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들 깨우고 계단 내려갔더니…숨져 있던 12세 딸” 父의 눈물

국민일보

“이웃들 깨우고 계단 내려갔더니…숨져 있던 12세 딸” 父의 눈물

입력 2019-04-20 0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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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경방송

“아이를 수습하고, 내가 수습했습니다. 계단에 누워 있는 것을 복도 바닥에 내가 부둥켜안고 있었습니다.”

A씨는 지난 17일 길에 주저앉아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날 어머니와 딸을 잃었다. 딸은 고작 12세였다. 그가 거주하는 경남 진주 소재 아파트에서 방화·살해 사건이 벌어져 가족의 목숨을 앗아갔다. “이제 친구들 만나고 놀러 다니고 할 나이인데….” A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서부경남 지역 소식을 전하는 ‘서경방송’은 이날 진주 한일병원 합동분향소에서 만난 A씨와의 인터뷰를 공개했다. A씨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당시 상황을 전했다.

사건은 오전 4시25분쯤 벌어졌다. A씨는 “밖으로 나가니까 연기가 너무 자욱했다”며 “아이들은 일단 집에 있으라고 하고 복도 창문을 전부 열었다”고 했다. 이어 “문을 열고 보니 계단에는 연기가 없더라. 그래서 집에 들어가서 아이들 보고 빨리 뛰어 내려가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17일 오전 4시32분쯤 경남 진주의 한 아파트에서 방화 및 흉기 난동 사건이 발생한 가운데 용의자 안모(42)씨의 4층 아파트에 화재 흔적이 남아 있다. (경남소방본부 제공)

이때 집에는 A씨 부인, 둘째 딸 B양, 조카만 있었다. 첫째 딸(15)은 수영 훈련차 부산에 머물고 있던 터라 화를 면했다. A씨의 어머니와 아버지는 아래층에 거주했다.

A씨는 부인과 둘째 딸, 조카를 계단으로 내려보낸 뒤 다른 이웃들을 깨우러 돌아다녔다고 한다. 그는 “옆집에 문을 두드리면서 사람이 있는지 물어보고, 깨워 놓고 계단을 내려가니까 어머니하고 작은딸이 누워 있는데 그걸 쳐다보면…”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화재를 일으킨 것은 A씨와 같은 층(4층)에 거주하던 안인득(42)씨였다. 안씨는 자신의 집에 불을 지른 뒤 대피하던 주민들을 흉기로 찔렀다. 가족과 함께 달아나던 B양은 안씨에게 붙잡혀 사망했다. A씨 부인은 딸을 해하려는 안씨를 말리다 중상을 입었고, A씨 어머니도 손녀를 지키려다 숨졌다.

과거 정신 질환으로 치료받은 전력이 있는 안씨는 거주 기간 내내 이웃과 갈등을 빚어왔다. 피해망상에 휩싸여 주민들 집 앞에 오물을 뿌리는 등 공격적인 성향을 보였다. 안씨 가족들이 그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 했으나, 환자 위임장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됐다고 한다. 검경과 지자체도 책임을 미룬 채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피의자 안인득. 뉴시스

경찰은 18일 안씨의 신상을 공개하기로 했다. 안씨의 얼굴은 다음 날인 19일 범행 때문에 다친 손을 치료하기 위해 병원으로 이송되던 중 취재진 카메라에 명확히 포착됐다. 안씨는 피해자 유족에게 “미안하다”면서도 “저도 10년간 불이익을 당했다.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이번 사건으로 이 아파트 주민 5명이 숨지고, 2명이 중상, 4명이 부상을 입었다. 9명은 연기를 흡입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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