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하에 산다는 것…아현동·응암동 3인 이야기

국민일보

반지하에 산다는 것…아현동·응암동 3인 이야기

입력 2019-06-13 0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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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 스틸 이미지

영화 ‘기생충’의 주인공 기택(송강호)네 반지하집은 한국에만 있는 주거형태라고 합니다. 영어로 적당한 단어가 없어 ‘세미 베이스먼트(semi basement)’라고 번역했다지요. 1960~70년대 서울 등 대도시의 주택 부족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생겨난 주거형태가 반지하입니다.

국토교통부의 ‘2018년 주거실태조사’ 자료를 보면 전국 가구의 1.9%가 지하·반지하·옥탑방에 산다고 합니다. 대략 38만 가구 정도입니다. 바닥에서 지표면까지 높이가 해당 층의 절반이 되지 않으면 반지하, 절반 이상이면 지하층으로 분류됩니다.

영화는 반지하를 최악의 주거지로 묘사합니다. 창문 너머로 노상방뇨하는 취객이 보이고, 곱등이 같은 벌레가 출몰하며, 비가 오면 변기가 역류하는 그런 집 말입니다. 과연 현실도 그럴까요. 한국 가구의 2% 미만이 사는 그곳, 반지하에서의 실제 삶은 어떤 걸까요.

지난 7~8일 반지하 주택이 많은 두 동네, 서울 마포구 아현동과 은평구 응암3동을 찾았습니다. 아현동은 기택네 집 배경이 된 지역이고, 응암3동은 지난해 쏟아진 호우로 침수피해를 입은 가구들이 모여 있는 곳입니다. 발 언저리에서 들려오는 TV 소리, 말소리, 밥 짓는 소리에 귀 기울이며, 이곳에 사는 주민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영화 '기생충' 스틸이미지(좌), 기자가 촬영한 아현동 풍경.

“화분 안 죽지만 열매는 못 맺는” 아현동 반지하 15년차 조모 할머니

아현동 반지하 셋방에서 15년을 살았다는 조모(80) 할머니. 할머니는 집 앞 좁은 골목길에 나와 앉아 있다가 동네를 두리번거리는 기자를 만났습니다. 반지하 생활에 대해 묻자 할머니는 말합니다. “습한 것만 빼면 살 만해요. 여름에 해가 안들어 시원하고.” 할머니의 초대로 집안에 들어가 보니 정말 에어컨을 튼 것처럼 시원했습니다(한겨울 할머니 방은 얼마나 추울까. 그런 생각은 집에 돌아온 뒤에야 들었습니다).

한낮이었는데도 햇살은 할머니 방에 닿지 못했습니다. 할머니는 그래도 대문 앞 조그만 마당에 와닿는 햇빛이 고맙다고 했습니다. 할머니는 예쁜 꽃나무 화분을 햇빛이 잘 드는 마당 한켠에 놓았습니다. 제법 잘 자라지만 열매까지 맺지는 못한다고 합니다. 할머니는 탈수기를 이용해 대부분의 빨래를 해결하고, 이불만 마당에 걸어 말립니다.

사실 할머니가 이전에 살던 곳은 옆집입니다. 똑같은 반지하인데도 그 집은 유독 할머니를 고생스럽게 했습니다. 변기에 물이 계속 차올라 넘쳐흐르기 일쑤였죠. 아무리 수리를 해도 고쳐지지 않아서 이사를 결심했다고 합니다.

지금 그 집에는 다른 할머니가 살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아무래도 옆집 할머니가 걱정입니다.
“그 사람 수급자인 데다 환자야. 그런데도 그냥 살아요. 이사 갈 거라고, 갈 거라고 하는데 주인이 달래고 있어요. 이런 집은 누가 한 번 나가면 잘 안 들어오니까. 수리해줄 테니까 살라고. 그래서 아직까지 안 나가고 있어요.”

조 할머니네 집 현관.

