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그리고 당신의 흉터에 박수를 보냅니다” 배우 지망생의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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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그리고 당신의 흉터에 박수를 보냅니다” 배우 지망생의 위로

철원 K9 자주포 폭발 사고 피해자 이찬호씨 인터뷰

입력 2018-10-26 02:00 수정 2018-10-26 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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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의 꿈을 키우던 이찬호씨는 지난해 8월 복무 당시 사고로 전신 55%에 화상을 입었다. 흉터는 몸 여기저기에 남았다. 오른쪽은 그가 5월 말 페이스북에 공개한 사고를 당하기 전 모습이다. 이찬호씨 제공

스무 네 살 청년은 군대에서 폭발 사고로 팔과 다리에 화상을 입었다. 흉터는 온몸의 절반을 넘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이 청년의 꿈은 배우였다.

그러나 팔과 다리를 뒤덮은 사고의 흔적은 크고 깊었다. 손가락 사이 살은 달라붙어 오그라들었고, 주먹을 쥐는 것조차 어려웠다. 외모를 드러내는 일을 선택하기엔 틀렸다고 절망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청년은 소셜미디어에 흉터를 공개하기로 마음먹었다. 사람들이 “힘내라”고 응원했다. 더 많은 이들이 흉터 사진을 보고 위로받았다고 말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수술대에 올라야 할지 청년은 알지 못했다. 지금껏 받은 피부 이식 수술때문에 아픔과 간지러움을 동시에 느끼는 고통스러운 나날이 얼마나 더 계속될지도 몰랐다. 그래도 청년은 흉터를 드러내놓고 환하게 웃었다.



지난 5월 청와대 청원 게시판에 올라 30만명의 서명을 끌어낼 정도로 큰 관심을 받은 K-9 자주포 폭발 사고 피해자 이찬호씨의 요즘 이야기다. 이찬호씨는 지난해 8월 강원도 철원의 포사격장에서 훈련하던 중 큰 폭발 사고를 당했다. 밀폐된 철갑 안에 탔던 7명의 탑승자 중 한 명이었다. 이찬호 병장으로 불리던 때였다.

이찬호씨 사연의 알린 청와대 청원 게시판. 온라인 커뮤니티 캡처


‘이찬호 병장이 사고 후에도 치료비 걱정으로 전역을 미뤘다’는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졌고, 많은 이들이 분노했다. 이후 절차에 따라 이찬호씨는 국가유공자로 지정됐다. 하지만 등급 등 문제로 국가보훈처에 재심을 청구했다.

한때 인터넷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찬호씨의 사연은 대중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그렇지만 그의 삶은 계속됐다. 또 적지 않은 네티즌이 소셜미디어에서 이찬호씨의 회복을 기도하고 있다.

이찬호씨는 최근 팔에 남은 화상 흉터를 적나라하게 공개했다. 잘 구부려지지 않은 손을 얼굴에 대고 환하게 웃었다. 손가락 끝에서부터 팔꿈치까지 이어지는 크고 긴 흉터는 검붉은 회오리처럼 보였다. 그는 잘 구부려지지 않은 손가락으로 브이(V)자를 만들기도 했다.

그러면서 핼러윈 코스프레가 따로 필요 없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흉터는 상처를 극복했다는 이야기. 그대들의 흉터에 박수를 보냅니다. 누구든 상처 하나쯤은 있겠죠. 마음의 상처든 뭐든 그 상처가 잘 아물길 (바랍니다). 흉터는 상처를 극복했다는 증거니까요’라는 말도 남겼다.

이찬호씨가 최근 페이스북에 공개한 사진. 이찬호씨 제공.


이찬호씨 글처럼 우리는 누구나 상처 하나쯤을 가지고 산다. 그게 마음이든 몸이든 간에 말이다. 시간이 지나면 상처는 아물고, 그 자리에 흉터를 남긴다. 많은 이들은 상흔을 숨긴다. 보기 싫은 흠집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흉터는 오히려 자랑스러운 것이라고 이찬호씨는 믿었다. 어려움을 잘 극복한 징표이기도 하니까.

