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1년 전 숨졌다” 한보 정태수 아들 정한근 진술에 대한 검찰의 입장

국민일보

“아버지 1년 전 숨졌다” 한보 정태수 아들 정한근 진술에 대한 검찰의 입장

입력 2019-06-24 05:46 수정 2019-06-24 10:04

국외 도피 21년 만에 붙잡혀 국내로 송환된 정태수(96) 전 한보그룹 회장의 넷째 아들인 정한근(54)씨가 아버지인 정 전 회장이 1년 전쯤 사망했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그러나 검찰은 정씨의 진술만으로 정 전 회장이 사망했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대검찰청 국제협력단(단장 손영배)은 회사자금 322억여원을 횡령해 국외에 은닉하고 253억여원에 이르는 국세를 체납한 혐의를 받는 정씨를 21년 만에 국내로 송환했다며 이에 대한 수사과정을 밝혔다.

협력단에 따르면 정씨는 지난 1998년 한보그룹 자회사를 운영하면서 322억원의 주식 매각자금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검찰 수사를 받다 잠적했다. 검찰은 국제공조를 벌인 끝에 지난 2017년 미국 시민권자 신분으로 에콰도르에 입국해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에콰도르와 우리나라는 범죄인 인도 조약이 맺어지지 않아 체포할 수 없었다. 행적을 쫓던 검찰은 정씨가 파나마를 거처 미국으로 갈 것이란 첩보를 입수하고 미국을 통해 파나마에 협조를 요청했다.

검찰은 지난 18일 파나마에 도착한 정씨를 공항 내 보호소에 가둔 뒤 브라질 상파울루와 두바이를 거쳐 송환했다. 검찰은 비행기가 두바이에서 이륙하자마자 정씨의 구속영장을 집행했다. 국내로 송환된 정씨는 곧바로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정씨는 파나마에서 붙잡혀 국내로 송환된 뒤 검찰 조사에서 “아버지가 지난해 에콰도르에서 세상을 떠났으며 내가 직접 임종을 지켰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검찰은 별도의 확인 없이 정씨의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정씨가 형사책임을 면할 목적으로 거짓 진술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 것이다.

검찰은 정 전 회장이 사망했다는 진술의 사실 여부를 가리기 위해 에콰도르 당국에 공조를 요청하고 다방면으로 수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검찰은 또 정 전 회장의 사망 여부와 관계없이 정 전 회장이 해외로 빼돌린 재산이 있는지 계속 수사할 계획이다.

정 전 회장은 부실기업에 대한 특혜 대출, 정경유착 등 한국경제의 치부가 드러난 이른바 ‘한보사태’의 장본인이다. 살아있다면 올해 96세다. 정 전 회장은 국세청 세무공무원으로 근무하며 20여 년간 전국 각지의 땅을 사들인 뒤 1974년 한보상사를 설립했다.

1976년 한보주택을 세워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은마아파트’를 건설‧분양하면서 성공 가도를 달렸다. 이후 1980년 한보철강을 설립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금융 위기의 발단이 된 이른바 ‘한보사태’로 내리막길을 걸었다.

정 전 회장은 한보그룹 부도 후 1997년 9월 특정경제가중처벌법(특경법)상 횡령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고 복역하다 2002년 특별사면으로 출소했다. 이후 정 전 회장은 자신이 이사장으로 있던 영동대학교 교비 72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다시 기소돼 2006년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그러나 정 전 회장은 건강 악화와 피해변제를 이유로 법정구속을 피했다. 그는 항소심 재판 중이던 2007년 ‘일본에서 치료를 받겠다’며 출국금지 집행정지를 신청했고 법원이 이를 받아들이자 곧바로 출국해 12년째 행방이 묘연한 상태다.

정 전 회장은 카자흐스탄에 머물다 법무부가 카자흐스탄 당국에 범죄인 인도를 요청하자 키르기스스탄으로 거처를 옮긴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부는 키르기스스탄 당국에 정 전 회장에 대한 범죄인인도를 요청해 놓은 상태다. 법원은 정 전 회장이 불출석한 상태에서 재판을 계속 진행해 2009년 5월 징역 3년6개월을 확정했다. 정 전 회장이 귀국하면 확정된 징역형을 우선 복역해야 한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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