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의 연극이야기] 85. 절규, 고독, 광기와 불안의 시대 “나는 살인자입니다”

국민일보

[김건표 교수의 연극이야기] 85. 절규, 고독, 광기와 불안의 시대 “나는 살인자입니다”

입력 2019-05-23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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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비현실의 경계

요즘, 뉴스에 단골로 등장하는 아나운서 멘트는 조현병으로 둔갑된 광기와 처참한 죽음, 그리고 자살 해프닝과 고독사(死)들이다. 고도경제 발전과 첨단 과학의 진입에도 사회 한 모퉁이에서 습한 연기를 마시고 사는 인간의 내면과 삶은 치유가 필요한 사회다. 세계의 전경(全景)은 패권 국가들의 핵무기와 첨단 무기로 날을 세우고 ‘세계평화’는 외침의 연속이며 인간의 내면은 불안으로 무감각해져 있다. 살만하다지만, 우울해지는 풍경이다. 핵 발사 신호음을 울리는 ‘버튼’은 비현실 세계 보다 더 잔혹한 현실이 될 수 있는 인류는 사악한 탐욕으로 자본과 무기를 교란하며 돌아가고 있다.

한 일본인은 가상 캐릭터와 결혼해 화제가 됐고, 중국과학기술대학이 개발한 ‘미녀로봇’은 1시간에 1만개를 판매하며 돌풍을 일으켰다. SF 판타지나, 미래과학 소설에 등장할 법한 상상은 현실이 되고 인간의 내면은 병들어 거리를 활보하는 드라마틱한 세계다. 이러한 풍경을 과거-현재-미래를 활보하며 1500자 내외로 초 단편소설로 이야기하는 작가가 있다. 호시 신이치(星新一)다. SF작가로 얘기하고 있지만 그의 이야기를 몽환적인 우화나 미스터리, 판타지를 다루는 단편으로 치부해 버리기에는 ‘현실세계’를 강력한 문장펀치로 날리고 있다. 쇼트-쇼트로 연결되는 스토리에는 몽환, 우울, 인간, 불안, 공포, 미래과학, 판타지, 우화 등이 섞여져 수많은 인간 군상들이 유영하며 현실과 비현실사이를 활보한다. 불확실한 미래, 사회부조리, 불안과 공포, 잔인함과 광기, 물질만능주의, 미래과학과 첨단기술의 회의적 세계, 정치와 과학의 불안한 결합을 디스토피아 세상으로 그려내고 있다.

‘호시 신이치’의 텍스트 전인철의 ‘언어’

2017년도 초연에 이어 국립극단에서 재공연 된 <나는 살인자입니다>(전인철 각색, 4월24~19일·백성희장민호극장) 는 호시 신이치 (星新一)의 1000여 편의 단편작품 중 여섯 개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술 접대를 위해 만들어진 완벽한 미모의 로봇 이야기를 그린 ‘봇코짱’, 스스로 은둔에 들어갔다 세상에서 완벽하게 잊힌 청년을 그린 ‘아는 사람’,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 나타난 정체불명의 구멍에 온갖 인간의 폐기물이 쌓여가게 되는 여정을 다룬 ‘이봐, 나와!’, 13일의 금요일에 잡은 연약한 악마가 결국에는 인간을 파멸시키고 마는 ‘거울’, 수십 년 만에 지구로 돌아가게 되는 ‘우주의 남자들’, 국립 연구소의 예산을 무단으로 사용하며 설계한 핵무기 개발 장치의 실체를 보여주는 ‘장치 한 대’ 등의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초연은 총 8개의 이야기로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인구조절’ 임무를 맡은 공무원이 결국 자신을 ‘인구조절’해야만 하는 아이러니를 제시하는 ‘생활유지부’와 분해되지 못하고 우주에 버려진 로봇들의 힘겨운 이야기를 담은 ‘어슴푸레한 별에서’가 포함되어 있었다. 신이치의 소설이 무대공간으로 과거-현재-미래를 넘나들며 변화무쌍한 시공간으로 변주되고 몸(배우)의 언어는 물질로 전이되고 생성하는 오브제로 현재로 살아 있는 선율로 텍스트는 연주된다. 파편화된 에피소드는 이미지·소리·빛·영상으로 퍼져 무대공간을 입체적으로 그려내며 마치 꿈의 세계를 배회하며 그로테스크한 몽환성과 기괴함 속에서도 현실로 퍼져가는 자욱한 연기를 피어 올린다.

