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님’ 아닌 ‘어머님’?… “왜 나를 ‘어머님’이라고 부르나요?”

국민일보

‘회원님’ 아닌 ‘어머님’?… “왜 나를 ‘어머님’이라고 부르나요?”

팔 걷은 여가부, 생활속 성차별 언어표현 바로잡는다

입력 2018-07-11 15:42 수정 2018-07-12 00:10
  • 국민일보 카카오플러스 친구등록하기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우리는 일상 속에서 아직도 ‘미망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국립국어원은 지난해 미망인이 시대착오적이며 여성차별적이라고 판단해 일부 뜻을 수정하기도 했지만, 포털사이트에 미망인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여전히 ‘남편과 함께 죽어야 할 것을, 아직 죽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풀이가 나온다. ‘여교수’ ‘여검사’ ‘여기자’ ‘여선생’ ‘여배우’라는 단어에 담긴 이데올로기도 생각해볼 문제다. 이는 해당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남자라는 것을 전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많은 성차별적 표현들은 우리 일상생활 속에 스며들어 있다.

◆ “제가 ‘어머님’이라고요?”… 고민 없이 부르는 호칭 불쾌해


50대 주부 A씨는 얼마 전부터 다니기 시작한 요가학원에서 다소 황당하고 불쾌한 경험을 했다고 토로했다. 한 요가 선생님이 A씨를 ‘어머님’이라고 부른 것이다. A씨는 ‘어머님’이라는 호칭을 듣고 다소 언짢은 심경을 감출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상황에 따라 중년 여성을 부를 알맞은 표현은 다양하게 존재한다. 오히려 ‘어머님’이 제일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왜 내가 누군가의 ‘어머님’일 거라고 단정하는 건가?”라며 “그 상황에서도 분명 어머님이 아닌 ‘회원님’이라는 표현이 있었다. 심지어 OOO씨라고 불렀어도 이렇게까지 불쾌하진 않았을 것이다. 다양한 호칭을 두고 아무런 고민 없이 중년 여성을 ‘어머님’이라고 부르는 게 과연 예의 있는 행동일까?”라고 물었다.

이러하듯 일상 속에서 중년 여성들이 ‘어머님’이라고 불리는 모습은 꽤 어렵지 않게 목격된다. 일반적으로 ‘어머님’이란 호칭은 자기를 낳아주신 어머니가 아니라 남의 어머니를 높여 부를 때의 사용한다. 하지만 이 호칭이 듣는 사람의 처지에서는 몹시 언짢을 수 있다. 듣는 이가 실제로 누군가의 어머니가 아닐 수도 있고, ‘내가 너를 낳지 않았는데 왜 어머니라고 부르냐’며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어머니가 아닌 독립적인 인격체로 대우받고 싶은 사람도 분명히 존재한다는 걸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그렇다면 ‘어머님’을 대신해 어떤 호칭을 사용할 수 있을까? 물론 각각의 상황에 맞는 적당한 호칭이 가장 바람직하겠지만, 도저히 마땅한 호칭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선생님’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 선생(先生)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남을 존대하여 이르는 말’이라는 뜻이 있기 때문이다. 국립국어원 국어생활종합상담실 역시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추천했다.

상담사는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라 말씀드리면 여성, 남성을 구분하지 않고 높여 부르는 호칭은 ‘선생님’이 가장 바람직하다”며 A씨의 사연에 대해서는 “‘어머니’라는 단어의 다양한 사전적 의미에서 비롯된 오해인 것 같다. ‘어머니’에는 ‘자기의 어머니와 나이가 비슷한 여자를 친근하게 이르거나 부르는 말’이라는 뜻도 있다. 보통 호칭이라는 것은 전통적인 사용이 굳어져서 내려오는 것이다 보니 A씨는 ‘어머니’의 첫 번째 사전적 의미로 해석하면서 불쾌했던 것 같다”고 답했다.

