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차에 둔 스트레스, 제가 다 빗자루로 쓸어담을게요”(인터뷰)

국민일보

“열차에 둔 스트레스, 제가 다 빗자루로 쓸어담을게요”(인터뷰)

서울상계승무사업소 소속 ‘열차 차장’ 봉원석씨

입력 2019-06-16 10:52
상계승무사업소 소속 열차승무원 봉원석(28)씨. 독자 제공

지난 11일 성균관대학교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지하철에서 눈물을 흘릴 뻔한 사연이 올라왔습니다. 열차는 막 동작대교를 건너고 있었다고 하는군요. 시험 스트레스에 지친 이 학생은 해질 녘 한강을 바라보고 있었답니다. 그때 열차승무원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오늘 하루는 어떠셨나요. 힘들고 지치고 속상하신 게 있으시다면 제가 다 싣고 갈 테니까 열차에 모두 놓고 내리세요. 행복하고 행운 넘치는 하루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글을 접한 학생들은 “그분 열차를 타면 하루가 행복하게 마무리된다” “아침에도 그분 방송 들은 적 있는데 너무 좋았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감동한 글 작성자는 서울교통공사에 열차승무원을 칭찬하는 문자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기자는 피곤에 지친 승객들에게 ‘감성방송’을 건네는 열차승무원을 수소문 끝에 찾았습니다. 신씨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 열차승무원은 서울교통공사 상계승무사업소 소속 봉원석(28)씨였습니다. 국민일보는 지난 13일 “큰일도 아닌데”라며 쑥스러워하는 열차승무원 봉씨와 전화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성균관대학교 에브리타임 캡쳐



- 맡고 계신 직책을 설명해주세요
“글에는 ‘기장님’이라고 나와 있는데 정확한 직책은 열차 차장입니다. 맨 앞에 있는 분이 기관사고요. 저는 맨 뒤 칸에 있습니다. 기관사는 지하철을 운전하고 열차가 고장 났을 때 조치를 취합니다. 열차 차장은 승객들의 열차 출입을 관리하고 상황에 맞게 안내방송도 합니다. 응급상황 발생 시 현장에 출동합니다”

- ‘감성방송’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2017년 12월 31일 입사했는데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했습니다. 처음 시도할 때는 솔직히 반신반의했어요. ‘이게 진짜 좋을까’ 싶었는데 며칠 해보니 승객들이 ‘너무 고맙다’며 칭찬문자를 보내줬습니다. 갈수록 승객들이 고마움을 표현하는 게 더욱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심지어 방송을 듣고 눈물이 났다고 문자를 보낸 승객도 있었습니다. 이런 칭찬 문자들이 정말 큰 힘이 됩니다. 또 승객들이 보내준 문자를 부모님께 보여드렸더니 좋아하시더라고요. 그때 ‘아, 이게 효도구나. 부모님께 더 좋은 소식을 안겨드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

- 구체적으로 어떤 말을 주로 하나요
“출근길에는 ‘세상 모든 사람이 다 행복할 수 없겠지만 제 열차에 타고 있는 분들은 하루를 행복하게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나 ‘제 목소리가 듣기 좋지는 않지만 많이 고되고 힘드셨을 출근길에 조금이나마 힘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같은 말을 많이 해요. 또 퇴근길에는 ‘오늘 하루도 너무 고생 많으셨습니다. 스트레스 받거나 힘든 일이 있었다면 열차에 다 두고 내리셨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다 빗자루로 쓸어 담겠습니다’ 같이 힘이 되는 말을 자주 합니다”


에브리타임 글 작성자가 보낸 문자내용. 독자 제공


- 매번 같은 말만 하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노력을 많이 하죠. 책이나 인터넷을 보고 마음에 와닿는 문구가 있으면 기록해둡니다. 칭찬 문자를 100건 이상 받은 열차승무원들이 있는 센추리클럽과 상계승무사업소 내 안내방송동아리에서 좋은 말을 배우기도 합니다. 제가 감동받은 문구는 승객들도 좋아하더라고요.”

- 지금까지 받은 칭찬문자가 몇 개인지
“조금 쑥스러운데요. 입사했던 2017년 12월 31일부터 지금까지 총 522건의 칭찬문자를 받았습니다. 상계승무사업소에서는 칭찬문자를 가장 많이 받았고요. 서울교통공사 전체에서는 3등입니다”

- 승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승객들이 제가 운행하는 열차를 탈 때는 방송을 듣고 웃음과 위로를 얻었으면 좋겠어요. 한 가지 소망이 있다면, 저뿐만 아니라 다른 열차승무원들에게도 칭찬문자를 많이 보내주셨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승객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승무원이 되겠습니다.”



누군가를 칭찬하는 문자를 보내려다가 머뭇거렸던 기억, 누구에게나 있을 겁니다. 그럴 때는 눈 딱 감고 그냥 보내보면 어떨까요. 쑥스러움은 잠깐, 따뜻한 기분은 오랫동안 남을 겁니다. 칭찬을 보낸 사람에게도, 그 칭찬을 받은 사람에게도 말입니다. 햇살 따뜻한 주말, 우리 그런 칭찬 한번 나눠볼까요.

박준규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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