몇년 전 아현동에 큰 비가 내렸을 때, 할머니 방 벽지가 물에 홀딱 젖어 들뜨고 떡처럼 뭉친 적이 있습니다. 할머니는 도배 비용이 없어 그대로 두려고 했습니다. 그러다 교회 목사님이 기도하러 찾아온다는 말에 급히 새 벽지를 주워다가 발랐다고 합니다. “새 집 같지 않아요?” 할머니가 웃으며 물었습니다.

가족과 떨어져 지내는 할머니는 폐지와 맥주캔을 팔아 생계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할머니는 “이런 반지하에는 제일 없는 사람들이 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나도 거지처럼 산다”고 말하고는 아이처럼 까르륵, 웃었습니다. “그래도 남들처럼 호화롭게 살고 싶다든지, 그런 욕심은 딱히 없어요.”

사실 할머니의 걱정도 없는 살림이나, 햇볕 안드는 반지하 집이 아닙니다. 아현동의 가파른 길이 제일 걱정입니다. 할머니는 동네의 꼬부랑 할머니들이 매일같이 언덕길을 오르내리는 게 힘들고 걱정스럽다고 말합니다. 언덕 양편에 빼곡하게 다세대 빌라가 들어선 할머니네 동네는 곳곳이 계단입니다. 이웃 할머니들 걱정을 늘어놓은 할머니는 기자의 손에 유가사탕 하나를 쥐어준 뒤 윗집 할머니와 함께 집을 나섰습니다.

아현동 풍경.


집중호우로 서울 곳곳에서 침수피해가 발생했던 지난해 8월 30일 오후 서울 은평구 응암3동의 한 침수주택에서 구청 직원, 군인, 자원봉사자들이 물에 젖은 가전제품과 집기류를 밖으로 꺼내고 있다. 뉴시스

집중호우로 서울 곳곳에서 침수피해가 발생했던 지난해 8월 30일 오후 서울 은평구 응암3동의 한 침수주택에서 구청 직원들이 물을 퍼내고 있다. 뉴시스

빗물과 똥물의 역류…아흔다섯 김모 할머니 ‘홍수의 추억’

응암3동에는 지난해 8월 쏟아진 폭우로 침수피해가 잇따랐습니다. 기자가 찾아갔을 때 이웃들과 바닥에 둘러앉아 마늘을 까던 김모(95) 할머니는 “그때 입었던 피해가 이루 말할 수 없다”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집 안에 있는데 갑자기 배수구와 변기에서 빗물과 똥물이 역류해 들이닥쳤습니다. 검은 똥물이 쿨럭대던 영화 속 기택네 변기처럼 말입니다. 냉장고를 비롯한 살림살이는 전부 젖고 떠내려갔습니다.

“정말 무서웠지.” 할머니가 말했습니다. 할머니는 그때 다친 뒤로 걸음도 제대로 못 걷게 됐습니다. 구청에서 지원해준 돈은 살림살이를 복구하는 데 택도 없이 부족했습니다. 재발 방지 조치를 취했다는데 그것도 어쩐지 안심이 되지 않습니다. 또 이런 일이 나면 어쩌나, 장마철이 다가오는 요즘 걱정이 태산이라고 합니다.

실제 반지하 거주자들에게 여름은 스트레스의 계절입니다. 호우에 취약하기 때문입니다. 서울시는 침수피해 주택 80~90%를 반지하 또는 지하 주택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2017년 서울시에서 주택침수 피해를 본 23세대 중 22세대가 반지하 또는 지하 주택이었습니다. 서울시는 2010년 침수피해가 잦은 지역에 반지하 주택 건축을 금지한 적도 있습니다.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 구립응암노인복지관 사회복지사들이 제습기 설치를 위해 동네를 찾아왔습니다. 침수피해 신고 가구들을 대상으로 관련 물품을 지원해주고 있다고 합니다. 차오르는 물을 퍼내주는 양수기도 지원했습니다.

“다리 아프시니까 내려오지 마세요.” 복지사들이 만류하는데도 할머니는 기어이 집안으로 따라 들어갔습니다. 반지하집으로 가는 계단의 양 벽을 두 손으로 짚은 채 ‘영차영차’ 소리를 내면서 말입니다. 그리고는 제습기 설치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복지사들이 일을 마치자 손에 초코우유를 쥐어줍니다.

