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아기 놓고 가면 3분간 문 열리지 않아요”

국민일보

[단독]“아기 놓고 가면 3분간 문 열리지 않아요”

해외서 몰래 아기 훔쳐가는 사례 있어 서울 난곡동 ‘베이비 박스’ 새 단장…장애아동·미혼부모 돕기 위해 법인 설립 준비 중

입력 2019-05-20 20:59 수정 2019-05-22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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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락 목사

자칫하면 거리에 버려질 영유아들의 생명 보호를 위해 설치된 서울 관악구 난곡동 베이비 박스(Baby Box)가 새 단장을 했다.

주사랑공동체교회 이종락 목사는 21일 “베이비 박스 설치 및 운영 10년만에 더 크고 안락하게 제작해 교체했다”고 밝혔다.

이 목사는 “새 베이비 박스는 아기가 놓여지면 3분 동안 문이 열리지 않는다. 해외에서 아기를 몰래 훔쳐가는 사례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물론 안에서는 바로 문을 열 수 있다. 앞으로 아기를 더욱 안전하게 보호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교회는 2009년 12월 베이비 박스를 처음 설치했다. 입양시설로도 보내지지 않고 버려지는 아기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베이비 박스는 ‘영아 임시 보호함’을 말한다.

벽을 뚫어 공간을 만들고 문을 설치한 뒤 버려지는 아기가 박스 안에 놓여지면 벨 소리를 듣고 아기를 데려올 수 있게 설계됐다.

지금까지 베이비 박스를 통해 구조한 아기만 1578명에 달한다. 대부분 미혼모가 낳았거나 장애가 있는 아기들이다.

베이비 박스에 두고 간 아기를 다시 찾아가는 부모는 20~30%에 불과하다. 나머지 아기들은 경찰과 구청, 서울시를 거쳐 보육시설로 보내진다.


새 베이비 박스는 (사)이타서울(대표 한유사랑)에서 지원했다.

베이비 박스는 체코에서 운영 중인 베이비 박스를 참고해 만들었다.

안에는 체온을 유지할 수 있는 열선과 담요, 아기가 들어왔는지 확인하는 벨 센서와 카메라가 설치돼 있다.

외부에서 베이비 박스에 아기를 놓고 가면 벨 센서가 작동하여 소리가 나며 10초 안에 필요한 조치를 취한다.

보육담당자는 아기의 건강상태를 확인하며, 상담사는 아기 부모를 만나 상담을 한다.

호주, 벨기에, 체코, 헝가리, 일본 등도 베이비 박스를 운영하고 있다.

새 베이비 박스는 기존 것 보다 안전과 보호, 알람 기능이 더 좋아졌다.

특히 디자인 부분이 눈길을 끈다.
이타서울 한유사랑 대표

이타서울 한유사랑 대표는 “가장 낮은 곳에서 태어난 가장 존귀한 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말구유에서 모티브를 얻어 디자인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또 “앞으로 새로운 베이비 박스를 통해 아기들의 생명이 더욱 안전하게 보호돼 기쁘다. 이곳에 눕는 모든 아기가 존귀한 자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했다.

한유 대표는 “앞으로 베이비 박스가 없어도 되는 세상이 와서 누구나 아기를 사랑으로 키울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이 목사는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아울러 베이비 박스를 처음 설치했을 때와 같이 “되도록 베이비 박스에 아기들이 들어오지 않게 하시며, 불가피하게 아기를 키울 수 없는 부모가 있다면 하나님께서 베이비 박스의 문을 직접 여시고 이들을 보호해 주시며 축복해 달라”고 기도했다.

주사랑공동체교회는 아기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아기를 다시 키우기로 한 80여 가정에 3년간 베이비케어키트박스(아기옷, 분유, 기저귀, 생필품, 쌀 등)와 생활비를 지원하고 있다.

거주지가 없는 출산예정인 미혼모에게 자립할 수 있도록 선교관(생활관)제공과 무료 출산도 지원 중이다.

보다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장애아동과 미혼 부모를 지원하기 위해 법인설립을 준비 중이다.

이 목사는 “법인설립을 통해 투명하고 전문성 있는 기관을 만들어 사각지대에 놓인 소외 계층을 도울 예정”이라고 밝혔다.

베이비 박스의 운영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다.

베이비 박스가 아이를 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결과적으로 영아 유기를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이 목사의 입장은 단호하다.

그는 “베이비 박스가 없었다면 많은 아기들이 유기돼 죽었을 것”이라며 “탯줄을 달고 들어온 아기를 살리는 사역인데, 어떻게 영아 유기를 조장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반문했다.

이 목사는 “국가가 할 일을 교회가 대신하고 있는 셈”이라며 “베이비 박스의 문이 열리지 않는 날까지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아기와 미혼모를 살리는 사역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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