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통일을 위한 평화의 기도]다음세대에게 부어줄 하나님 나라의 소망

국민일보

[남북통일을 위한 평화의 기도]다음세대에게 부어줄 하나님 나라의 소망

입력 2018-10-10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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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왕이신 주님! 이상(理想)이 희귀한 시대에 우리로 하여금 통일을 꿈꾸게 하니 감사합니다. 우리 민족은 서로에게 죄를 짓고 악을 행해 미워하며 죽이고 반역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영광을 민족의 등불로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미움과 분열을 넘어 배타와 무관심이 우리의 마음에 깊이 자리 잡은 게 현실입니다. 가뭄 끝의 논바닥처럼 갈라진 이 나라와 민족의 아픔을 보고도 무심히 사는 저희의 무정함을 용서해 주소서.

치열한 경쟁 속에 살아가는 우리나라 다음세대를 불쌍히 여겨주옵소서. 강도 만난 이웃을 돌볼 마음의 여유조차 버거운 이 세대의 치열한 삶을 주님께서 돌아봐 주옵소서. 이 땅의 다음세대에게 하나님 나라를 꿈꾸는 마음을 충만히 부어주소서. 그래서 지극히 작은 자 하나 가운데 계신 주님을 뵙고 이들을 일으켜 하나님의 편만한 은혜를 흘려보내는 복음의 전달자가 되게 하소서.

눈이 어두워져 갈 길을 찾지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시대입니다. 그럼에도 이 시대에 하나님의 마음을 품은 다음세대를 일으켜 주소서. 그래서 이들이 민족을 위해 쓰임 받는 통일의 용사되게 하소서.

이들에게 눈물을 물같이 흘린 예레미야의 눈물을 주소서. 스스로 행위를 살피고 여호와께 돌아가게 하소서.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고 통일을 준비하는 희망이 되게 하소서.

그래서 다음세대가 통일의 새 역사를 일궈갈 하늘의 열쇠가 되게 하소서. 통일로 이 민족에게 주실 새로운 하나님 나라를 꿈꾸게 하옵소서. 거룩하고 정의로운 평화의 나라, 하나님의 마음으로 열방을 섬기는 나라, 하나님 보기에 좋은 나라. 이런 나라를 꿈꾸며 이를 일궈내는 통일의 도구가 되게 하소서.

그래서 이 땅의 다음세대가 민족의 허리를 짓누르는 분단의 빗장을 제거하는 새로운 역사의 증인되게 하소서. 삼천리 구석구석에 성령의 은총을 내리시며 구원의 햇살이 백두에서 한라까지 두루 비춰 은혜의 단비가 이 나라의 메마른 대지를 적시게 하소서. 속히 이뤄주옵소서.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승수 교수(숭실대 기독교통일지도자훈련센터)


▦통일기도문 해설

1994년 통일원(통일부 전신)이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의하면 ‘통일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91.6%에 달했다. 그러나 이듬해 12월 제주도를 제외한 20세 이상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는 반드시 통일이 돼야 한다는 응답은 58%에 그쳤다. 반면 34.3%는 ‘통일이 되면 좋지만 통일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서 진행한 ‘2018 통일의식 조사’ 결과를 보자. 여기서는 통일의 필요성에 공감하는 응답자가 59.8%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해 20~30대의 응답은 2017년 40%, 2018년 52%로 나타났다. 통일의 필요성에 대해 절반 가까이 동의하지만 분단 상태에 대한 선호 응답 역시 점점 늘고 있는 것이다.

2014년도 서울대학교 통일평화연구원에서 진행한 ‘사회 계층과 통일, 북한 인식에 대한 통일의식조사’에 의하면 계층별로 상이한 결과가 비교적 일관되고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주목할 것은 소득 상위계층의 인식과 20대 이하의 젊은 세대의 통일 인식이 유사하게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잘사는 남한 사람들이 못 사는 북한 사람들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우려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젊은 세대는 통일의 필요성을 낮게 평가했다. 통일 담론이 개인 이익을 증진시키는 담론으로 인식되지 못한 것이다.

이런 보수적이며 현상유지적인 성향은 통일 비용에 대한 부담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는 3포, 4포세대를 넘어 무한대로 포기하는 ‘N포세대’가 돼버린 다음세대에게 미래의 통일을 위해 오늘을 다시 한 번 포기하고 희생하라는 이야기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통일의 과정과 결과에 대한 불확실성, 그리고 이를 감수해야하는 이들의 역할을 감안한다면 이는 어떤 측면에서 이해 될 수 있는 이야기다. 과거엔 전쟁으로 비롯된 증오가 통일을 가로막는 심리적 장벽이었다면 이제는 치열한 삶으로 인한 무관심과 배타가 가장 큰 요인이 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남북화해와 통일에 무관심한 청년에게 어떤 이야기로 생각의 전환을 이끌어낼 수 있는가. 통일 비용은 한시적이지만 편익은 영원히 누릴 수 있으므로 이를 포함해 계산해야 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인가. 아니다. 통일비용 논의의 한계는 통일 문제를 결국 돈의 문제로 수렴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삼는 독일 통일은 결국 사람·민족·인간의 존엄성을 회복하는 문제로 귀결됐다.

마지막 동독 총리 로타어 데메지에르는 “한국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돈 많이 드는 통일은 원하지 않는다”라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동독의 마지막 국방장관 라이너 에펠만은 “한국 사람들은 통일 후 다시 장벽을 쌓으려 한다”고 지적했다. 통일 논의가 돈과 경제 관점에서 진행된다면 역설적이게도 남북을 가르는 새로운 분단의 장벽이 세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노르웨이 출신 평화학자 요한 갈퉁은 평화 개념을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로 구분했다. 소극적 평화는 폭력과 불안, 억압이 없는 상태를 뜻한다. 하지만 기독교적 평화는 적극적 평화다. 기독교의 평화는 정의로운 평화이며 주어진 상태가 아니라 실현돼 가는 과정이다. 경제적 소유가 아니라 ‘공동의 길’로서의 평화다. 즉 기독교적 평화는 하나님과 다른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는 삶이다. 남북통일이란 정의로운 평화를 이뤄가는 과정이다. 즉 평화를 만들어 함께 살아가는 것인데 이것이 인간 중심이자 성서적 통일의 관점이다.

이제 무엇보다 통일 논의의 초점은 경제적 비용 중심에서 사람, 인도주의, 윤리적 문제로 그 프레임이 전환돼야 한다. 통일을 경제적 수익사업 정도로 생각하는 이기적 논리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통일은 더욱 요원해 질 것이다. 편익이라고 하는 것조차 현 세대의 희생을 담보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통일에 대한 열망은 더욱 요원해질 것이 분명하다.

한국교회는 자유가 억압된 북한 주민이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돕는 ‘진정한 평화’를 추구하는 동시에 이들과 함께라는 공동체 의식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곧 성경적 통일관이다. 아울러 다음세대는 평화를 만드는 사람이 돼야한다. 평화는 본래 주어진 상태가 아니라 실현돼 가는 과정이다. 청년, 그 중에서도 기독청년은 누구보다 평화에 대한 책임을 인식하고 평화를 만들어가며 증언해야 할 것이다.

함승수 교수(숭실대 기독교통일지도자훈련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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