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인, 그리고 여성… ‘더블 마이너리티’ 극복한 영 김의 아메리칸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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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인, 그리고 여성… ‘더블 마이너리티’ 극복한 영 김의 아메리칸드림

26년 만에 한국계 미국 연방의원 탄생… 독도·일제 위안부 문제 미국에 알린 주역

입력 2018-11-08 1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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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영 김 미국 연방 하원의원이 6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롤랜드 하이츠에서 당선을 확정한 순간에 아들 앨빈을 부둥켜안고 밝게 웃고 있다. AP뉴시스

영 김(56·공화당) 미국 연방 하원의원은 재미교포 1.5세대다. 본명은 김영옥. 1962년 인천에서 태어나 초등학교까지 사춘기 이전의 어린 시절을 한국에서 보냈고, 1975년 미국령 괌으로 이주해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부침이 없던 그의 삶은 스무 살 성인이 된 1981년부터 급반전됐다.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소재 남가주대학(USC)에 진학하면서였다. 미국 본토에서 그는 동양계 소수민족이면서 여성인 ‘더블 마이너리티’(double minority)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은행 재무 분석가·의류 브랜드 관리자로 일하는 동안 무수한 차별과 맞서 싸워야 했다.

오렌지카운티, 샌버너디노와 같은 캘리포니아 남부 ‘부촌’에서 입법권·예산편성권을 가진 연방 하원에 입성한 김 의원의 성공담은 40년에 가까운 도전과 개척으로 맺은 결실이다. 그는 6일(현지시간) 치러진 미 중간선거의 캘리포니아 39선거구에서 7만6956표(득표율 51.3%)로 당선됐다.

한국계 영 김 미국 연방 하원의원이 6일(현지시간)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롤랜드 하이츠에서 지지자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있다. AP뉴시스

민주당 후보로 이 지역구에 도전한 경쟁자는 2010년 복권 당첨금 2억2600만 달러(약 3000억원)를 손에 넣은 멕시코계 미국인 길 시스네로스. 라틴계를 대표하는 그에게도 7만3077명(득표율 48.7%)의 엄청난 표가 몰렸다. 김 의원은 시스네로스를 불과 4000여표 차이로 따돌리고 승리했다.

지금까지 한국계 미국인이 미국 연방 의회에 진출한 사례는 1992년 당선돼 3선을 지냈던 김창준(78) 전 공화당 하원의원이 유일했다. 김 전 의원 이후 선거 때마다 한국계 연방 의원 탄생 여부에 관심이 집중됐지만 한 차례도 이뤄지지 못했다. 김 의원은 26년 만에 탄생한 한국계 연방 의원이다.

김 의원의 연방 하원 당선은 동아시아 정세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는 ‘지한파’ 에드 로이스 하원 외교위원장에게 한국의 독도 문제,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알린 주역이기도 하다.

AP뉴시스

로이스 위원장은 2014년 일본에서 제기된 독도 명칭 논란에서 “올바른 명칭은 독도”라고 못을 박았다. 이때 한국·일본 사이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전달한 참모가 바로 김 의원이었다. 김 의원은 1992년부터 보좌한 로이스 위원장과 20년 넘게 정치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있다.

김 의원은 이번 중간선거 개표 중 당선이 확실시되는 시점에서 “한·미 관계에 신경을 많이 쓰겠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북·미 이산가족 상봉에도 관심을 갖겠다”고 말했다.

김 의원의 공약은 대체로 당론을 따라가고 있다. 안전, 일자리 창출, 참전용사에 대한 예우, 교사의 권익 보호 및 학교 투자를 공약으로 내세웠다. 다만 나머지 하나의 공약인 ‘아메리칸 드림’은 트럼프 대통령 집권 하의 연방 정부와 엇박자를 낼 수도 있다. 그는 자신과 같은 개척자에게 동등한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는 홈페이지에 이민자 공약을 설명하면서 “전 세계의 사람들이 합법적으로 미국에 정착해 꿈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이민정책은 수정돼야 한다”고 적었다.

김철오 기자 kcop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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