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 “뇌경련으로 쓰러진 아내 살린 여성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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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살만한 세상] “뇌경련으로 쓰러진 아내 살린 여성을 찾습니다”

입력 2018-11-22 05:10 수정 2018-11-22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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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돌연 쓰러졌습니다. 공원에서 산책을 하다가요. 얼굴 근육이 굳었고, 숨도 잘 쉬지 못했습니다. 사랑하는 이가 영영 떠날 수도 있는 순간. 지난 17일 오후 4시30분쯤 30대 남성 A씨에게 벌어진 일입니다. A씨의 동의를 얻어 사연을 전합니다.

A씨는 그날 아내와 대구의 대표 수변공원인 ‘수성못’을 거닐고 있었습니다. 호수를 따라 조성된 산책로, 발맞춰 걷는 아내, 품에 안긴 반려견까지. 여느 때와 다름없는 여유로운 주말 오후였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이상했습니다. 분명 잘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멈춰 섰습니다. A씨는 당시를 “(아내의) 얼굴 근육이 떨리고 사지가 굳기 시작하더니 쓰러졌다. 점점 숨도 못 쉬었다”고 회상했습니다.

‘잃는 이’의 슬픔을 어떻게 글로 담을 수 있을까요. ‘떠나는 이’를 그저 바라봐야 하는 심정도 온갖 단어를 붙인들 표현하지 못할 겁니다. A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머리가 하얘져서 군대에서 배운 심폐소생술(CPR)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아내를 안은 채 ‘119에 신고해 달라’고 고함만 질렀다.”

후에 의사도 “정말 위험했다”는 진단을 내렸다고 합니다. A씨가 정말로 아내를 떠나보낼 수도 있는 상황이었던 겁니다. A씨는 당시 아내의 얼굴이 퍼렇게 질려가고 있었고, 체온이 떨어져 몸도 차가웠다고 했습니다. A씨 아내는 사실 수년 전 뇌종양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 2년6개월 만에 처음으로 뇌경련이 일어난 것이었죠.

수성못 풍경. 뉴시스

다행히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한 여성이 다가와 당황한 A씨 대신 심폐소생술을 시행했습니다. 그제야 정신이 든 A씨도 인공호흡을 하며 자신의 숨을 아내에게 넘겨줬고요. 때마침 주변에 있던 행인들의 신고로 구급차까지 도착했습니다. A씨 아내는 급히 병원으로 이송돼 정밀 검사를 받은 뒤 퇴원했다고 합니다.

A씨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그분의 얼굴조차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그러나 정말 찾아서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다. 제 아내를 살려주셨다. 제 목숨을 살려 주신 것과 다름없다”고 했습니다. 자신을 대신해 119에 신고한 행인들, 놀라 도망간 반려견을 붙잡아준 시민까지 모두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A씨는 21일 국민일보와 서면 인터뷰에서 “도와주신 모든 분을 일일이 찾아뵙고 감사 인사를 하지 못해 죄송하다”며 “받은 만큼 나누며 살고, 잊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다행히 119 구급대원의 도움을 받아 대신 신고해준 시민 2명 중 1명과는 전화 통화를 했다고 합니다. 다른 시민 1명은 “큰일을 한 것도 아니다”며 통화를 거부했다고 하고요.

A씨는 “처음 겪은 일이었다. 너무 끔찍해서 잠을 잘 못 자겠더라”며 “아내는 약을 먹으며 안정을 취하고 있다. 아직은 좀 멍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또 “(아내 병으로 인한 돌발 상황에 대해) 제가 미숙하고 준비가 안 돼 있었다”면서 “그런 저를 대신해 아내를 살려주신 분을 간곡히 찾는다”고 재차 강조했습니다.

A씨는 이 사연을 여러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렸습니다. 혹시 글을 읽은 아내의 은인이 인터넷 쪽지를 통해 연락해오지 않을까 기대하면서요. 인터뷰에 응한 것도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만약 A씨가 심폐소생술을 시행한 여성과 연락이 닿는다면 그것 역시 기적 같은 일이겠지요. 또 하나의 기적이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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