하 셰인 잭슨 트위터

아빠는 소피에게 마지막 항목을 제외하고 모두 ‘A’를 줬습니다. 상상력과 최고의 딸 부문에는 A에 ‘플러스’를 더했지요. 이후 트위터에 이 성적표를 올렸습니다. “소외된 사람에게 용기를 주고 싶었다”고 합니다. 아빠는 “딸이 계속 긍정적인 태도를 갖게 됐다”며 “목표했던 대로 돼 정말 기쁘다”고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혔습니다.

멋진 선물을 받은 소피는 아빠를 위한 성적표를 만들어 화답했습니다.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능력과 딸을 사랑하는 재능에 A를 줬고, 유머 감각 부문에 B를 적었습니다. 레슬링 기술 점수는 C였습니다. 내 트위터를 만들어 준 것은 무려 A+였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부문인 ‘최고의 아빠’. 소피는 점수 칸이 꽉 찰 정도로 또렷한 A+를 그려 넣었습니다.

소피가 아빠에게 준 성적표

아빠가 딸을 위해 만든 성적표는 트위터에서 3일 오전 10시 기준 1만2205번 공유됐습니다. 1635개의 댓글이 달렸고 6만3954개의 ‘좋아요’를 받았습니다. 한 트위터 이용자는 “자폐증을 앓는 한 친구가 성적표를 받은 뒤 크게 충격받는 걸 본 적이 있다”면서 “소피의 아빠처럼 했다면 많은 도움이 됐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누구도 그런 상처를 받으면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상심한 딸을 위한 아빠의 대처는 A에 플러스를 더하고, 또 더해도 모자랄 만큼 훌륭했습니다. 부녀를 향한 네티즌의 따뜻한 격려도 아름다웠지요. 그래도 가장 빛났던 것은 종이의 가장 아래 무심한 듯 쓰인 문구였습니다. ‘최고의 딸(Best daughter ever)’. 글자를 적는 아빠의 마음은 누구보다 진심이었을 겁니다. 딸의 ‘답장’을 본 가슴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으로 충만했을 거고요. 그들의 성적표는 단연 ‘최고의 선물’이었습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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