이찬호씨의 흉터 사진에 3000명이 넘는 이들이 ‘좋아요’를 눌렀다. 다들 “찬호씨도 힘들 텐데 우리에게 오히려 위로를 줬다”며 감동했다. 비슷한 고통을 앓았던 환자도 응원과 위안이 뒤섞인 댓글을 달았다.

이찬호씨가 최근 페이스북에 공개한 자신의 팔 사진. 사진전을 염두에 두고 전문 스튜디오에서 촬영했다고 했다. 이찬호씨 제공.


이찬호씨는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힘들다’는 것의 크기는 각자마다 다를 것”이면서 “남을 위로하려는 의도로 사진과 글을 올린 것은 아니지만 많은 이들이 위로를 받았다고 해서 정말 감사했다”고 말했다.

이찬호씨는 되레 네티즌에게서 위로받는다고 했다. 8월 말 고3학생에게서 받은 페이스북 메시지가 그랬다. 죽을 만큼 힘들었던 시기였던 학생은 긍정의 힘으로 하루를 버티는 이찬호씨의 모습을 보고, 나쁜 마음을 고쳐먹었다면서 “감사하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고 했다. 이찬호씨는 학생 메시지에 “나도 쓸모가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겉으론 담담한 척했지만, 거울에 비친 괴물 같은 모습에 용기를 잃었던 시점이었다. 이찬호씨는 피자 쿠폰을 담아 답장했다. “힘들 땐 맛있는 거 먹는 게 최고”라고 말과 함께. 여학생은 “평생 가져갈 행복”이라면서 울었다.

전신 화상을 입은 이찬호씨는 수차례 피부 이식 수술을 받았다. 지난 6월 손의 회복 상태를 촬영한 사진. 이찬호씨 제공


사람들의 응원과 관심은 이찬호씨를 일어서야 하는 힘이다. 그러나 막말하면서 상처를 주는 이들이 여전히 있다. “통구이가 됐다” “모자이크 없는 사진을 보고 싶다”는 식의 글을 커뮤니티 워마드에서 봤다. 포털사이트 뉴스에 달린 “국가 유공자 지정을 왜 해주냐”거나 “패잔병 아니냐”는 댓글도 이찬호씨의 마음을 후벼팠다.

이찬호씨의 화상 치료는 얼마나 오래될지 모른다. 피부 이식 등 당장 받아야 할 수술은 2차례. 의료진은 최소 3년 동안 화상 치료를 해보자고 했다. 배와 가슴의 멀쩡한 살을 떼 와 팔과 다리에 이식하는 수술은 여전히 무섭다. 이찬호씨는 지난해 큰 수술 후 패혈증에 걸려 죽을 고비를 넘겼다. 우울증약을 포함해 수면제, 통증 완화제 등 여러 개의 알약을 수시로 먹고 있다.

이찬호씨는 요즘 새로운 꿈을 꾼다. 막연히 계획하는 것은 ‘흉터 사진전’이다. 화상에 대한 인식이 좋지 않아 많은 환자가 흉터를 드러내지 않거나 심한 경우 사회 활동을 하지 않는 등 외출 자체를 꺼린다고 한다. 그도 마찬가지였다. 해외에는 전신 화상 95% 이상인 사람이 모델로 활동하기도 한다. 이찬호씨는 “흉터는 상처를 극복한 흔적이라는 말이 현실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그는 사진전의 모델 1호가 되어 스튜디오 촬영을 마쳤다. 다른 환자 사진을 모으고, 장소 등을 대관하는 등 갈 길이 멀다. 서투른 영어 실력으로 해외 단체에 도움을 요청하는 메일도 직접 보냈다. 이찬호씨는 이런 전시회를 통해 흉터를 안고 사는 많은 이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고 했다. 멀고 험난한 여정, 이제 첫발을 뗐다.

사고를 당하기 전 촬영한 이찬호씨의 모습. 이찬호씨 제공

신은정 기자 s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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