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훈의 미래교회 리포트] 시대의 영적 목마름을 채우라

국민일보

[이상훈의 미래교회 리포트] 시대의 영적 목마름을 채우라

입력 2019-06-13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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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난히도 무더운 여름, 짧은 가족 여행을 계획하며 더위를 피하고 영적 채움을 얻을 수 있는 곳을 고민했다. 그렇게 선택한 곳이 샌프란시스코였다. 샌프란시스코는 내가 살고 있는 로스앤젤레스에서 6시간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꽤나 먼 곳에 있다. 시간과 거리를 생각하면 부담스러웠지만, 미국에서는 끝없이 펼쳐진 대륙을 가로질러 운전하는 것 또한 여행의 일부이기에 기쁜 마음으로 여정을 시작했다. 누군가 자로 그어놓은 듯한 직선도로 양편엔 뜨거운 태양으로 이글거리는 광야가 자리 잡고 있다. 아무것도 생존할 수 없을 것 같은 황량한 사막 위로 간헐적으로 부는 바람에 먼지가 휘날린다. 그러나 그러한 곳에도 살아가는 잡초와 나무들이 있다. 누군가의 말처럼 고난을 통과하며 살아남은 그 질긴 생명의 위대함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샌프란시스코는 미국에서조차 이국적이며 아름다운 도시다. 그 유명한 금문교와 빛나는 해안, 수많은 언덕과 고전을 품은 전차, 비슷한 모양 다른 색으로 장식된 그림 같은 집과 빽빽한 빌딩,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이 서로 조화를 이루며 전 세계 관광객을 불러 모으는 참으로 매력적인 곳이다. 그렇지만 이러한 찬사와 화려함만이 가득 차 있지는 않다. 여행 둘째 날 도시의 중심부라 할 수 있는 유니언 스퀘어(Union Square)에 도착했을 때이다. 이른 아침부터 찾아온 여행객들의 부산한 움직임과 상기된 표정이 우리를 들뜨게 했다. 그러나 그러한 흥분도 잠시, 주차를 위해 찾아간 뒷골목에서 나는 도시의 민낯을 보고 말았다. 오래된 빌딩과 어두컴컴한 골목 사이로 가득 찬 으슥한 기운, 우울한 거리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잡담을 나누며 담배를 피우고 있는 사람들, 마리화나 냄새와 초점 없는 눈동자로 지나가는 행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무겁기만 하다. 근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식구들과 함께 걷는 그 거리가 멀게만 느껴졌다. 마치 광야의 질긴 잡초 사이를 빠져가듯 이들의 시선을 피해 스쳐가는 발걸음이 마음만큼이나 무거웠다.


토요일 저녁이 되어 지저스 컬처 교회(Jesus Culture Church)가 있는 이웃 도시 새크라멘토(Sacramento)로 향했다. 나의 ‘책 리뉴 처치(ReNew Church, 2017)’에서도 다룬 바가 있지만, 지저스 컬처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핫한 찬양팀이다. 탁월한 음악과 깊은 영성으로 가는 곳마다 수 천명의 젊은이들이 모이는 영향력이 있다. 그들이 주체가 되어 4년 전에 지저스 컬처 교회를 세웠다.


주일 아침 독특한 사운드와 깊고 강력한 영감이 느껴지는 찬양과 함께 예배가 시작됐다. 자리를 가득 채운 다양한 인종과 세대로 구성된 회중이 모두 일어나 경배의 자리로 나간다. 찬양이 이어지면서 분위기가 고취된다. 점점 더 나 자신은 없어지고, 주님의 영광과 임재만이 드러나는 모습을 느낄 수 있었다. 더 깊이, 더 깊이 예배로 몰입하는 모습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예배자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반응했다. 깊은 묵상으로 들어가는 사람들, 손을 들고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 기뻐하며 큰 소리로 노래하는 사람들, 감격과 감사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 그들의 열정적인 찬양과 외침이 공간을 가득 채웠다.


예배자이면서 동시에 관찰자일 수밖에 없던 나는 한 가지 질문을 하게 되었다. ‘과연 무엇이 그들을 이렇게 갈급하게 만들었을까?’ 그 속에서 나는 이 시대의 목마름을 보았다. 격하게 반응하는 회중의 모습은 지저스 컬처의 유명세 때문도 화려한 음악 때문도 아니었다. 그들이 목마르기 때문에, 그 목마름을 채움 받기 위한 간절함이 표현되고 있었다. 순간, 샌프란시스코의 뒷골목이 떠올랐다. 그곳을 가득 메우고 있었던 거리의 사람들. 가난과 상처로 발생한 공허함을 술과 마약으로 채우고 있었던 그들의 모습과 오늘 이렇게 정갈하게 잘 차려입은 우리들의 모습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결국, 이곳에 있는 우리들 역시 내면의 결핍과 아픔을 가지고 와 있는 것은 아닌가!