무대는 익숙한 공간이 아니다. 극적효과를 낼 수 있는 무대 조명의 빛은 하이그로시(원목에 특수한 코팅을 입혀 고광택 블랙유광을 유발하는 효과) 재질로 무대를 설치한 프레임으로 차단되어 있고 어두우면서도 모던하고 미니멀한 공간구조다. 조명을 차단하고 시공간의 이동과 특정 장면의 분위기와 효과를 내려는 발상이 신선하다. 대체적으로 무대에서 그려지는 비현실적인 장면들은 조명과 소리, 영상으로 채워지게 마련인데 <나는 살인자 입니다>는 최소한의 빛으로 공간을 확장하고 1인 다역으로 무대를 그려내는 7명의 배우들이 인간의 어두운 탐욕의 욕망, 고독과 광기, 불안과 우울, 죽음, 미래, 공포와 절망, 미래과학과 첨단기술 발전으로 파열되는 디스토피아의 세계를 구현해 내고 있다.

절제되고 비워 있는 빈 무대공간을 채우고 있는 것은 영상, 빛, 배우의 몸, 사운드다. 괴기하고 몽환적인 미래 이미지의 전경을 극대화 시키고 배우들의 언어는 현실세계에서 부재한 인간들과 혹은 현실세계를 살아가는 인물로 분하면서 에피소드는 살아있는 리듬으로 파동(波動)하며 현실세계를 과감하게 타격한다. 배우의 몸과 움직임은 장면을 움직이게 하고 오브제를 생성하며 마치 공포와 공상과학, SF판타지 영화를 감상 하면서 한편의 이야기가 영화 속 무대공간에서 재현되는 것처럼 시청각을 자극한다. 무대는 첫 에피소드인 붓코짱(로봇미인)을 다룬다. 인간 보다 더 아름다운 미인로봇(김정민 분)은 바 마스터(안병식 분)이 소비의 욕망을 부추기기 위해 인간 보다 더 흡사한 피부를 가진 여자로봇을 개발했다는 설정이다. 극중 인물은 고독과 우울, 불안과 사랑의 결핍으로 병들어 소통은 단절되어 있고, 바 마스터는 물질만능의 탐욕으로 일그러져 있다. 이들은 마치 죽거나 병들어 있는 자들처럼 언어는 분절되어 있고 움직임과 대사는 연극적인 과장(誇張)을 들어내며 현실-비현실의 경계에 서 있는 인간들을 그려낸다.

소설의 내레이션은 등장인물에 따라 극을 설명하고 인물로 분하게 되는데, 때로는 현상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태도를 취한다. 미인 로봇인줄 눈치 채지 못하는 인간은 ‘봇코짱’을 여인으로 바라보고 ‘죽어버릴까?’ 절규하고 로봇미인은 기계적인 음으로 고독과 우울로 병들어 있는 인간을 치유할 수 없는 냉소적인 태도를 보인다. 내면의 공허함으로 절규하는 인간, 고독과 우울, 불안과 사회적 공포에 시달리는 현실세계는 첨단과학의 발전과 기술의 진화에도 내면의 통증에 시달리는 인간들을 구원할 수 없는 현대사회의 어두운 현상을 조롱하고 있다. 그 틈으로 바 마스터는 추악한 물질 탐욕의 욕망으로 자라나 내면은 텅 빈 ‘봇코짱’ 플라스틱 관에서 값비싼 위스키와 와인을 수거해 파티를 즐기고 소비시키는 추악한 현상들을 비틀고 구겨진 사회현상을 조준한다.

