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뀐 것과 못바꾼 것들…세월호 5주기, ‘안전 대한민국’ 어디까지

국민일보

바뀐 것과 못바꾼 것들…세월호 5주기, ‘안전 대한민국’ 어디까지

입력 2019-04-16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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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세월호 참사가 참여 민주주의로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공분이었다. 누구라도 그 배에 탔다면 죽음을 피할 수 없었다. 우리는 국가에 의해 국민의 안전이 처참히 무너진 참사를 겪으며 공감했고, 분노했다. 304명이나 빠져나오지 못한 거대한 선박이 뒤집혀 바다에 가라앉는 모습을 보면서 그제서야 느꼈다. ‘나도 안전하지 않구나.’

생존 학생 설수진(23)씨는 “어른들이 우리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했다”며 “그럼 위험한 상황을 만들지 않는 것은 어른들의 몫이 아니냐”고 했다. 촛불로 들어선 문재인 정부는 ‘국민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안심사회’를 20대 국정전략 가운데 하나로 정했다. 지켜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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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한 사회 위해” 세월호 유족이 원하는 것

‘4월16일의 약속 국민연대’는 13일 광화문광장에서 추모문화제 ‘기억, 오늘에 내일을 묻다’를 열었다. 장훈 세월호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 단 한 가지를 요구한다”며 “우리 아이들, 304명 국민을 죽인 책임자를 처벌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들이 꼽는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3대 과제는 ▲해경은 왜 선원을 표적구조하고 승객구조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는가 ▲과적·조타미숙·기관고장으로 설명할 수 없는 세월호 급변침과 침몰의 진짜 원인은 무엇인가 ▲박근혜 정부는 왜 세월호 7시간의 행적을 30년간 봉인하고 증거를 조작·은폐하고 진상규명을 방해했는가 등이다.

유족들은 “우리가 가는 길은 위험한 사회를 벗어나 안전한 사회를 만드는 길”이라며 “책임자를 처벌하고, 안전사회를 건설하라”고 외쳤다. 비단 선박사고만을 막자는 호소일 리 없다. 인재의 교과서 같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통해 사회 전반의 안전시스템을 재설계하자는 주장이다.

일상 속 안전불감, 실태 점검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월 10일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안전 대한민국’을 말했다. 그는 “안전 문제를 무엇보다 우선한 국가적 과제로 삼겠다”며 “산재사망을 예방하고, 위험의 외주화 방지법을 제대로 시행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전했다. 달라진 근로환경을 자찬키도 했다. 문 대통령은 “타워크레인 사고 예방 노력으로 작년에 사망사고가 단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노력하면 그만큼 성과가 생긴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2022년까지 산재 사망자수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했다.

▲ 여전한 소형크레인 사고

지난 1월 14일 광주광역시 북구 오룡동 첨단지식산업센터 공사현장에서 소형무인타워크레인으로 옮기던 자재가 쏟아지면서 근로자 2명이 숨졌다. 문 대통령이 ‘타워크레인 사망사고 제로’를 언급한 지 불과 나흘 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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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타워크레인의 품질 개선을 최우선으로 두고 있지만 단순 기계만 문제 삼을 수는 없다는 것이 현장 근로자들의 전언이다. 운영과 사용상의 관행부터 바로잡아야한다는 것이다.

사고 당일 민주노총 전국건설노조는 성명을 통해 소형크레인이 사고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소형크레인은 조종석에 사람이 타지 않고 지상에서 리모컨으로 조종하는 방식이다. 건설업체는 저렴한 가격을 이유로 대형크레인보다 소형크레인을 선호한다. 조종면허를 취득하지 않고도 20시간의 교육이수만 하면 되고, 인터넷으로 3일이면 자격증 취득이 가능하다. 2016년 정부는 소형크레인 등록절차를 간소화하기도 했다.

소형크레인 비중이 급격히 늘었지만 대책은 부재하다. 장비만 빌려주거나 기사만 파견하는 회사가 늘다 보니 한 장비를 여러 기사가 돌려서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관리 소홀로 인한 사고가 벌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노조는 “소형크레인이 건설기계로 등록된 2014년부터 교육이수 방식의 위험성 등을 지적해왔지만 정부가 수용하지 않았다”며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위험의 외주화’ 개선 시급

세월호 참사 당시 안전의 핵심인 갑판과 기관부 직원 70%가 비정규직이었다. 비정규직과 하청직은 원청의 책임 회피와 맞닿아 위험한 작업환경과 인명사고로 이어진다. 고(故)김용균(당시 24)씨의 죽음은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다. 지난해 12월 10일 한국발전기술 소속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김씨는 한국서부발전이 운영하는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기계에 끼어 사망했다. 2인 1조 근무규정이 지켜지지 않아 홀로 일하다 죽음을 맞았다. 이 사고를 계기로 ‘위험의 외주화’가 문제로 대두됐지만 그가 사망한 작업장의 통로는 여전히 한 사람이 지나가기에도 좁았고 작업장은 뿌옇고 어두침침했다.

산업안전보건법인 일명 ‘김용균법’ 통과 후에도 위험은 여전히 곳곳에 존재하고 있다. 지난 3일 한솔제지 장항공장에서 황모씨가 작업 중 사고사했다. 박준선 김용균시민대책위원회 상황실장은 “노동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기업이 직접 고용해야한다”며 “힘들고 위험한 업무를 거부할 권리를 줘야하는데 아무런 변화의 조짐이 없다”고 지적했다.