오늘 우리의 교회는 이러한 영적 갈급함을 채워주고 있는가? 철창 같은 회색도시에서 매일 생존을 위해 땀 흘려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아픔을 교회는 알고 있을까? 겉으로 보이는 역동성과 활기 뒤에 감추어진 외로움과 목마름을 우리는 알고 있는가?

왜 젊은이들이 교회를 떠나가는가? 제도화되고 세속화된 교회에 대한 실망과 더불어, 사실은 교회만이 줄 수 있는 영적 해갈을 제공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어느덧 틀에 갇혀버린 우리의 예배와 사역을 보라. 더 이상 새로울 것도 변화도 없는 습관과 반복이 지배하는 교회는 점차 그 호흡을 잃어가고 있다.

교회는 영적 공동체이다. 누가 뭐라 해도 교회는 성령께서 주도하시고 이끄시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그분의 말씀이 전파되고 그분의 호흡이 살아 숨 쉬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느껴지지 않는 교회는 세상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죽어가는 영혼을 살릴 수 없다. 교회가 생명의 공동체가 되고 구원의 방주가 되기 원한다면, 잃어버린 영혼과 떠나가는 젊은이들을 되찾고 싶다면, 무엇보다 예배가 살아나고 움직여야 한다. 기획과 계획에 의해 진행되는 예배가 아니라 성령을 환영하고 그분이 이끄시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리더는 어떻게 우리의 교회가 그러한 공간을 창출하며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목마름이 표출되고 자유로운 반응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성령의 역사가 느껴지고 그 능력에 압도된 회중의 영적 갈망이 해갈될 수 있는 예배가 회복돼야 한다. 스타일과 구조는 달라도 영적 목마름을 채워줄 수 있는 예배를 세워야 하는 과제를 우리는 안고 있다.


콜롬비아대학교의 앤드류 델방코(Andrew Delbanco) 교수는 오늘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진단했다.

“현시대의 가장 두드러진 문화적 특징은 초월성에 대한 채워지지 않는 열망이다.” (1)

오늘날도 여전히 생존을 위해 치열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지만, 사실 우리는 과거 어느 시대에도 누리지 못했던 물질적 풍요를 누리며 살아가는 복을 누리고 있다. 그러나 물질적 풍요가 삶의 의미와 행복을 보장하진 않는다. 현대인들이 공허함을 느끼고 영적 목마름을 가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싶어 한다. 내가 누구이고 어떠한 존재로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진정한 삶을 살 수 있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 요가와 명상이 미국 중산층 사이에서 자리를 잡고 이제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까지 퍼져가는 현상도 이러한 맥락 안에서 설명될 수 있다. 젊은 세대일수록 기성종교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있지만, 신비적이고 영적인 것에 대해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 현상도 같은 내용을 대변한다. 우리 주변을 가득 채우고 있는 신비적이고 종교적인 것들을 보라. 얼마나 많은 영화와 드라마, 책들이 그러한 내용을 담고 있는지 살펴보라. (2)

교회가 다시 깨어나야 한다. 세상의 목마름을 이해하고 그것을 채워줄 수 있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의 목마름은 도전이며 동시에 기회이다. 교회가 진정한 영적 공동체가 될 수 있다면, 세상이 줄 수 없는 진정한 생명을 제공할 수 있다면, 교회는 새로운 미래를 열 것이다. 아니, 사실은 그래야 한다.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진정한 교회의 모습이다. 성령이 춤추고 역사하는 공동체가 되어 목마른 영혼을 초대하라. 치열한 삶의 자리에서 불안과 아픔에 쌓여있는 사람들을 초대하라. 내가 누구이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의미를 찾아 헤매는 젊은이들이 하나님을 경험하고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을 창출하고 기회를 제공하라. 그것이 바로 영적 공동체의 사명이며 역할이다.

교회여, 다시 깨어나라!

[참고]
(1) Daniel H. Pink, 새로운미래가온다(A Whole New Mind), 김명철역, 개정1판,(서울: 한국경제신문, 2012), 56.
(2) 같은 책, 55-56.

이상훈 (풀러선교대학원 겸임교수)

아직 살만한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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