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지오 “한때 극단적 선택하기도…행복한 사람 되고 싶다”

국민일보

윤지오 “한때 극단적 선택하기도…행복한 사람 되고 싶다”

‘13번째 증언’ 북콘서트

입력 2019-04-15 05:00 수정 2019-04-15 05:00
윤지오씨가 14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그의 저서 '13번째 증언' 북콘서트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뉴시스

“평생 연기를 하고 싶었는데 그 꿈이 좌절되면서 무너졌어요. 캐나다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했습니다.”

고(故) 장자연 사건의 공개 증인으로 나선 배우 윤지오(32)씨는 14일 오후 4시부터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저서 ‘13번째 증언’ 북콘서트 도중 이렇게 말했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는 고백이었지만 윤씨의 표정은 덤덤했다. 그는 장씨 사건에 대해 증언을 한 뒤 수차례 이사를 해야 했고, 배우의 꿈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했다.

사회자가 “살면서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었느냐”고 묻자 윤씨는 “사실 지나고 보면 다 견딜 만했다”며 말문을 열었다. 차분한 목소리였다. 그는 “10년 내내 도망 다닌 것은 아니었다”면서도 “단역밖에 할 수 없었고, 결국 언니 나이쯤 돼서 (성 상납) 제안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행실이 잘못됐던 걸까. 윤씨는 비난의 화살을 스스로에게 돌렸다고 했다. “결코 (성 상납을) 하지 않았지만 제안을 받은 것만으로도 수치스러웠어요. 어머니의 설득으로 청소년 시절을 보낸 캐나다로 돌아간 뒤 우울증이 왔죠.”

마음의 병은 윤씨를 극단으로 몰았다. 다행히 어머니가 윤씨를 발견한 덕에 병원으로 이송돼 살 수 있었지만 2개월간 입원 치료를 받았다. 윤씨는 “그곳에서 저처럼 스스로를 공격했던 환자들과 많은 대화를 나눴다”면서 “그때 크게 치유됐다”고 했다.

윤씨는 책에서 13번 동안의 비공개 증언을 하며 겪은 일을 그려냈다. 사건 초기부터 틈틈이 일기 형식으로 썼던 글을 토대로 엮어냈다고 한다. “사실은 익명으로 쓰고 싶었다”는 윤씨는 “지금도 ‘소설이다’ ‘허구다’ 이런 얘기가 나오지 않느냐. 그래서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책은 법률 자문을 받아 10번의 수정 작업을 거친 끝에 출판됐다.

윤씨는 장씨의 10주기인 올해 실명과 이름을 공개하고 대중 앞에 섰다. 응원만큼이나 비난도 쏟아졌다. 윤씨는 “악성 댓글을 다 본다. ‘왜 이제야 나왔냐, 이익을 추구하려는 게 아니냐’는 질문을 가장 많이 듣는다”며 “늦게 나온 것은 섣불리 나서기에 너무 위험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지금까지 살아있음에 감사하다. 언니와 여러분이 지켜주셨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지오씨의 북콘서트에 노승일(맨 왼쪽) 전 K스포츠재단 부장과 박창진 대한항공직원연대 지부장도 참석했다. 뉴시스

2009년. 성추행 등 피해를 입은 장씨가 여러 유력 인사의 실명이 나열된 문건을 남기고 숨진 해. 고작 20대 초반이었던 윤씨는 어느덧 30대가 됐다. 그는 “생전 언니보다도 나이가 많아졌다”면서 “그간 언니 뒤에 숨었지만 이젠 제가 언니 역할을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또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며 “후에 저 자신을 돌아볼 때 창피하고 싶지 않았다”고 폭로 결심 계기를 밝혔다. 윤씨는 “저도 결혼도 하고 싶고, 사랑하는 사람을 닮은 자녀도 낳고 싶고,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면서 “앞으로 40대, 50대 나이가 들어갈 텐데 자녀에게 ‘엄마가 이런 일을 했다’고 당당히 말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배우를 갈망했던 윤씨의 꿈은 이제 ‘행복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그는 “어떤 삶을 살고 싶다고 정해도 그렇게 살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행복하게 사는 윤지오가 되려고 노력할 것”이라며 “제 삶도 들여다보면 행복해야 할 부분이 많다. 제가 감당할 수 있는 고통만 따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윤씨는 이날 가수 이소라의 ‘바람이 분다’ 등을 부르며 관객과 소통했다. 질의응답 시간도 마련됐다. “고발을 결심하며 가장 두려웠던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윤씨는 “제 곁에 있는 사람들이 떠나는 과정을 보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었다”며 “많은 친구가 있었다. 연예인 친구도 있었지만 남은 사람은 얼마 안 된다”고 했다.

뜻밖의 선물이 윤씨를 울리기도 했다. 행사 초반, 윤씨가 무대에 등장하자 한 중년 남성이 “해외 출장을 간 딸이 전해달라고 했다”면서 꽃다발을 건넸다. 남성의 말에 연신 허리를 숙여 감사 인사를 전하던 윤씨는 “훌륭한 따님과 아버님께 감사드린다. 제 초대에 응해주신 모든 분께도 감사드린다. 한 분, 한 분 눈에 담아 평생 기억하겠다”며 잠시 눈물을 보였다.

윤지오씨가 시민으로부터 꽃을 받고 있다. 뉴시스

행사는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박창일 신부 등의 주도로 열렸다. 공익제보자인 박창진 대한항공직원연대 지부장, 노승일 전 K스포츠재단 부장도 참석했다. 박 신부는 “윤씨를 처음 만났을 때 눈빛이 흔들렸고 굉장히 불안했다”며 “피해자보다 가해자가 더 편안히 사는 사회는 바른 사회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윤씨가 더 편해질 수 있도록 이 자리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윤씨는 북콘서트가 마무리된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다음 주부터는 외신과 인터뷰를 할 것”이라며 “외신이 보도하면 국내에서도 오히려 많은 변화가 이뤄질 것 같다”고 말했다. 과거 성 상납을 제안한 대형기획사 대표에 대해서는 “이사를 자주 다녀서 찾는데 시간이 걸릴 테지만 녹취를 해둔 것도 있다. 그분은 (실명이 공개되면) 이쪽 업계를 떠나야 할 것”이라고 했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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