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졸업한다… 이혼도, 별거도 아닌 ‘졸혼’이란

국민일보

결혼을 졸업한다… 이혼도, 별거도 아닌 ‘졸혼’이란

입력 2019-04-22 17:00 수정 2019-04-22 17:34
게티이미지뱅크

소설가 이외수(73)씨와 부인 전영자(67)씨 부부가 결혼 44년 만에 졸혼(卒婚)했다. 이씨는 강원도 화천에, 전씨는 춘천에 따로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씨는 “이혼을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지금이라도 내 인생을 찾고 싶었다”며 “잘 해낼 수 있을지 걱정이 되지만 마음은 편안하다. 남편을 존경하는 마음은 변함없다”고 전했다.

졸혼이란 개념은 2004년 일본의 작가 스기야마 유미코가 쓴 ‘졸혼을 권함’이라는 책에서 처음 등장했다. 스기야마 부부는 걸어서 25분가량 떨어진 아파트에 따로 살고 있다. 이들은 한 달에 두 번 만나 식사를 하는 정도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스기야마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시기에, 서로의 생활에 간섭하기 싫은, 자아성취욕구가 강한 부부에게 어울리는 해법”이라고 설명했다.

졸혼이란 스기야마 부부처럼 이혼을 하지는 않았지만 부부 관계를 정리하고, 서로 간섭 없이 독립적으로 사는 형태를 의미한다. 자녀를 모두 출가시킨 뒤 부부가 따로 각자의 삶을 즐기지만 정기적으로 만난다는 점에서 별거와도 구분된다. 이 개념은 인간의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각광받기 시작했다.

심리적 안정감이 황혼이혼이 아닌 졸혼을 택하는 가장 큰 이유로 꼽힌다. 가족이 해체되지 않고 존속된 상태에서 부부만 분리되니 사실상 같이 살지 않는 것외에 달라진 게 없다. 사회 내에서 아직도 황혼이혼에 대한 시선이 따가워 대안을 찾은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2016년 결혼정보회사 ‘가연’에서 실시한 ‘졸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설문조사에 따르면 10명 중 6명은 결혼 후에도 싱글라이프를 꿈꿨다. 특히 남성(54%)보다 여성(63%)이 졸혼 의사가 높았다. ▲결혼 생활 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을 노후에라도 하고 싶어서(57%) ▲배우자의 간섭을 피하기 위해서(22%) ▲사랑이 식은 상태로 결혼생활을 유지할 것 같아서(18%) 등을 이유로 들었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가 지난해 ‘2018 은퇴백서’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25~74세 2453명 중 남성 22%, 여성 33%가 졸혼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연구소는 “현재의 중년층이 은퇴 연령기에 이를 경우 졸혼이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의 한 형태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졸혼을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다. 결혼의 본질적 의미를 퇴색시켜 어려움을 함께 극복하기보다 임시방편으로 졸혼을 택할 수 있다. 섣부른 합의로 무늬만 부부로 남을 경우 남도, 부부도 아닌 오히려 불편한 관계가 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불륜에 대한 문제도 존재한다. 상대방의 사생활에 깊이 관여하지 않겠다는 암묵적 약속이지만 부부 간의 도리를 저버리는 합의는 아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많이 본 기사

아직 살만한 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