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매리 “기자회견 안하면 미투가 거짓이 되나요”(인터뷰)

국민일보

이매리 “기자회견 안하면 미투가 거짓이 되나요”(인터뷰)

입력 2019-04-26 00:05 수정 2019-04-26 06:38

지난달 17일, 배우 이매리(48)씨의 페이스북에 정·재계 및 학계 유력 인사들의 실명과 함께 자신이 이들로부터 술 시중을 강요받으며 모욕적인 언사를 견뎠다는 내용의 미투 폭로가 올라왔다. 이후 이씨가 이달 중 귀국해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라는 보도가 이어졌다. 하지만 그는 아직 카타르에 머물고 있다. 이씨의 귀국이 늦춰지자 이번에는 ‘가해자로부터 금품을 받고 회유 당해 귀국하지 않고 있다’는 추측성 루머가 돌기 시작했다. 심지어 거짓 미투라는 의심의 시선까지 생겼다. 그가 한국에 돌아오지 않는 진짜 이유를 카타르에 머물고 있는 이씨에게 24일 전화로 직접 물어봤다.

-폭로 후 어떻게 지냈나요.
“힘들었어요. 그동안 견뎠던 부당하고 모욕적인 상황을 폭로했는데 오히려 더 큰 상처를 받았죠. 저보다도 엄마가 더 힘들어하셨어요.”

-왜 미투 폭로를 결심했나요.
“지금까지 약자는 참을 수밖에 없었어요. 그 당시에 폭로를 했다면 아마 매장당했을 거예요. 하지만 시대가 변했잖아요. 서지현 검사나 김지은씨 같은 분들의 결단을 보고 저도 용기를 냈습니다.”

-폭로 후 심정은 어땠나요.
“처음에는 정말 후련했어요. 제 분노를 누군가와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죠. 저는 꾸준히 관련 피해 내용을 페이스북에 올렸어요. 그 때는 아무도 관심이 없었죠. 하지만 이날(3월 17일) 올린 게시물은 기사화가 됐어요. 이날 처음 폭로한 것이 아니에요. 처음으로 기사가 나간 것뿐이죠. 당황스럽기는 했는데 후련함이 더 컸어요. 상황이 이렇게 전개될 줄 그때는 몰랐거든요.”

-기자회견을 먼저 자처했나요.
“제가 먼저 하겠다고 한 것이 아니에요. 미투 폭로 후 대중의 관심이 쏠렸고 ‘한국에서 기자회견을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계속해 받았어요. 일단 그렇게 하겠다고 했어요. 4월에 한국에 갈 계획이 있었던 터라 그 때에 맞춰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준비도 되지 않았고, 이곳에서 하던 일정 정리도 되지 않았는데 기자회견 보도가 먼저 나갔어요. 당황스러웠지만, 그때만해도 기자회견을 할 생각이었죠.”

-기자회견을 왜 취소했나요.
“다시 생각해보는 중이에요. 지금 마음으로는 안할 것 같긴 하지만요. 생각보다 심리적 부담감이 크더라고요. 이런 일로 대중 앞에서 피해 내용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힘들었고, 자극적인 말들이 더해질 것도 우려됐어요. 기자회견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왜곡 보도와 악플이 넘치는데 기자회견을 한 후에는 얼마나 더 힘들어질까요. 저야 어떻게든 버틸 수는 있겠지만 엄마 걱정이 되더라고요. 손을 떠실 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으셨죠. 또 다른 이유는 생계예요. 카타르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일정 조율이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았어요. 계속 일을 해야하는 상황이었죠. 귀국을 하려면 이곳의 일을 포기하고 가야하는데 그렇게까지는 무리였어요.”

-기자회견 취소 후 억측이 많았는데요.
“알고 있어요. 가해자에게 돈을 받고 회유당했다더라, 거짓 미투 폭로라더라 그런 말들이었죠. 돈을 받기는커녕, 사과도 받지 못했어요. 연락도 오지 않았는 걸요. 기자회견을 열지 않으니 그런 오해들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왜 취소했는지 알려드리고 싶은 거고요.”

-가장 힘들었던 점이 뭐였나요.
“가장 믿었던 기자의 실체를 알고 나서였죠. 제 동의없이 사건과 관련한 기자회견도 하셨더라고요. 기자회견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니 온갖 협박을 했습니다. 제가 먼저 기자회견을 하겠다고 한 것이 아니었는데도요. 성추행 피해사실을 적나라하게 공개하라더군요. 서 검사도, 김지은씨도 다 그랬다며 ‘성추행 당했다’고만 하면 그게 기사가 되느냐고요. (성추행 피해사실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을 거면) 뭐하러 미투 폭로했느냐고도 했고요. 제 심리적 부담감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았어요. 시간 끌지 말고 당장 귀국해 기자회견을 열어야 제가 살 수 있다고 했어요. 가해자에게 돈을 받았다는 허위사실을 유포하면서요. 카타르의 일도 중요하다고 설명해봤지만 듣지 않았어요. ‘그럴거면 미투를 왜 했느냐’는 말만 돌아왔죠. 저와 엄마를 응징하겠다더라고요. 그러고 나니 한국에는 더 들어가기 싫어졌고, 기자회견은 생각도 하기 싫더라고요. 문제의 기자에게 법적대응을 하려고 합니다.”

-미투 폭로를 후회하지는 않나요.
“부끄러운 행동을 한 적이 없으니 후회하지도 않아요.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다고 미투가 거짓이 되나요. 지금까지도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고 많은 걸 내려놓아야 했어요. 알려진 내용만으로도 충분히 사회 발전에 의미있는 폭로라고 생각해요. 제가 SNS에 글을 올린 것 자체가 미투 아닌가요. 꼭 기자회견을 하고 카메라 앞에 서야 미투인가요. 그것이 본질을 훼손하는 것 아닐까요. 피해자가 느끼는 부담감과 처한 상황을 조금이라도 헤아려 주셨으면 좋겠어요.”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가요.
“카타르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어요. 이곳 생활에 당분간은 충실할 생각이에요. 저는 불우한 배우가 아니에요. 이곳에서 최선을 다해 일했고, 나름의 성과도 얻었어요. 얼마 전에 세계적인 스포츠채널 비인스포츠의 ‘생방송 굿모닝쇼’에 초대돼 인터뷰를 했고 현지 언론 알와타나 카타르 신문에 실리기도 했어요. 중동·인도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전 세계 무대에서 활동하고 싶어요. 카타르월드컵 관련 특허도 다수 보유하고 있고, 힌디어와 아랍어도 구사할 줄 알죠.”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사건을 폭로한 뒤 한 달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사실과 다른 억측이 파다해 마음 고생을 많이 했어요. 당분간은 언론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마음을 추스르는 시간을 갖고 싶었는데, 그래도 제가 놓인 상황을 설명하고 오해를 풀어드리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 다시 용기를 냈습니다. 더 열심히 살겠습니다.”

박민지 기자 pm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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