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살만한 세상] “추운 겨울, 해고될 경비원 5명” 사연의 결말

국민일보

[아직 살만한 세상] “추운 겨울, 해고될 경비원 5명” 사연의 결말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측의 갑작스러운 통보… 엄마들이 나섰다

입력 2018-12-30 07:00 수정 2018-12-30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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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내용과 무관. 게티이미지뱅크

해고 위기에 처한 경비원 5명과 이들을 위해 나선 주부들. 어느 아파트에서 벌어진 일([아직 살만한 세상] 경비원 5명에게 닥친 해고 위기… 엄마들이 나섰다)을 지난달 27일 전해드렸습니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측의 갑작스러운 경비 인력 감축 통보에 주민 9명이 힘을 모았고, 결국 감축 여부를 재결정할 전체투표가 열리게 됐다는 사연이었는데요. 최근 투표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이 겨울, 다섯 가장의 일자리는 지켜졌을까요?

30대 주부 A씨의 반가운 전화가 걸려온 것은 26일입니다. 지난 인터뷰에서 “매일 보던 분들을 못 보게 되는 것이 참 아쉬웠다”며 입주자대표회의와 맞서게 된 경위를 당차게 설명했던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다부졌습니다. “경비아저씨 다섯 분 모두 남게 됐어요. 결과가 좋아서 정말 기뻐요.” 17일부터 3일간 열린 전체 주민투표에서 ‘경비원 감축 반대’ 측이 이겼다는 게 A씨 전화의 요지였습니다.

A씨는 투표에서 이기기까지의 과정을 덤덤하게 들려줬습니다. 이전에 “대단한 일이 아니다”고 했듯이 이번에도 별 것 아니라는 식이었지요. 물론 내용은 아닙니다. 투표가 열린 것은 17일부터 19일까지 매일 오후 6~9시. A씨와 주부 8명은 3일 내내 이 3시간 동안 투표함을 들고 아파트 전체 875세대 문을 두드렸습니다. 주민들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이들이 나서 투표 진행을 도왔던 겁니다.

9명이 모두 투표에 매달릴 수는 없었습니다. 아이들 저녁 식사를 챙겨야 했으니까요. 5명이 투표함을 들고 밖으로 나가면, 나머지 4명이 남아 아이들을 돌보기로 했습니다. 주부 9명의 자녀는 총 16명 정도. 가장 어린 아이가 네 살, 제일 큰 아이는 초교 1학년입니다. 이 16명이 3일 동안 한집에서 저녁을 같이 먹고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아이들은 파티라도 열린 것처럼 좋아했지만 엄마들은 무척 힘이 들었다고 합니다.

투표 마지막 날, 개표하는 동안 참관인 자격으로 참석한 A씨 측. A씨 제공

대망의 투표 마지막 날. 오후 9시에 투표가 마감되자마자 개표를 시작했습니다. 개표에는 A씨 측 중 4명만 참관인 자격으로 참석했습니다. 이외에 아파트 관리소장과 선거관리위원회 5명이 자리를 지켰지요. 선거관리위원회는 주민들의 자원을 받아 구성된 모임으로, 아파트 내 투표가 있을 때만 활동합니다. 이번 3일 동안에도 A씨 측과 짝을 이뤄 투표함을 돌렸습니다. 투표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모두 691세대가 투표했는데 무려 78.8%가 경비 인력 감축에 반대한다고 했습니다.

A씨 아파트에 붙은 투표 결과 안내문. 전체 875세대 중 691세대가 투표에 참여했다. 투표에 참여한 입주민 중 78.8%가 경비원 감축에 반대한다는 입장이었다. 미참여 및 기권표까지 포함해 입주민 전체로 따져봤을 때는 약 62%가 반대한 셈이다. A씨 제공

A씨는 “돈과 관련된 문제라서 불리한 게임일 줄 알았다”며 “큰 차이로 이기게 돼 놀랐다”고 말했습니다. 경비원 5명을 해고하게 되면 세대당 매달 1만3000원~1만5000원 정도를 절감할 수 있다고 합니다. 내년도 최저임금이 오르면서 현재 경비 인원을 유지할 경우 세대당 매달 약 3600원을 더 내야 하고요. 하지만 투표 기간에 만난 많은 주민은 “있는 사람을 왜 내쫓냐”고 하거나, “그 돈 아껴서 얼마나 부자 된다고”라며 경비원들을 걱정했다고 A씨는 전했습니다.

투표 결과를 전해 들은 경비원 15명은 자신들 중 5명이 떠나지 않아도 된다는 소식에 크게 안도했다고 합니다. “더 열심히 하겠다”며 거듭 고마워했다고도 하고요. 이들의 “수고 많으셨다”는 한마디가 A씨에게는 어떻게 다가왔을까요.

통화 말미에 대뜸 “냉정하게 보면 남 일 아니냐”고 물어봤습니다. 왜 그렇게까지 애를 썼느냐고요. A씨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남 일이죠. 그래도 다 같이 살 수 있으면 좋은 거 아닐까요.” 그리고 이렇게도 말했습니다. “내심 조마조마했는데 큰 차이로 이겨서… 진짜 아직 살만한 세상이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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