에피소드 <아는 사람>은 세상에서 완벽하게 잊힌 한 청년을 그리고 있다. 회사에 다니며 아파트 2층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극중 인물 ‘나’(이봉련 분)는 사회와 인간으로 분리되어 있다. 사회적 관심에서 멀어져 있는 ‘나’는 술값으로 공금을 써버린 후 돈을 가지고 도망을 가지만 고독과 외로움에 시달리게 된다. 학교 관계자와 동창, 아파트 관리인과 가족, 고리 대금업자 조차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철저히 사회에서 고립되어 있는 투명인간이 되어간다. 공금을 횡령 했다며 경찰서와 회사로 자수와 고백을 하러 가지만 ‘나’의 존재는 오히려 세상에서 신기한 사람이 되고 한 기획사 대표에게 눈에 띄어 “누구 저 아는 사람 없나요?”광고에 출연하면서 유명해 진다. 소통의 단절, 냉소적인 시선과 무관심은 한 인간을 사회적 투명 인간으로 만들고 인간의 절규가 상품화 되었을 때 사회와 타자는 비로소 인간을 상품의 도구로 바라보고 있는 현실의 시선을 담아내고 있다.

정체불명의 구멍에 온갖 인간의 폐기물이 쌓여가게 되는 여정을 다룬 ‘이봐, 나와!’ 에피소드는 태풍으로 절이 벼랑에 무너져 떠내려가 버린 자리에 지름 1미터 정도의 구멍이 생기면서 시작된다. 정체불명의 구멍을 둘러싸고 기자와 브로커가 등장하고 학자는 자연현상을 규명하지 못하고 “구멍을 막아버리자”며 소동을 벌이고 브로커는 시민을 위한 강당과 절을 지워주는 대신 ‘구멍 메우기 회사’를 세우게 된다. 핵폐기물과 원자로 쓰레기들이 맨홀로 버려지고 국가 기밀서류와 실험용 동물시체, 행려병자로 죽어간 시체들, 과거를 지우고 싶은 일기장, 위조지폐 등 부패한 쓰레기로 채워져 진동하는 사회 부패나 오염들로 퍼져있는 악취 나는 세계다. 마지막 장면에서 맨홀을 열고 올라오는 한 인간을 그로테스크한 이미지의 외형으로 들어낸다. 악취가 진동하는 폐기물에 둘러싸여 현실세계로 올라오는 인간은 부패로 오염되고 일그러져 현재로 되돌아오는 업(業)이 된다. ‘구멍’(맨홀)은 현재로 역류하는 역사의 시선이다. 환경파괴, 핵과 폐기물, 부패 권력, 타락한 인간의 오염들이 구멍에 버려지면서 그 위로 도로는 건설되고 인류는 진화와 성장 거듭하지만 추악하고 악취나는 오염과 쓰레기는 현재로 전이되어 오류의 역사는 반복될 뿐이다.

배우의 몸, 생성하는 언어

에피소드 ‘거울’은 인간 내면의 광기를 다루고 핵무기 개발의 실체를 보여주는 ‘장치 한 대’는 과학기술 발전으로 우주를 날아 첨단무기로 자국의 안전핀을 장착하고 있는 패권국가의 현상을 다루고 있다. 핵무기로 인해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며 살아가는 인간들을 연민의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든다. 특히 우주의 남자들 에피소드는 배우의 몸이 언어와 물질로 분화해 생성하면서 <나는 살인자 입니다> 무대 공간은 호시 신이치의 파편화 되어 있는 여섯 개의 에피소드에 살점을 채웠다. 소설 텍스트가 연극언어로 각색되고 무대에서 구현되는 방식은 여러 갈래다. 현대연극에서 희곡텍스트를 단순히 무대로 구현하는 방식은 녹슨지 오래됐다. 창작자의 시선으로 기름칠 하고 플롯 틈새를 조여 재현의 설계 도면을 다시 그려내는 경우 건축되는 재현의 풍경(風景)은 묶은 먼지를 털어내고 현재로 살아간다.