할머니에게 반지하에서의 생활에 대해 물었습니다. 속으로는 물어볼 것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습한 공기와 계단. 무릎이 자주 아픈 할머니에게 불편한 점이 한둘이겠습니까. 하지만 할머니는 이렇게 말하고는 웃었습니다. “불편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 거지.”

제습기 설치를 위해 방문한 사회복지사들을 따라 집으로 내려가는 김 할머니.

언덕 위 힐스테이트에서 반지하까지… 응암동 50년 토박이

응암동에서 모든 집이 침수피해를 입은 건 아닙니다. 반지하에서 자녀들과 함께 살고 있다는 A씨네 집이 그렇습니다. 50년을 응암동 일대에서 살았다는 A씨는 백련산 힐스테이트 아파트에 살다가 형편이 나빠져 반지하로 내려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반지하집에도 등급은 있었습니다. A씨네 집은 전세 1억원의 ‘고가’로 반지하 중에서도 넓고 깔끔했습니다. 내부도 리모델링이 잘돼 살 만하다고 합니다. A씨는 “한평생을 응암동에서 살았고 자녀들 학교도 이쪽이기 때문에 당분간 이사할 계획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A씨에게도 고민이 없지는 않습니다. 아무리 넓고 깨끗해도 이곳이 반지하라는 사실을 숨길 수 없는 한 가지 표식이 있었습니다. 바로 습기와 곰팡이입니다. 아무리 애써도 반지하에서 곰팡이를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아현동의 한 주택. 열어놓은 창문 앞에 쓰레기가 쌓여 있다.

취재 결과를 종합해보면, 반지하가 열악한 주거지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거주자들이 어떤 노력을 들여도 습기와 곰팡이, 냉기 같은 것들을 완전히 해결할 수는 없었습니다. 반지하 거주자들이 입을 모아 한 말입니다. 주거 환경이 삶의 질과 연결된다는 걸 고려하면 결코 가볍게 생각할 문제는 아닙니다. 건강에도 치명적입니다.

21년 동안 은평구 일대에서 부동산업을 해온 김모씨는 “100명이면 100명 모두 지하를 기피한다”며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워진 사람들이 반지하에 살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반지하 셋방을 구하면서 “월세 1만원만 깎아달라”며 1시간을 울다 간 세입자도 있었다고 합니다. 원치 않는 공간에 사는 이유. 결국 문제는 돈이겠지요. 반지하가 가난한 도시 서민의 주거 공간이라는 사실은 분명합니다.

하지만 기자가 만난 주민들이 모두 처지를 비관한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겁니다. 집은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집이 곧 우리 자신은 아닙니다. 반지하 거주민들은 가족·이웃과 어울리며, ‘나’를 걱정하는 것만큼 ‘남’도 걱정하는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듯 말입니다. 무작정 찾아온 기자들을 스스럼없이 대하고 먼저 말을 걸어주기도 했습니다. 영화 ‘기생충’이 가난을 너무 혐오스럽게 그렸다는 비판이 나온 이유일 겁니다.

동네 부동산중개업소 사장에게 ‘반지하가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는 손사래를 쳤습니다. “아유, 그건 안 되죠. 반지하 사라지면 이 사람들 다 어디로 가라고요.” 그러게 말입니다. 열악한 주거환경은 개선돼야 합니다. 하지만 그 열악한 집 역시 누군가에게는 ‘집’이라는 사실 역시 잊어서는 안될 것 같습니다.

아현동은 10년쯤 뒤 재개발된다고 합니다. 기자가 방문한 동네는 ‘아현1구역’이라고 불리게 됐습니다. 조 할머니가 햇빛을 쬐고 마실 다니는 정겨운 동네가 어떤 이들에게는 개발대상이자 투자의 기회라는 뜻일 겁니다. 조 할머니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때 할머니는 어디로 가게 될까요. 그곳이 어디든, 지금의 할머니 집보다는 한 계단 지상으로 올라온 곳이기를 기도해봅니다.

백승연 박준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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