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 “폭우 내리던 날 전동휠체어 탄 할머니, 우산도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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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살만한 세상] “폭우 내리던 날 전동휠체어 탄 할머니, 우산도 없었어요”

입력 2018-09-11 12:10 수정 2018-09-11 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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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충북지방경찰청' 캡처

충북지방경찰청 페이스북에 5일 짧은 영상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영상 제목은 ‘억수 같이 쏟아지는 폭우를 맞던 할머니.’ 비가 하염없이 내리던 지난달 30일 오후 3시30분 충북 괴산에서 촬영된 영상입니다.

당시 불정파출소에서 근무하는 엄기운 경위와 최창회 경사는 폭우 피해 점검을 위해 유동순찰 근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로에서 전동휠체어를 탄 80대 할머니와 맞닥뜨렸다고 합니다. 할머니 손엔 우산이 없었습니다. 줄기차게 내리는 비를 몽땅 맞고 있었죠. 최 경사는 곧장 차에서 내려 할머니에게로 뛰어갔습니다.

“할머니, 위험해요. 저희가 순찰차로 집까지 모시겠습니다.”
“아녀. 거의 다 와 가.”
“이 빗속을 어떻게 가요.”
“괜찮아유. 일들 보셔유.”



최 경사와 엄 경위가 거듭 순찰차에 타시라고 권했지만, 할머니는 미안한 마음이 컸는지 요지부동이었습니다. 그래도 할머니를 외면할 수 없었던 두 경찰관은 집까지 동행하기로 했습니다. 최 경사가 할머니에게 우산을 씌워드리고, 엄 경위가 순찰차로 그 뒤를 천천히 따라가는 식이었지요. 혹시 모를 긴급 상황에 대비해서 말입니다.

전동휠체어 속도에 맞춰 걷다 보니 무려 30분이 걸려서야 할머니 댁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빗줄기, 유일한 피난처인 우산, 빗방울이 땅을 내리치며 만든 요란한 ‘쏴아’ 소리. 최 경사는 그렇게 30분을 걸었습니다. 할머니 곁을 지키면서요. 엄 경위는 두 사람의 뒤를 든든히 보호했고요.

영상은 ‘순찰차는 사회적 약자의 지팡이가, (또는) 우산이 되고’라는 문구로 마무리됩니다. 최 경사가 한 일은 경찰관으로서 당연한 행동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누군가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단지 그의 의무였을 뿐이라고 지적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런데 그 지팡이가, 때로 부러지기도 하는 지팡이가 올곧게 제 몫을 다하는 모습을 볼 때면 신뢰와 희망이 가슴에 차오르고는 합니다. 그날, 최 경사가 건넨 건 단지 ‘도움의 손길’이 아니라 그대는 혼자가 아니라는 ‘믿음’이었습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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