◆ ‘여교사·유모차’→‘교사·유아차’… 성차별 언어 개선하자


서울시여성가족재단은 서울시 성 평등 주간(7월1일~7일)을 맞아 생활 속에서 흔히 사용하는 성차별 언어를 시민과 함께 개선하는 ‘단어 하나가 생각을 바꾼다! 서울시 성평등 언어사전’ 결과를 지난 6월 발표했다. 재단은 시민 제안 내용들을 국어 및 여성계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 회의를 통해 사회적 영향력이 높아 우선적으로 공유·확산해야 할 10건을 선정해 결과를 발표했다.

그중 가장 많이 제안된 것(608건 중 100건)은 직업을 가진 여성에게 붙는 ‘여’자를 빼는 것으로 여직원, 여교수, 여의사, 여비서, 여군, 여경 등을 직원, 교수, 의사, 비서, 군인, 경찰 등으로 부르자는 것이다. 같은 선상에서 여자고등학교에만 붙은 ‘여자’를 빼고 ‘OO 고등학교’라고 학교명을 붙이자는 의견이 선정됐다. 남자만 다니는 남자고등학교의 경우 ‘OO 고등학교’라고 이름을 지은데 반해 여자만 다니는 여자고등학교의 경우 교명에 여자라는 단어를 넣고 있기 때문이다.

사진=게티이미지뱅크 제공

총 608건의 시민 제안 중에는 “아빠는 유모차를 끌 수 없나요? 어린아이를 태워 밀고 다니는 수레를 뜻하는 ‘유모차(乳母車)’라는 단어는 ‘어미 모(母)’자만 들어가 평등 육아 개념에 반합니다. 아이가 중심이 되는 ‘유아차(乳兒車)’가 더 성 평등한 표현입니다”라는 내용도 있었다.

비슷한 의미에서 ‘저출산(低出産)’을 ‘저출생(低出生)’으로 바꾸자는 제안도 나왔다. ‘낳을 산(産)’자를 쓰면 인구문제의 책임이 여성에게 있다고 오인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여성의 신체 기관인 ‘자궁’(子宮) 역시 성차별적 언어로 선정돼 ‘아들 자(子)’가 아닌 ‘세포 포(胞)’를 써 ‘남자아이를 품은 집’이 아닌 ‘세포를 품은 집’, ‘포궁(胞宮)’이라고 부르자는 의견도 나왔다.

◆ 여가부, 일상 속 성차별 언어표현 개선 본격 추진


여성가족부는 오는 9~10월경 국민 2000명을 대상으로 온오프라인에서 설문조사를 실시해 성차별 언어를 대체할 수 있는 표현을 찾는 국민 참여형 캠페인을 추진할 계획이다. 아울러 포털사이트 네이버가 어학사전 제휴사의 콘텐츠 중 차별적 단어 및 단어 뜻풀이 등을 개선하기 위해 구성한 자문 회의에 참여해 개선방안을 모색할 방침이다. 예컨대 ‘꽃뱀’이나 ‘마담뚜’ 등 성차별적 의미가 담긴 단어들은 국민들이 쉽게 알아보게끔 따로 표시해 사용을 줄이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사진=캘리그라퍼 김명지(@kim_noonsong)님 제공

또 여가부는 이렇게 발굴한 일상 속 성차별 언어표현을 개선하기 위해 미디어 모니터링과 가이드라인 등을 통해 누구에게나 성 평등 의식이 쉽게 스며들 수 있도록 매체의 자정노력을 유도하고 법·제도적 개선방안을 모색할 예정이다. 정현백 여가부 장관은 “특정 성에 대한 혐오와 비난이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으로도 번지는 안타까운 모습이 목격돼 이에 대한 적극적 개선 노력이 필요하다”며 “언어를 매개로 성차별적 인식이 표현되고 확산되는 경로를 면밀히 파악하는 등 성차별 구조와 인식이 바뀔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신혜지 인턴기자

많이 본 기사

반려인 연구소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