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의금?결혼해야 받나요” 비혼식 한 2인과의 만남(인터뷰)

국민일보

“축의금?결혼해야 받나요” 비혼식 한 2인과의 만남(인터뷰)

입력 2019-06-24 00:10 수정 2019-06-24 09:00
“결혼 생각은 없는데 그동안 낸 축의금만 몇백입니다” “친구가 결혼을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저는 비혼주의자라 축의금 회수도 못 하는데 얼마를 내야 할까요” “친구 결혼, 물론 축하는 합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마음도 듭니다”

지난 주말도 친구와 동료의 결혼식에 가서 축의금 봉투를 전달하고 온 사람이 많을 거다. 축하하는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나가기만 하는 축의금이 속상한 것도 사실이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그런 속상함을 토로하는 글들이 많다. 특히 ‘영 돌려받을 길 없는’ 비혼주의자들 입장에서는 억울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축의금 받자고 하고 싶지 않은 결혼을 할 수야 없는 노릇이다. 비혼주의도 사회 안에서 존중 받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그런 길은 없을까.

이런 고민을 제도적으로 반영한 회사가 있다. 영국 프레쉬 핸드메이드 코스메틱 브랜드 러쉬(Lush)는 비혼을 선택한 직원을 위해 지난해부터 ‘비혼식’을 진행했다. 이는 기혼자 중심의 복지 제도를 비혼주의자까지 확대하려는 대표의 뜻에서 비롯됐다. 러쉬코리아에서는 근속연수 만 5년 이상의 임직원이라면 누구나 비혼식을 열 수 있다. 비혼식 과정은 매번 바뀌지만 지난달에는 ‘선언문 수여식-대표 축하 말-다과-오찬’ 순으로 간결하게 진행됐다.

비혼식을 선택한 임직원은 결혼식을 치른 직원과 동일한 복지혜택을 받는다. 축의금과 유급 휴가는 물론 결혼 후 출산한 직원에게 지급되는 육아 수당처럼 반려동물이 있는 비혼주의자에게는 월 5만원의 반려동물 수당이 지급된다.

지난달 31일 임직원 2명의 비혼식을 진행한 러쉬코리아에서 비혼 선언문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러쉬코리아 제공

러쉬코리아 임직원 한성민(36)씨와 김재휘(35)씨도 지난달 31일 회사에서 비혼식을 올렸다. 두 사람의 비혼식은 여느 결혼식만큼이나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지인들은 이들의 비혼식을 축하해주고 축의금을 건넸다. 비혼식을 마친 한씨와 김씨는 신랑 신부의 신혼여행 대신 혼자만의 긴 휴가를 즐길 예정이다.

한씨와 김씨처럼 최근에는 비혼식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꼭 누군가와 함께하지 않아도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공개적으로 밝히기 위해서다. 이들은 비혼식을 통해 ‘결혼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 것을 다짐한다.

국민일보는 지난 17일 비혼식을 치른 한씨와 김씨에게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한씨는 결혼이 자신에게 꼭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비혼을 결심했다고 전했다. 한씨는 “비혼을 결심하기까지 특별한 계기나 상황이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 일을 하다 보니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며 “결혼에 따르는 책임감과 의무감이 없다는 것도 좋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씨도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한 가정을 꾸려 그곳에 소속되지 않아도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러쉬코리아 임직원 2명이 비혼식 진행 후 러쉬코리아 대표와 다과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러쉬코리아 제공

-비혼식 현장 분위기는 어땠나요
“마치 스몰웨딩 하는 느낌이었어요. 저와 한성민씨가 화려하고 성대한 비혼식이 되지 않길 바랐기 때문에 비혼식을 주최한 회사 측에서 저희의 의견을 많이 반영해주셨습니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축하받고 회사 대표님께 비혼 선언문도 직접 전달받았어요. 이후에는 점심 식사도 함께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일반 결혼식과 마찬가지로 축의금도 받았고요”(김재휘)

-비혼식에 대한 부모님의 반응은 어땠나요
“부모님께 처음 비혼식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을 때 ‘무슨 문제 있느냐’ ‘그러면 안된다’ ‘언젠가는 (결혼을) 해야 한다’ 등 저의 선택에 의문을 많이 가지셨어요. 그래서 부모님을 설득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죠. 부모님께 ‘다른 사람들처럼 좋은 배우자를 만나서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을 책임질 자신이 없다. 무엇보다 제 자신이 행복할 것 같지 않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랜 설득 끝에 지금은 누구보다 제 선택을 존중하고 응원해주십니다. 후회하는 삶이 아닌 행복한 삶을 살라고 말씀하시죠.”(김재휘)

-비혼식에 관심을 가지는 다른 지인분들도 계시는지
“저의 비혼식 소식을 듣고 연락이 왔던 지인들이 있었어요. 비혼식에 관심이 있다면서요. 저는 비혼식을 고민하는 지인들에게 자신에 대한 이해와 확신이 있다면 망설일 필요는 없는 것 같다고 말해줬습니다.”(김재휘)

-비혼식 후 달라진 게 있다면?
“마음가짐이 좀 더 편해졌어요. 이전에는 집에서 친척 어른을 만나면 결혼 이야기가 나왔을 때 핑계를 대거나 ‘나중에 좋은 사람 생기면 결혼할 거다’라고 말하기 일쑤였는데 이제는 그런 이야기를 안 해도 된다는 게 좀 더 편해진 것 같습니다.”(한성민)

-비혼과 연애는 별개인가요
“비혼과 연애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애인이 생긴다면 연애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제가 비혼주의자임을 밝혀야 하겠지만 연애는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한성민)

-비혼주의자가 늘고 있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가치관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나이가 들면 결혼을 당연히 해야 하는 것에서 선택의 영역으로 넘어갔다는 생각이 들어요. 특히나 요즘에는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많아졌기 때문에 혼자 있는 것을 오히려 좋아하는 사람들도 늘어난 것 같아요. 결혼에 투자하는 에너지를 이제는 자신에게 쏟는 거죠. 저는 비혼식을 하는 사람들도 앞으로 많이 늘어날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은 비혼식이 생소하고 연구할 대상으로 받아들여지지만 앞으로는 자연스러운 흐름이 될 거라고 봐요. 결혼식을 치른 신랑 신부를 인터뷰하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한성민)

강태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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