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펫!터뷰] “장애동물의 ‘삶의 질’ 높이기 위해 의족·휠체어 만들어요”

국민일보

[펫!터뷰] “장애동물의 ‘삶의 질’ 높이기 위해 의족·휠체어 만들어요”

국내 1호 동물재활공학사 김정현 펫츠오앤피 대표 인터뷰

입력 2019-05-04 14:59
김정현 펫츠오앤피 대표가 23일 재활실에서 반려견 '초코'를 진료하고 있다. 최민석 기자

“다리를 다친 뒤 산책을 할 때마다 다리를 들고 다녀 마음이 아팠다. 초코가 네 발로 산책을 할 수 있게 돼 너무 기쁘다. 희망을 봤다.”

지난달 23일 서울 양평동 ‘펫츠오앤피’ 재활실. 김정현(35) ‘펫츠오앤피’ 대표가 무릎 보조기를 채워주자 반려견 초코가 다친 발을 조심스럽게 땅에 내디뎠다. 숨을 죽이고 지켜보던 초코 보호자들의 입에서 감탄사가 터져나왔다. 초코는 소파에서 점프를 하다 슬개골 골절 및 인대 파열 사고를 당했다. 직후 동물병원에서 3회나 수술을 받았지만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다. 이대로 포기해야 하나. 절망감이 들 무렵, 김 대표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날 유모차를 타고 왔던 초코는 보조기를 차고 네 발로 떠났다.

김 대표는 국내 1호 동물재활공학사다. 장애 등으로 몸이 불편하거나, 수술 전후 재활이 필요한 동물을 위한 보조기·휠체어 등을 제작해주는 게 김 대표의 일이다. 한 달에 평균 70마리, 지금까지 8000여 마리 동물에게 새 삶을 선물했다.


보조기 착용 후 테스트를 하고 있는 반려동물과 보호자. 최민석 기자

◆ “동물 의수족은 누가 만들어 주지?”

사람의 의수족을 만드는 의지보조기 기사로 활동하던 김 대표는 2011년 어느 날, 우연히 유튜브에서 꼬리가 절단된 돌고래에게 실리콘으로 인공 꼬리를 만들어주는 영상을 봤다. 이 영상을 보며 김 대표는 어릴 적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어렸을 때 함께 살던 새끼 고양이가 문틈에 끼여서 다리가 마비됐다. 사고 이후 얼마 못 가 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돌고래 영상을 보면서 ‘그때 누군가 나에게 도움을 줬다면 고양이를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내가 저런 일을 해보면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내가 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당시 국내는 반려동물 재활 분야의 불모지였다. 국내에서는 관련 자료가 없어 해외 사례를 찾던 김 대표는 미국에서 동물용 의지보조기를 만든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는 미국업체들에 동물 의지보조기 제작 일을 배우고 싶다는 메일을 수십 통 보냈다. 필라델피아에 있는 ‘마이펫츠브레이스’라는 동물재활공학 업체에서 ‘도움을 주겠다’는 답변이 왔다. 김 대표는 미국에서 일을 배운 뒤 한국으로 돌아와 2013년 국내 최초 반려동물 의지보조기 업체 ‘펫츠오앤피’를 개업했다.

◆ “굳이 동물한테까지 휠체어를 해줘야 해?”

사업은 시작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당시만 해도 굳이 동물한테까지 비싼 휠체어나 의족을 해줘야 하느냐는 부정적인 인식이 강했다. “동물 의지보조기 착용은 결국 보호자의 선택이다. 동물 의지보조기에 대한 보호자의 인식을 개선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또 동물 의지보조기가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병원과의 협업이 필요하다. ‘수술을 했는데 왜 보조장치가 필요한가’라는 일부 수의사들의 인식을 개선하는데도 큰 노력이 들어갔다”

개업 후 1년 가까이 사무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홍보를 하고, 수의학계를 설득했다. 반려동물 보호자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면서 병원을 찾는 동물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지금은 한 달 평균 70~80마리의 동물들이 병원을 찾는다.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치료로 개업 초창기 만난 골든리트리버 ‘동순이’를 꼽았다. 동순이는 홍역을 앓은 뒤 치료를 받다가 뒷다리가 마비됐고, 반려인에게 버림받았다. “동순이의 사연에 마음이 아팠다. 정말 좋은 제품을 만들어 동순이의 삶의 질을 개선시켜주고 싶었다. 자원봉사자들과 치료비를 모금해 보조기와 휠체어를 마련했다. 동순이는 당시 자원봉사자 중 한 명에게 입양돼 잘 크고 있다”

장애 동물 재활 분야의 인식 변화를 묻자 김 대표는 “장애 동물들이 많이 줄어들었다”며 미소를 보였다. 그는 “동물 의지보조기가 치료 방법으로 인식되고 있다. 6년 전, 이 일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이미 영구적인 장애를 앓고 있는 동물들이 많이 찾아왔다. 하지만 지금은 영구적 장애가 되기 전에 재활용품을 통해 장애를 극복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보조기를 착용한 반려견 '초코'의 모습. 최민석 기자

◆ 반려동물과 보호자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김 대표는 최근 동물재활공학사협회를 설립했다. 협회를 통해 동물재활공학사 자격제도를 정식 인가받아 새로운 직업군으로 인정 받겠다는 계획이다. 그는 “동물재활공학사에 대한 관심이 늘어나고 있다. 국가 인증을 받아 전문적으로 일할 수 있는 동물재활공학사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어 “이 일을 전문적으로 하고 싶다면 먼저 의지보조기학과, 의료보조기재활과 등 사람용 의수족을 다루는 분야를 배웠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광역시 별로 분점을 세워 장애 동물들이 재활 치료를 쉽게 받을 수 있게 하는 것도 김 대표의 목표다. 현재 부산지역의 한 동물병원에 펫츠오앤피 클리닉이 들어섰다.

김 대표는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재활 시스템을 만드는 게 중장기적인 계획이라고 말했다. “몸이 불편한 동물들은 집 밖으로 나가기조차 힘들다. 야외로 산책을 하러 나가면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다. 집 안에서는 재활 치료를 할 여건이 안되는 경우가 많다. 해외 업체와 협업해 집에서도 할 수 있는 홈케어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김 대표는 끝으로 동물재활공학사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직업이라고 말했다. 그는 “보조기를 통해 장애동물의 삶의 질, 더 나아가 보호자의 삶의 질을 개선시키고자 한다”며 “많은 동물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최민우 기자 cmwoo11@kmib.co.kr, 영상=최민석 기자, 김다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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