위험의 외주화가 인명피해만 낳는 것은 아니다.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사태가 이를 잘 설명해준다. KT는 2002년 민영화 뒤 인력을 대대적으로 줄이면서 핵심 시설관리까지 외주업체에 맡겼다. 이 과정에서 책임까지 하청하면서 도시기능을 마비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 사다리 사용 전면 금지, 대안은?

또 하나의 변화는 사다리다. 고용노동부와 안전보건공단은 올해 1월 1일부터 사다리에 올라서서 작업을 하는 것을 전면금지했다. 그동안 사다리를 이용해 2인1조로 작업을 허용했던 사다리안전보건지침도 폐기했다. 최근 10년간 사다리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망자는 317명, 부상자는 3만8859명이다. 사다리서 작업하다 적발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을 내리기로 했다.

아예 사용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니다. 현장에 오르내리는 통로로만 사용하고 작업은 발판이 달린 작업대를 이용할 것을 권고했다. 현장의 목소리는 어떨까. 이들은 취지는 이해하면서도 준비·계도 기간이 부족해 혼란만 가중됐다고 입을 모았다. 대규모 건설 현장은 상황이 좀 낫지만 중소 현장은 여의치 않다. 주로 사다리를 사용해왔기 때문에 작업 공간이 좁아 작업대가 들어설 여유가 없다. 높이가 고정된 작업대도 많아 접근성이 낮고, 자리를 옮길 때마다 일일이 조립하고 해체해야하니 사용도 불편하다고 했다.

비용문제도 만만찮다. 정부가 요구하는 발판이 달린 작업대는 개당 50만~100만원 정도다. 지원책 없이 갑자기 사다리를 금지하면 어떡하느냐는 울분이 곳곳에서 터져나오는 이유다. 현장 근로자들은 “그야말로 탁상행정”이라고 지적했다.

“갈 길 멀지만, 안전 인식 많이 높아진 건 다행”

안순호 4·16연대 상근대표는 “안전사회 건설까지는 가지 못했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에 대한 국민과 정부의 인식은 높아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정부는 안전 예산을 2017년부터 매년 1조원씩 늘렸다. 이를 기반으로 포항 지진, 강원도 대형 산불 등 재난 위기상황 대처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기도 했다.

2017년 11월 15일 포항에서 규모 5.4의 지진이 발생했다. 이튿날인 16일은 대학수학능력시험 당일이었다. 정부는 수험생 안전을 우려해 수능을 23일로 연기했다. 사상 초유였다.

강원도 대형 산불 역시 미연에 방지하지는 못했으나 사후처리는 비교적 신속했다. 청와대가 재난 상황을 진두지휘하고 모든 부처가 속도감 있게 총력 대응해 그나마 큰 피해를 막았다는 평이 나온다. 그동안 문 대통령은 “중대 재난재해에서 컨트롤 타워는 청와대”라고 강조했고, 이런 기본 인식이 대형 재난 관리를 위한 제반 여건을 마련했다는 분석이다.

안전 사회 건설 위해서는…

복합재난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통합적 대응이 필요하다. 하나의 안전사고에는 직·간접적인 원인들이 그물처럼 얽혀있기 때문이다. 이번 강원도 대형 산불 상황에서는 재난관리 영상회의가 빛났다. 문 대통령은 재난안전관리본부, 산림청, 소방청, 국방부, 강원도 재난안전대책본부, 속초시청 상황실을 화상으로 연결해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고받았다. 정부가 지난해 10월 마련한 재난 유형별 위기관리 표준매뉴얼에 따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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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보다 앞서야 할 것은 대비다. 지난해 2월 3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본관 3층에서 시작된 불은 약 2시간 만에 완전히 진화됐다. 병원 직원들은 원내 방송을 통해 환자 대피를 주도하면서 상황을 시시각각 보고했다. 체계적 대응은 환자들의 신뢰를 얻었고 질서있게 피신하게 했다. 사상자는 발생하지 않았다. 매년 실시한 화재 대응 훈련의 성과였다. 이 때 스프링클러와 방화벽도 제 역할을 했다. 반면 이보다 8일 앞서 발생한 경남 밀양 세종병원 화재의 경우 사망자만 41명이었다. 현장에 스프링클러는 전무했고 방화벽은 속수무책으로 뚫렸다. 연기가 유입된 지 7분이나 지나서야 신고가 접수됐다. 세브란스병원과 마찬가지로 원인은 전기 합선이었으나 대비의 부재가 낳은 결과였다.

전기, 수도, 가스, 통신 등 라이프라인을 지키기 위한 시스템에 대한 고민도 이뤄져야한다. KT 화재, 지진, 태풍, 온수관 파열 등 한국서 최근 발생한 재난 대부분은 라이프라인을 위협했다.재난 상황에서 현장 지휘관의 실질적 대응 권한을 높여야한다는 요구도 나온다. 이동규 동아대 기업재난관리학과 교수는 지난달 서울신문이 개최한 좌담회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한국 사회는 더 안전해졌는가’에서 “재난 현장에서만큼은 현장 지휘관이 지방자치단체장보다 더 큰 권한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한다”고 설명했다.

지방직 공무원 신분인 소방관을 국가직으로 전환해야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소방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 ▲지방자치단체에 두는 국가공무원의 정원에 관한 법률 ▲소방기본법 등 4개 법안을 개정해야 한다. 지난 5일 등장한 관련 내용의 국민청원은 열흘 만에 25만여 명의 동의를 얻었다.

박민지 문지연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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