현대연극은 연극의 기존질서를 파괴하고 재생산하며 독창적인 소리를 내왔다. 대사언어는 배우의 몸으로 그려내고 무대공간은 비움과 채움으로 반복되어 언어가 절제된 공간의 사이에는 빛, 이미지, 소리, 영상으로 채워지는 연극언어의 새로운 선율을 만들며 강한 생존 방식으로 무대를 지켜왔고 과학기술의 발전은 새로운 연극을 그려왔다. 텍스트를 구현해 내는 언어는 재해석과 해체 사이로 변주되고 손질된 원작텍스트는 무형의 언어로 함축되거나 재생산되고 배우의 몸은 그려지는 텍스트로 무대공간에 현존하는 숨을 넣어왔다. 이런 점에서 <나는 살인자 입니다>는 작가의 시선과 소설의 텍스트를 온전하게 끌어안고 다차원적인 표현방식으로 원작의 잔상을 입체감 있게 도려냈다. 부패한 권력과 오류의 역사, 절규할 수밖에 없는 사회, 소통이 단절 되어있는 고독함, 인간의 광기와 핵무기로 인한 불안의 시대에 “나는 살인자입니다”라고 외칠 수 있는 인간과 사회의 시선이 기다려진다. 아쉬운 점은, 각 에피소드별로 영상과 이야기가 동일한 속도로 전개되면서 전체적으로 느슨해 졌다. 연극 <나는 살인자 입니다>는 5월30일부터 6월2일까지 일본 도쿄예술극장에서 초청공연된다.

▶연출 전인철은 극단 돌파구 대표로 2006년 극단 이와삼의 ‘고요’로 데뷔한 이후 전인철을 무대로 각인시킨 작품은 김은성 작가의 작품 초연 3부작 <시동라사>(2007), <순우삼촌>(2010), <목란언니>(2012)를 연출하면서였다. 김은성 작가와 초연 3부작 연출을 하면서 전인철은 무대를 채우고 비우며 작품들을 쏟아냈고, 극중 인물 탈북여성 ‘목란언니’는 고단한 남한생활에도 한국사회에서 경계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탈북민’들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면서 파장을 일으키는 숙제를 던져주었다. <순우삼촌>도 1970년대 산업화와 고도경제성장에 한 가운데 떠 있던 잠실 섬과 한강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겪게 되는 통증과 아픔을 굵은 시선으로 그렸다는 평가가 따랐고 이양구 작가와 의기투합해 쌍용 자동차 손배소 패소 판결의 이후의 노동자들 이야기 <노란봉투>(2015)도 여운의 진동을 남겼다.

박찬규 작 (2017)는 생존 경쟁에 내몰린 청소년들의 우정을 그린 작품으로 전인철을 들어낼 수 있는 작품으로 추릴 수 있겠다. 이후에도 극단 돌파구를 통해 꾸준하게 작품을 올리고 있지만 전인철 변화는 <목란언니> 이후라 할 수 있겠다. 이전 작업에서는 작가의 시선으로 텍스트를 무대로 구현해 내 것에 머물렀다면, 이후 이양구, 박찬규, 백화룡 작가와의 작업을 통해서는 한국사회 현실의 그림자를 투영하는 문제들을 무대로 정면으로 꺼내들었다. 연출도 이후 변화에 대해 “사회의 문제와 한국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러한 시선으로 현재를 바라보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연출의 변화가 응축되어 있는 작품이 일본 SF작가 호시 신이치(星新一)의 쇼트-쇼트 스토리를 묶는 <나는 살인자 입니다>이다. 이 작품으로 54회 동아연극상 연출상, 무대예술상, 연기상을 수상했다.

▶국립극단은 이성열 예술감독 취임이후 변화에 대해 아카이빙, 우수한 창작극 활성화를 위한 작품개발사업을 추진하고 현장연극인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현장의견을 반영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국립극단이 국내창작 연극 활성화와 우리연극을 위해 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서는 우수 희곡을 발굴하여 창작극 레퍼토리로 개발하고, 연출가들이 모여 새로운 연극형식을 실험하는 ‘연출의 판’, 우리 전통예술의 다양한 원형에서 한국적 연극성을 재발견하고 동시대적 연극으로 재창작하는 ‘우리연극 원형의 재발견’ 등의 다양한 사업과, 공연을 기획하고 운영하면서 공공성에 부합하는 시도를 해나가고 있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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